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대통령이 임기를 지킬 것을 주문했고 윤 총장도 이에 화답했지만 그는 왜 이렇게 떠났을까?

사퇴 소식을 전하는 5일자 신문을 보면 정부·여당이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윤 총장을 쫓아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정부의 ‘검찰 황태자’였다가 ‘역적’으로 내몰린 윤 총장이 결국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전격 사의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세계일보 1면 톱기사 리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 법안으로 검찰을 수사권한을 없애려는 방안을 준비하자 윤 총장이 자신의 직을 걸고 이를 막으려 했다는 내용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혀왔다. 대다수 매체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책임을 묻기보단 윤 총장으로선 할 만큼 했다는 평가했다. 

▲ 5일자 조선일보 1면
▲ 5일자 조선일보 1면

 

“‘그냥 있으면 고사’ 판단, 지난주 사퇴 결심”(조선일보 정치면 톱기사 제목)
“여당이 중수청 신설 등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입법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윤 총장은 사퇴 외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동아일보 정치면 톱기사 중)

이로 인해 현재 야권에서 대권 지지율이 가장 높은 윤 총장의 정치행보는 시작했고, 일각에선 ‘4월 창당설’까지 등장했다. 당장은 정치행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과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4월 재보선 직전에 야권 후보를 지지할 거란 전망도 나왔다. 충청권 대권주자로 규정한 기사부터 윤 총장의 주변 인맥을 다룬 기사도 나왔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검사라는 비판을 받은지 수개월째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의 정치행보를 지적하는 의견보다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기사를 자세히 보면 이런 부분도 등장한다.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중간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장고없이 바로 결행한 것은 정치입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며 “더구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지금이 사퇴 효과를 극대화할 시점이라고 본 것 같다”고 했다. “어차피 정치입문을 결심했다면 최근 본인 지지율이 하락세인 점도 의식했을 것”이란 해석도 함께 전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에 뛰어드는 걸 기정사실화한 내용이지만 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언론보도대로 윤 총장의 사퇴로 현 정권 관련 수사가 좌초된다면 윤 총장이 임기를 채우며 끝까지 이를 막았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조선일보 “외압 막아준 尹총장 퇴장…검찰 내부선 정권수사 좌초 우려”를 보면 윤 총장 사퇴로 정권수사가 좌초될 수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윤 총장이 해당 수사들을 위해 임기를 지켰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유일하게 윤 총장을 비판하는 대목은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의 코멘트였다. 그는 “무책임한 사퇴로 역대 최악의 검찰총장, 정치검사”라고 했다. 

▲ 5일자 세계일보 정치면 기사
▲ 5일자 세계일보 정치면 기사

 

세계일보는 정치면 중간에 “총장이 남아 힘 써줬으면 했는데…”란 기사에서 비슷한 취지의 반응을 담았다. 대체로 대검찰청이 충격에 빠졌고 아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말미에 “윤 총장이 ‘사퇴’라는 강수를 뒀음에도 검찰 내부는 여전히 수사청이 예정대로 설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경지검의 한 간부는 이 신문에 “총장이 나가 중수청을 막을 수만 있다면 100번은 나가야 하는데, 여당이 수사청 설치 추진을 그만둘 것 같지 않다”며 “총장이 나가는 실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 총장의 사퇴에 대한 해석은 엇갈릴 수 있다. 다만 총장이 사퇴한다고 수사청 설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총장 사퇴로 권력 핵심부에 대한 수사도 가로막힐 우려가 있다면 윤 총장의 사퇴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5일자 신문에서 이런 시각은 찾아볼 수 없거나,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권을 없애는 문제는 찬반을 떠나 검찰조직에는 중대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조직을 떠나는 일을 곱게만 보는 시각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보수언론 보도에도 나오듯 최근 자신의 대권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을 의식해 자신의 지지세를 유지할 수 있는 시기에 떠나기로 작정했다. 

언론보도에 등장하진 않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윤 총장의 임기는 7월, 여당이 수사청 법안처리를 예고한 시점은 6월이다. 즉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 윤 총장은 임기 내에 수사청을 막아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꼴이다.

언론에 등장한 ‘윤 총장이 직을 건다고 수사청을 막을 수도 없는데 자기정치하러 나간 것 아니냐’는 검찰 내부의 불만을 한번 더 생각해보자. 윤 총장은 수사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검찰을 떠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나마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는 검찰총장이 떠났는데 이게 검찰을 위한 길이라고 볼 수 있을까.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전히 검찰에 기수문화가 살아 있고 검사동일체 문화가 지배한다 하더라도 검찰은 조직에 해가 된다면 선배라도 버릴 수 있는 집단이다. 불명예퇴진한 전직 검사간부들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윤 총장이 수사청 설치를 막아내지 못했을 때 그는 4일 오후 퇴근길에서처럼 꽃다발을 받으며 집으로 갈 수 있을까?

현직검사가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에 사직하도록 한 이른바 ‘윤석열 대선출마 방지법(최강욱 의원 대표발의)’을 고려한 듯 대선 1년 이전에 사퇴했다는 소식도 눈길을 끌었다. 해당 법안이 특정 공직자를 겨냥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이를 의식한 듯 “소임을 다하겠다”던 공직자가 자신의 말을 바꿔 임기를 채우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었다’고만 평가하긴 어렵다. 5일자 지면에서 이러한 비판은 찾기 어렵다. 

만약 다수 매체에서 이런 논조로 헤드라인을 뽑으며 보도했다면 어땠을까?

‘조직의 명운 걸린 수사청 설치논의 본격화하기도 전에 사표 던져’ ‘임기 지키겠다는 말은 어디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더니 수사 내팽겨치나’ ‘전격사퇴, 떨어지는 대선지지율에 다급했나’, ‘윤석열 출마 방지법 의식해 지금 떠나나’ 

‘검찰주의자’라던 윤 총장은 진정 검찰청을 위해 직을 걸었을까? 그의 주장처럼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떠났을까? 아니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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