한국방송학회가 주관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후원한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세미나에서 방송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매체 규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지적은 한국이 스마트폰 보유율 세계 1위를 기록한 2012년 무렵부터 10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현행 매체 규제체계는 매체 기술과 역무의 한계를 경직된 방식으로 규정함으로써 역효과를 내고 있다. 매체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하고 혁신적 사업을 개시할 동기를 갖기 어렵다”며 “이 사태가 지속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꼬집었다. 이준웅 교수는 “매체 이용자는 새 플랫폼에서 새로운 구독과 무료 역무에 가입해 매체 경험을 쌓고 있지만 우리 매체 규제체계는 지난 세기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고 우려했다.

이준웅 교수는 “방송사업자라 부르기조차 적절한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시청각매체 역무 제공자들이 매체 사업자로 등장하고 있다. 덧붙여 전통적 방송사업자도 방송이라 부를 수 없는 역무를 제공하고 있다”며 시대와의 조응을 위해 “방송법 조항 몇 개 바꿔서는 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매체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웅 교수는 공영 지상파, 민영 지상파, 민영채널·플랫폼 사업자별로 목적과 역무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규제 당국이) 매체 사업자의 자율적인 평가방법을 확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현재 재승인 재허가 평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규제당국은 공적 매체 심사제도를 논의하고 공영방송의 경우 공적 재원 사용에 대한 설명책임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왼쪽)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왼쪽)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앞서 지난해 3월 방통위는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이 제출한 정책제안서를 내놨다. 방통위가 구성했던 추진반의 핵심이었던 ‘방송규제체계’ 개선 담당 1분과에 이준웅 교수와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 등이 참여했다. 당시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모든 방송에 포괄적으로 부과된 공적 책임은 사라진다. 기존 면허체계(재허가 시스템) 개편을 전제로 공영방송과 공공서비스방송(PSB)을 분리해 허가체계별 명확한 책무를 부과한다.

역시 이날 발제에 나선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한국은 미디어 소유와 실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제도적·문화적 유산의 안에 있지만 공공적인 것들은 비효율적이고, 무능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는 관점이 있다”며 “(국내) 공공적 미디어는 여전히 많은 편이나 점차 비공공적인 것에 의해 포위되고 있다. KBS와 MBC가 (자신들의 영역을) 잃어버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우려했다. 이어 “산업의 무질서가 정보의 무질서를 낳는 악순환에서 미디어 공공성은 재구성돼야 하고 핵심 주체는 재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2019년 입소스의 ‘트러스트 인 더 미디어’(Trust in the Media)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한국 공영방송은 고품질도 아니고 차별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꽤 관료적이라고 생각한다. 필수성 평가도 상당히 낮지만 쓸모없는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이용자 여론을 분석한 뒤 “한국은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이가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방송은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엔 소유구조로 공공성을 해석했다면 이젠 공연성 개념을 위주로 공공성의 보편적 수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24일 열린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세미나. ⓒ방송학회
▲지난 24일 열린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세미나. ⓒ방송학회

이어 “미디어 공공성 기획 과정에서 인터넷은 규제 수준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하고, 방송은 낮추거나 유지하는 식으로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럽연합의 시청각매체법과 유사한 통합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네거티브 규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으며 “미디어 산업 거래·공정거래규제를 담당할 미디어공정거래위원회 성격의 기관도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EU는 2018년 11월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 개정안을 채택해 시청각미디어서비스를 텔레비전·VOD·동영상공유플랫폼으로 나눠 유튜브·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시청각콘텐츠도 규제의 틀에 넣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공공적 필수성, 대안성, 차별성, 참여성을 높일 공적 특수 주체의 재구성 통해 이들을 매개로 한 포지티브 규제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이를 위해 공영미디어는 재허가에서 협약 중심 정책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공영미디어 협약의 평가와 계획은 재원 정책과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무와 책임에 따라 보편적 수신료, 특수 목적 공공보조, 상업 재원 운영 조합을 결정하는 식이다. 지역공영미디어의 경우 장기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전환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공적책무의 무게는 매체별로 다를 것이다. 세밀한 검토가 있어야 현실에 적합한 규제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방통위는 현재 위와 같은 논의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청각서비스법안(가칭)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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