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래(55)씨는 2007년 미얀마 민중이 군부에 저항한 ‘샤프란 혁명’ 현장에 있었다. MBC 국제시사 프로그램 ‘W’ 제작진 요청에 따라 현지 취재 코디네이터로서 현장을 기록했던 그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의 눈물에서 자신의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을 떠올렸다. 

방사선사였던 그는 미래가 보장된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2000년 초 미얀마에 정착했다. 비록 최빈국이었지만 마음만은 푸근했던 미얀마 사람들과 환경에 반해 한국에 있는 가족까지 불러 미얀마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PC방과 여행사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군부에 맞선 미얀마 민중의 저항을 담은 정범래씨의 카메라는 그의 운명을 180도 바꿔놓았다. 2007년 한국언론도 앞다퉈 보도했을 정도로 그가 미얀마 군부를 피해 방콕으로 도피했던 순간은 영화 한 장면과 같았다. 미얀마 시위 상황을 시시각각 인터넷 커뮤니티 ‘미야비즈’를 통해 알렸던 그는 군부가 감시했던 ‘블랙리스트’였다.

▲ 현직 방사선사인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가 12일 경기도 시흥 센트럴병원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현직 방사선사인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가 12일 경기도 시흥 센트럴병원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현재 시흥 센트럴병원 영상의학팀장으로 근무하는 정씨는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는 지난 2월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재한 미얀마인과 한국 시민단체들이 결성한 단체다. 지난 12일 시흥 센트럴병원에서 만난 정씨는 “미얀마 민중은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며 “앞선 1988년과 2007년의 민주화운동과 성격이 다르다. 그때 미얀마 국민들은 고립돼 있었지만 지금은 SNS가 전 세계를 연결해주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이를 부정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15일(현지시간) UN에 따르면, 쿠데타 발생 이후 최소 138명의 시위자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씨는 “국내 거주 미얀마인들은 한국군 개입을 바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며 “UN과 국제사회는 ‘보호책임’(R2P)을 즉시 발동해 군부를 제재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군부가 미얀마 국회 개원일인 2월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주도한 이번 쿠데타 예상했나?

“개명천지에 쿠데타라니 나도 깜짝 놀랐다. 미얀마 군부정권에 맞서고 있는 인권활동가 소 모 뚜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미얀마 사람들이 주한 미얀마 대사관 무관부, 중국 대사관 등에 가서 시위를 하겠다고 해 피켓 제작 등 지원 활동을 했다. (군부 쿠데타 이전)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와 한국 거주 미얀마 노동자, 민주화운동 활동가, 유학생들과 연대해 미얀마 군부독재 타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한국시민단체와 연대해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지난 3일에는 국회 앞에 모여 한국 정부와 국회가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미얀마 외교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 연방의회대표 CRPH는 무엇인가?

“CRPH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선출된 집권 여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원뿐 아니라 다양한 정당 인사들이 참여한 문민정부다. 15명이 대표로서 군부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미얀마 내 소수민족도 참여하고 있다. 로힝야도 이를 지지하며 반군부 편에 있다. 우리 언론은 조직화하지 않은 흩어진 민중과 무장한 군부의 싸움처럼 보도하는데, 반군부 세력은 똘똘 뭉쳐 있다. 한국 언론인이 CRPH에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

▲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맨 오른쪽)가 미얀마 군부 세력을 규탄하는 집회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 정범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맨 오른쪽)가 미얀마 군부 세력을 규탄하는 집회을 열고 있는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을 한국에 홍보하는 역할이 첫 번째다. 또 임시정부인 CRPH가 무엇인지 한국에 알리며 외교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한 미얀마 대사에게도 군사반란 세력이 아닌 CRPH 지시에 따르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 대사는 아웅산 수찌의 민주정부가 임명한 인사다. 현재 미얀마 국민들은 시민불복종 운동(CDM)을 하고 있다. 군사 쿠데타 반란세력에 맞선 평화시위다. 우리는 그 운동을 돕고 있는 것이다. 과거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현재 CDM 차이는 공무원들의 집단행동에 있다. 공무원들이 전면 파업에 나서면서 CDM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보전해줘야 계속 파업할 것 아닌가. 우리는 후원금 2억5000만원을 모아 미얀마 공무원들에게 전달했다.”

- 그게 가능한가?

“우회해서 보낼 수 있다. 어제(3월11일) 미얀마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미얀마 인권 활동을 하는 소모뚜와 얀 나잉 툰을 공개 수배한다는 내용이 미얀마 국영방송 MRTV에 방송됐다는 소식이었다. 두 사람은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들이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공무원들에게 후원금을 불법적으로 전달했다는 혐의다. 두 사람이 미얀마 국내 불순분자들과 내통해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수배를 내렸으니 신고해달라는 것이다. 그만큼 공무원들의 저항은 중요하다. 철도, 공항, 운송, 우체국, 은행 등에서 일하는 대다수 공무원들이 이번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공무원들 파업으로 지금 미얀마는 멈춰버린 상태다. 거의 모든 미얀마 국민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미얀마 국민들은 국제사회 개입을 호소하고 있다.

“총으로 무장한 쿠데타 세력은 시위자를 조준 사격하고 있다. 수천 명이 불법 감금되고 있다. 1980년 광주와 같은 상황이다.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보호책임)는 한 나라 정부가 집단학살이나 전쟁범죄와 같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뜻한다. 국제사회는 이를 방기하는 국가에 개입할 수 있다. 현재 CRPH는 소수민족의 무장세력과 협상하고 있다고 한다. 소수민족 군대를 합치면 10만 정도 추산된다. 미얀마 정부군이 40만 정도인데, 최악의 경우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국제사회가 조속하게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지금 쿠데타 세력은 외세와 맞선다는 명분도 없는 기득권 세력일 뿐이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선 NLD가 득표율 83%를 기록했고 이는 2015년 집권 때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현 군부는 미얀마 경제를 장악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 2007년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을 취재하던 정범래씨의 모습. 정씨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정범래 제공
▲ 2007년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을 취재하던 정범래씨의 모습. 정씨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정범래 제공
▲ 정범래씨가 2007년 취재한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 정범래씨가 2007년 취재한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 정범래씨가 2007년 취재한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 정범래씨가 2007년 취재한 미얀마 ‘샤프란 혁명’ 현장 모습. 사진=정범래 제공

“미얀마 사태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군부가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니까. 386세대로서 사명감이 느껴져 이를 영상기록으로 남기려다 체포령이 내려졌다.” 2007년 9월 정씨의 연합뉴스 인터뷰다. 미얀마 군부를 피해 태국으로 피신한 정씨는 이후 ‘사랑하는 미얀마’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34세 때 첫 방문한 미얀마에서 그는 자신의 미래를 발견했고 미얀마 알리미로서 성공한 교민이자 사업가로서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

- 2007년 미얀마 ‘샤프란 혁명’ 때 현장에 있었다. 도피할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당시 시위는 물가인상에 반대하는 스님들 집회에서 촉발됐다. 군인들이 스님들을 폭행했다. 스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중이 참여하면서 집회 규모가 불어났다. 2007년 9월24일 시위 규모가 가장 컸다.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고 과거 학생운동 시절이 떠올랐다. 조국 민주화를 위해 내 목숨 하나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나라도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 이후 친분이 있던 한 미얀마 보안대 관계자가 ‘네 이름이 보안대 회의에서 자꾸 언급된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가는 외국인이 있다고 보고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군대가 투입되자 미얀마 한인회장이 방콕으로 잠시 피신해 있으라고 했다. 군부에서 나를 체포하거나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어렵게 방콕으로 피신한 뒤 아내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가 늘 취재하던 그 현장에서 나가이 겐지(AFP통신의 일본인 사진기자)라는 일본 기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놈들이 진짜 사람을 죽이는구나’라는 생각에 먹먹했다. 이후 마이니치신문은 미얀마 군 당국이 비디오 카메라 소지자에게 총격을 가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린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얀마 자택은 가택수색을 당했고 감시는 계속됐다. 아이와 아내도 이후 귀국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밥그릇을 걷어찬 셈이다. 돈도 많이 벌었고, 사업도 확장하던 터였다. 그러나 쫄딱 망했다.(웃음)”

-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2015년 총선 승리로 군부 통치가 막을 내렸다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군부세력이 강해도 국민 뜻이 모인 선거를 이렇게 뒤집을 줄은 몰랐다. 2015년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 임금이 상승했다.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외국 자본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국민들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물론 군부가 경제를 장악했기 때문에 성장 폭이 크지 않았지만, 국민은 비로소 지킬 것이 생긴 거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데, 쿠데타를 진짜 강행할 거라곤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군부도 국내 입지가 코너에 몰리고 초조한 것이다.”

- 미얀마 군부 배후에 중국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크다.

“모두가 중국을 의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방문했고, 지금 미얀마 중국대사가 강력한 중화주의자다. 중국은 안전한 에너지 확보를 위해 미얀마의 지정학적 위치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나도 미얀마 국민도 제국주의 국가들이 국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미얀마 국민들은 군사정부보다는 차라리 외세가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미얀마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

▲ 정범래씨가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독재에 대한 저항과 시민들에 대한 연대를 뜻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정범래씨가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독재에 대한 저항과 시민들에 대한 연대를 뜻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미얀마 민중 저항에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재한 미얀마인들은 한국군 개입을 바라기도 한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 무릎 꿇고 ‘힘이 되어달라. 살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 영상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대한민국 힘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류 열풍으로 미얀마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모범국이다. 1987년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촛불 집회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주재국 국민 애원에 왜 우리 외교관들은 응대하지 않는가. 공관 밖으로 나와 주재국 국민 편지라도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인데…. 대통령과 총리는 규탄 메시지와 아웅산 수찌 석방 촉구 등 직접 메시지를 내고 있다. 우리는 이를 미얀마어로 번역해 알리고 있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미얀마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 미얀마 국민들의 시민불복종 운동을 어떻게 전망하나?

“미얀마 민중은 피 흘리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고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군부독재 시대로 회귀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미얀마의 2030세대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 맛을 봤다. 미얀마 국민과 군부의 큰 결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미얀마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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