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는 특혜받은 플랫폼 비즈니스이자 부동산투자업이다. 

여기서 기독교는 타 종교보다 유리하다. 산속에 위치한 절과 견주면 일단 접근성이 좋다. 플랫폼 사업은 진입장벽이 낮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교회 내 각종 모임(선교회, 봉사단, 구역·셀모임 등)은 끈끈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정치인이나 각종 영업종사자에겐 주1회 이상 모이는 교회가 더없이 좋은 네트워크의 허브다. 

전 세계가 중앙집권체제이며 동네별로 한 곳만 짓는 가톨릭 성당과 비교하면 개신교 교회는 누구나 어디든 지을 수 있다. 플랫폼(교회)의 최소 운영비를 제외하면 헌금은 전부가 ‘순이익’이다. 게다가 목사는 결혼해 자녀를 낳을 수 있으니 면세로 쌓은 부를 승계할 곳까지 마련돼있다. 

종교단체들은 부동산 취득세·재산세 등 세금을 면제받아왔다. 교회의 주 수익인 헌금은 현찰이기 때문에 그 규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은혜받은’ 교인이라면 자신의 수입의 10%를 십일조 명목으로 매달 기본으로 납부한다. 승진·자녀진학부터 사소한 희소식까지 경사 때마다 ‘감사헌금’을 추가한다. 헌금은 기명봉투에 내고 일부 교회는 지폐 색깔을 볼 수 있게 봉투에 구멍을 뚫었다. 교회는 헌금자 명단을 ‘주보’라는 교회소식지에 공지한다. 

교회에서 새로운 부동산을 매입해 ‘선교센터’, ‘교육관’ 등 각종 명목으로 건축계획을 발표하면 ‘건축헌금’이 추가된다. 성도들은 장로-안수집사·권사-집사 등 계급마다 암묵적으로 책정된 금액을 눈치껏 낸다. ‘1구좌당 500만원’이라는 식으로 할당 액수를 교회에서 미리 공지하는 경우도 있다. 목표 금액에 도달하지 못하면 특별 주간을 정해 기도회나 예배를 추가로 열기도 한다. 신앙심있는 형제·자매들은 착공과 완공, 입주 등 시기마다 감사헌금을 납부하기도 한다.

▲ 본문과 무관합니다. 사진=pixabay
▲ 본문과 무관합니다. 사진=pixabay

 

대다수 한국교회의 목표는 ‘부흥’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경적 의미가 깔려있지만 자본주의 원리로 보면 성도 숫자가 곧 재력이다.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부목사 월급 등을 주고나면 상당수는 담임목사 몫이다. 교계에선 교인 1명을 통상 연 400만원으로 계산한다. 교회 예배당 건물을 매매할 때 성도 수를 함께 계산해 합산한다. 유동인구가 많고 목 좋은 곳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권리금을 얹어 넘기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형교단인 감리교(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지인 기독교타임즈에서 3년전 편집권 침해 논란이 벌어졌다. 기독교타임즈 기자들은 감리회에 대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 중 하나가 교회 건물을 이단에 매각한 사건이다. 감리회는 개별 교회 매매에도 감리회(유지재단)가 개입한다. 이단으로 규정한 곳에 교회 건물을 매각하는데 감리회 본부가 승인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왔다. 

불법도 아닌 거래가 왜 문제인가 싶지만 교인들 사이에선 단지 경제적 이유로 예배당을 이단에 매각하는 게 교회의 기초질서,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신앙이 죽고 교회마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게 된 현실이란 지적이다. 

교계 분위기를 조금 더 부연하면, 일찍이 주요 대형교회의 세습을 진행했던 감리교에는 현재 세습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최근 세습으로 논란이 된 명성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와 다른 모습이다.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 자리를 놓고 부자세습을 이어가는 모습이 언론에 나오면 현재 세습 논란이 없거나, 세습금지법이 있는 교단은 문제없는 곳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사실 ‘부동산투자업’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세습의 최종대상은 부동산이다. 많은 교회에선 헌금으로 지은 수많은 부동산이 ‘담임목사’ 자리 대신 세습되고 있다. 해외에 선교센터나 교회를 짓고 아들이 그곳을 맡는 경우도 있다. 나중엔 그 해외선교 경력도 또 하나의 스펙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주님 대하듯 하고, 더 낮은 곳에 귀 기울이는 예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인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한국교회는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각종 적폐로 곪았다. 그럼에도 한국 기독교가 굴러가는 이유는 요란하지 않게, 자신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는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어서다. 이런 이들 중 한 명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회부 기자들은 그를 한번쯤 봤을 가능성이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관련 소식을 기자들에게 전하는 채팅방에서 언론담당 역할을 담당하는 김디모데 목사다. 그는 그 외에도 세월호 유족, 독립운동가 후손, 기독교 난민 가정과 연대하고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사업, 미혼모 지원사업, 미자립교회 지원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한다. 2018년 논란이 된 인천새소망교회의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신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도 가해 목사 측과 법적다툼 중이다. 

그는 교회를 세우고 담임목사를 맡지 않는다. 예하운(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운동) 선교회를 만들고 선교회 이름으로 이런 활동을 수행한다. 사무실은 없다. 프로젝트 단위별로 후원계좌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동료를 모아 그 일만 하고 흩어진다. 후원계좌 내역은 전부 온라인에 공개한다. 자신의 생계상 돈이 필요할 땐 청원경찰 등 별도의 노동으로 가장의 역할을 감당한다.

▲ 뒷골목에서 만난 하나님/ 김디모데 지음/ 선율 펴냄
▲ 뒷골목에서 만난 하나님/ 김디모데 지음/ 선율 펴냄

김디모데 대표는 저서 ‘뒷골목에서 만난 하나님’에서 자신이 왜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고, 왜 예하운 선교회를 세웠는지, 예하운 선교회는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을 소개했다. 김 대표가 하는 각종 사업(사역)에 관심있는 이들이 참여를 앞두고 읽어보면 좋을 만한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일은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사업이다.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생필품을 제때 구매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이 모였다. 물론 대기업들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긴 했다. 그러나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이 벌어졌고, 유해물질이 포함된 생리대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도 간다는 걸 확인했다. 

이에 김 대표는 직접 생리대를 조사해 안전한 생리대업체를 찾았다. 해피문데이라는 유기농 생리대 업체를 찾아 대표와 협약을 체결하고 생리대를 저렴한 금액으로 공급받는다. 생리대는 계속 필요한 생필품이다. 따라서 지원을 하다가 중간에 끊기면 학생도 당황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 이에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한 일정금액이 모이면 그때 지원학생을 1명 늘리는 식으로 안정적인 지원계획을 마련했다. 

기독교 난민을 돕는 일도 한다. 세상 어딘가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국에서 쫓겨나거나 납치·테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의 기독교인은 신앙박해를 이유로 한국에 난민을 신청하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난민이라면 막연하게 ‘못살거나 이슬람같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찾기는 쉽지만. 

김 대표는 한국교회가 외면한 이러한 피난민을 돕는다. 난민정책을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지적하다보면 어느덧 ‘빨갱이 목사’가 된다. 한 교회 관계자는 “우리교회 영어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은 수준있는 분들인데 중동·동남아 노동자들이 함께 예배드리면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다른 교회로 가달라”(117쪽)고 말했다고 한다. 

▲ 김디모데 예하운 선교회 대표가 대구 이슬람센터와 외국인노동자시설 등에 마스크를 전달하는 모습
▲ 김디모데 예하운 선교회 대표가 대구 이슬람센터와 외국인노동자시설 등에 마스크를 전달하는 모습

‘뒷골목에서 만난 하나님’을 읽기 전인 지난달 초 김 대표를 만나 세시간 가량 각종 사회문제, 정치현안, 현 정권에 대한 생각, 한국교회의 문제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종교와 정치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종교와 정치는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면 큰 싸움이 될 수 있어서다. 당연히 김 대표와 종교와 정치 모두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펼친 이유는 적어도 그는 부동산투자업에 종사하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꺼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신해 싸우다 고소를 당할 줄 알고, 남들을 돕겠다며 걷은 후원금으로 자신의 생계를 충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선교라는 게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도 현재 대다수 목회자들은 교인들 사이에서나 통용될만한 편견을 무차별적으로 사회 전반에 강요한다. 사회와 점점 괴리되는데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예하운 선교회의 목표는 비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대로,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김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며 “‘이런 목사도 있구나’라고 생각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이런 목사 하나쯤은 있어도 될 법하다. 그리고 이런 목사가 변하지 않도록 꾸준히 감시와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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