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브리저튼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브리저튼’이 세운 기록이 연이어 화제였다. 넷플릭스 역대 시청 기록 1위. 공개 후 28일 동안 8200만 계정 시청. 공개 한 달여 만에 시즌2 제작 확정까지. 브리저튼 팬들은 일명 ‘사이먼(남주인공) 앓이’를 겪고, ‘오랜만에 설렌 연애물’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반면 ‘결국 아름다운 여성이 바람둥이 공작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전형적 로맨스물일 뿐’이라는 평도 나온다. 브리저튼은 180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브리저튼 가문의 첫째 딸 다프네(피비 디네버)와 공작인 사이먼(레지 장 페이지)의 사랑이 주된 소재다.

브리저튼에 대한 회의적 평가 중 첫 번째는 브리저튼이 결국 ‘로맨스 포르노’라는 것이다. 지난 8일 한 일간지의 기사 ‘한 달 만에 8200만 명 봤다… 로맨스 포르노에 빠진 여성들’이 짚었듯 결국 브리저튼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성 주인공 레제 장 페이지에 대한 열광이 아니냐는 것이다. 매력적인 남성과 여성이 보여주는 ‘29금’ 장면들이 결국 인기를 끈 요소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 로맨스 포르노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 장르다. 한 예로 ‘365일’(365days) 역시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베드신이 인기 요소였다. 이 영상 역시 넷플릭스에서 한동안 인기 1위 영상을 기록했고, 남자 주인공인 미켈레 모로네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마마무의 화사가 언급하면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브리저튼 인기 요소 역시 이와 비슷하다.

▲브리저튼 공식 포스터.
▲브리저튼 공식 포스터.

브리저튼에 대한 회의적 평가 두 번째는 이 드라마에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의 결실은 결혼이고, 특히 ‘출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여성 주인공 브리저튼은 사교계에서 남성의 선택을 받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다.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공작과 결혼했지만 계속해서 아이를 원했고 마지막화에서 아이를 낳으며 행복을 ‘완성’하는 브리저튼과 사이먼의 이야기는 시대극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세계적으로 저출산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 낳는 이야기’가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라는 점은 재밌는 현상이다.

예쁘고 순수한 자작의 딸이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공작의 아들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상대(사이먼)는 바람둥이이며 결혼은 극구 거부한다. 알고 보니 그 남자 주인공에게는 가족에게 받은 아픔이 있었고 여주인공과의 사랑으로 이를 극복. 너무 흔한 연애 스토리가 아닌가.

▲브리저튼 공식 예고편 영상 가운데 갈무리.
▲브리저튼 공식 예고편 영상 가운데 갈무리.

이런 한계에도 브리저튼에 빠지게 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재미는 디테일에 있다. 브리저튼은 전형적인 연애물의 뼈대는 그대로 가져오되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우선 흑인 공작과 흑인 여왕이라는 설정이다. 드라마 속에서 사이먼 공작을 키운 댄버리 부인은 왕이 흑인과 사랑에 빠져 흑인 왕족 혈통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시대극이지만 빌리 아일리쉬(Billie Eilish)나 마룬5(Maroon5) 등 팝음악을 편곡한 것도 현대적 요소다. 

시대극 속 현대적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인공 브리저튼의 연애 방식은 전통적 신데렐라의 것과는 다르다. 대표적 장면을 꼽으면 브리저튼이 추문에 시달릴 때, 그녀를 스토커처럼 쫓는 남성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다. 클리셰처럼 남자 주인공이 달려오긴 했지만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가 주먹을 날려 스토커 남성은 바닥에 쓰러진 상황이었다. 이런 전개는 연애물의 클리셰를 깨면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브리저튼과의 결혼을 계속 피하는 공작 사이먼에게 결국 ‘결혼하자’고 선포하는 것도 그녀다. 사이먼은 브리저튼과 결혼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죽을 수도 있는 결투를 한다. 브리저튼은 “아니, 나랑 결혼하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거야?”라며 모욕적 상황에 화를 낸다. 황당한 결투에서 “그냥 결혼해!”라며 결투를 끝내버리는 것도 브리저튼이다.

결혼 이후 아이를 갖는 걸 극구 거부하는 사이먼을 설득하는 것도 브리저튼이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이미 죽어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랑하는 나에게 고통을 준다고요?” 브리저튼 역시 서툴기에 화를 내고 다투긴 하지만 관계에서 필요한 것을 설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브리저튼이다.

▲브리저튼 공식 예고편 영상 가운데 갈무리.
▲브리저튼 공식 예고편 영상 가운데 갈무리.

물론 그녀가 그렇게 원하는 것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옛날 시대극’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에게 선택 받아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것만이 미덕인 시대에서도 브리저튼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체성을 발휘한다.

메인 주인공인 브리저튼의 주체성에 ‘틀 안에서의 주체성’이라고 지적하는 시청자도 물론 있을 것이다. 브리저튼 시리즈가 영리한 이유는 바로 그런 시청자들을 위한 장치도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브리저튼 동생 엘로이즈다. 사교계에서 1등인 언니 브리저튼과 달리 사교계를 매우 싫어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사는 여성들을 동경하는 엘로이즈. 엘로이즈는 자신의 글을 써서 인정을 받는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를 좇는다. 엘로이즈가 펼치는 추리극 역시 브리저튼 재미 요소 중 하나다.

브리저튼의 ‘19금 장면’만 본 것이 아니라 초반의 감정선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극 초반에는 사이먼 공작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지만 극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고민에 공감이 되지 않고 답답하게 느껴졌다”는 평도 나온다.

브리저튼 흥행 이유는 남성 주인공 매력뿐 아니라 여성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서사에도 있다. 사회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최대한 주체성을 발휘하는 브리저튼과 그것을 거부하고 한계 없는 사회를 꿈꾸는 엘로이즈. 결국 브리저튼은 여성들의 다양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브리저튼 시청자들이 19금 요소에만 열광한 것이라면 이 정도 메가 히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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