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0일 밤12시였다. 자정을 알려드린다는 멘트가 흐른 뒤 시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시보였다. 뚜뚜뚜 띠! 자정을 알리는 ‘띠’를 끝으로 방송이 멈췄다. 무음. 23년간 1초도 멈추지 않고 24시간 자체방송을 해온 경기지역 지상파 라디오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당시로선 큰 사건이었다. 지상파 방송의 자진폐업, 군사정권이 방송사 문을 닫게 한 적은 있어도 방송국 스스로 전파를 반납한 것은 한국 방송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왜지? 사람들은 이유가 궁금했다. 경기방송은 23년간 단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 없는 알토란 방송국이었다. 혹자는 방송 주파수(FM 99.9)에 빗대 ‘99.9% 순금같은 황금채널’이라 칭했다. 쟁의 한 번 없었다. 그런데도 방송사주들은 탄압과 간섭을 견딜 수 없어 문을 닫는다고 공지했다. 정권 외압설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 한 마디했다고 방송국 문을 닫게했다는 둥 일고의 가치 없는 가짜뉴스였다. 심지어 야당 추천 방통위원까지 언론인터뷰를 통해 외압설은 근거없으며 본질은 재허가 기준에 못미치는 ‘경영 전횡’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짜뉴스는 눈녹듯 사라졌다. 특히 4월 총선이 끝나자 인터넷을 떠돌던 정권외압설은 낙선한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은 경기방송이 왜 문을 닫았는지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내부자가 있었다. 회장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면서 방송국 경영을 좌지우지해온, 방통위는 그를 이렇게 정의했다. 방송국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 경기방송 노조위원장은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1인 독재체제였다. 그 분 입으로 얘기하면 본인이 곧 경기방송이고 경기방송이 곧 본인이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2020년 11월29일)

그런 그가 2019년 여름 간부들 앞에서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친일발언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불매운동은 100년간 성공한 적이 없다. 아사히 맥주사장이 무슨 죄있나. 유니클로 보도는 조작됐다. 우매한 국민들 속여 반일로 몰고간다… 그런 불공정한 소신이 관련 보도로 이어지자 내부고발이 터졌다. 내부고발자는 보도2팀장이던 윤종화 기자와 편성책임자였던 나였다. 우리는 한국콜마가 친일논란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목도했기에 그를 막는게 방송을 지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것을 걸고 실명제보를 했다. 제보 후 그가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직원 앞에서 천명했다. 그러나 20여일 뒤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물러나겠다는 내부자 대신 대표이사가 사표를 썼고, 내부고발자인 우리는 해고됐으며 내부자는 승진했다. 그리고 이런 이사회 공고문이 나붙었다.

“직원 전체와 ○○○ 전무이사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 전무를 선택할 것입니다.” (경기방송 이사회 결정문, 2019년 9월25일)

직원전체보다 내부자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경기방송 이사들과 70% 지분 주주들은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방송국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회사 청산까지도 각오할 것이란 사실을 모두에게 강조하고자 합니다.”(2019년 9월25일)

자진폐업은 이 때 이미 예고됐다. 참 아쉽다.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만일 이 말도 안되는 전횡에 언론노조가 그 흔한 성명서라도 한 장 내며 맞섰더라면… 자다가도 벌떡 깨어 자문하곤 한다. 어쨌든 그 해 12월 방통위는 경기방송 거취를 두고 방송권 박탈까지 고민하던 끝에 내부자의 경영배제 등의 이행조건을 전제로 재허가를 내눴다. 그러나 경기방송은 재허가 잉크로 마르기도 전에 자진폐업을 결정했고 전 직원이 해고됐다.

▲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그 후 1년이 흘렀다. 지금도 논란의 당사자는 경기방송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내부고발자인 우리는 줄소송에 시달려왔다. 이겨도 이겨도 끝이 없다. 지노위에서 부당해고 나오면 중노위로, 수원지검 무혐의나오면 고검으로… 그러나 우리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리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공영방송을 염원한다. 소유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민영방송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온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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