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를 전액 지원하되 지적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은 가져간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동시에 높아진 넷플릭스 종속·의존도가 국내 산업의 ‘하청화’를 가속화할 거라는 업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의원 24명이 회원으로 있는 연구단체 ‘국회 문화콘텐츠 포럼’은 지난 18일 ‘국내 OTT 콘텐츠 경쟁력 강화방안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IPTV 업계와 국내 OTT 플랫폼인 콘텐츠 웨이브(wavve) 관계자 등이 토론을 나눴다. 대표의원을 맡고 있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도 참석했다.

“방송사 이어 넷플릭스도 지적재산권 독점”

배대식 드라마제작자협회 국장은 이날 “국내 제작사들이 ‘넷플릭스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방송사들이 저작권을 가져갔던 것처럼 글로벌 OTT도 지적재산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적재산권을 넘기는 조건에 계약을 하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도 (제작사의) 큰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CJ계열사인 스튜디오드래곤조차 ‘스위트홈’ IP를 넷플릭스에 넘기는 계약을 했다”고 전했다.

▲국회의원 연구단체 ‘국회 문화콘텐츠포럼(대표의원 조승래, 연구책임의원 장경태)’이 18일 오후 2시, 온라인 줌(ZOOM)을 통해 ‘OTT시대, 문화콘텐츠 경쟁력 강화 방안 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국회의원 연구단체 ‘국회 문화콘텐츠포럼(대표의원 조승래, 연구책임의원 장경태)’이 18일 오후 2시, 온라인 줌(ZOOM)을 통해 ‘OTT시대, 문화콘텐츠 경쟁력 강화 방안 토론회’를 진행했다. 사진=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일부 제작사들은 지적재산권을 보유하면서 방송사에 방영권을, 글로벌 OTT에 해외 온라인유통권을 판매해 추가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에이스토리는 드라마 ‘지리산’ 방영권을 tvN에 팔고, 해외온라인유통권은 중국 쪽에 넘겼다. 지난 1월 키이스트가 라인업을 공개한 드라마 4건 중 2건도 비슷한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배 국장은 “올해가 제작사들 입장에서 IP를 확보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OTT의 성장은 공고했던 영화계 유통·제작질서도 바꾸고 있다. 그간 제작자와 투자자가 영화 수익을 4대6으로 나누는 방식이었다면, 넷플릭스는 100% 제작비를 투자해 저작권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뒤 ‘건당 주문형 비디오(TVOD)→유료채널→무료채널’ 순서로 이어졌던 수익과정은, 코로나19와 맞물리며 극장·OTT 동시 상영이나 OTT 단독개봉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창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은 “디즈니플러스나 HBO맥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에 진출했을 때 마찬가지 방식으로 한다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리라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유창서 위원은 “영화 및 비디오 기능에 관한 법률 역시 재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비법상 영화는 극장 상영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상물로 국한된다. OTT는 극장 상영을 배제하는 부분이 있다”며 “영상물 등급분류도 법제상 OTT를 대상으로 어떻게 적용할 건지와 관련해 ‘자율등급제’를 긍정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이 나눠서 진행하는 지원사업을 통합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 총괄. 사진=넷플릭스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 총괄. 사진=넷플릭스

국내OTT “우리 물건 우리 배에 실어야”

넷플릭스는 투자 규모에서 국내 OTT 업계를 압도하고 있다. 2016년 이후 국내 콘텐츠에 7700억원가량을 투자한 넷플릭스는 올해에만 55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국내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와 SKT 합작 ‘웨이브(wavve)’는 2023년까지 3000억원, CJ ENM과 JTBC 등의 ‘티빙’(tving)은 40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배대식 드라마제작자협회 국장은 “(국내 OTT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리지널콘텐츠 확보 주력은 하지만 투자 규모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며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핵심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IPTV방송협회 고흥석 정책기획센터장은 “제작·투자 자체에 매몰되면 안되지 않나, 전략은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오리지널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다하보니 제작사 뿐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도 제작·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규모를 늘리는 상황이다. 이미 글로벌 OTT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제작비·물량 승부는 상장히 열악한 환경”이라며 “OTT 개념 규정 자체가 선행될 필요가 있는데 컨센서스가 부족한 거 같다. OTT 사업자 간의 규제 형평성을 고려하면 결국 이 문제가 디지털 통상과 관련한 갈등 이슈로 잠재돼있다”고 말했다.

국내 OTT ‘웨이브’(wavve)의 이희주 정책기획실장은 현 국면을 “우리 물건을 외국 배에 실어 해외로 보내냐, 한국 배에 실어서 보내는 것이냐의 문제”라 표현했다. “(넷플릭스 등) 하청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디어플랫폼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고 콘텐츠 수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승리호’는 한국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콘텐츠가 됐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미국 콘텐츠”라고 말했다. 

이희주 실장은 “지금 벌어지는 콘텐츠 플랫폼의 여러 문제들은 ‘웨이브’의 잘못이고 ‘티빙’의 잘못이다. 하루빨리 플랫폼 자체가 해외진출을 통해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부부처라든지 국회라든지 많이 이 부분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플랫폼을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콘텐츠산업도 같이 발전할 수 없다. ‘K-플랫폼’ ‘K-콘텐츠’가 동반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OTT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통합·대형화가 필수라는 제안도 나왔다.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콘텐츠 업계는 ‘규모의 경제’가 어떤 산업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매우 유리하다. 자본시장이 큰 미국과 중국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OTT 업체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볼만하다. 업체간 인수합병이나 제휴를 통해 통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gettyimagesbank

“부처간 중복·갈등 해소…공정한 유통환경조성”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콘텐츠와 플랫폼은 한 몸이기 때문에 플랫폼 발전 없이 콘텐츠 발전만 간다는 건 쉽지 않다.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상생 관계로 가도록 하고, 그렇기 위해 국내 플랫폼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플랫폼이 갖는 규모의 경제면에 있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내에서도 플랫폼을 관장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와 콘텐츠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간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롭게 할 것인지도 숙제”라고 전했다.

양정숙 의원(무소속)은 “중요한 건 해외 OTT와 국내 OTT 간의 규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다. 규제하다보면 토종 OTT가 성장세에 있는데 자라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게 되고, 규제 사각지대에 그냥 두게 되면 해외에서 들어와서 망 사용료는 내지 않고 무임승차 하는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은 플랫폼과 제작·창작사 간의 불공정 문제 해소를 강조했다. 유 의원은 “플랫폼이 제작사나 창작자 몫을 수혈해가는 입장으로서의 불공정 고리가 끊어지고 같이 잘 될 수 있는 가치사슬이 무엇이 있을지 전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