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용어인 ‘몰카(몰래카메라)’, ‘음란물’ 등을 언론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몰카’ 대신 ‘불법촬영’이나 ‘디지털성범죄’, ‘음란물’ 대신 ‘성착취물’을 써달라는 요구다. 관련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리벤지포르노’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이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공동대표 강미정·김정덕)’이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 한해 디지털성범죄를 ‘몰카’로 보도한 기사는 1328건, 지난해 하반기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 성착취물을 ‘음란물’로 보도한 기사는 1434건 등 부적절한 표현을 쓴 기사가 총 2762건에 달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시정권고를 요청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몰카를 놀이·예능 요소로 활용한 경우를 제외하기 위해 ‘몰카’를 검색하면서 검색도구에서 ‘웃음’을 제외하고 정치·사회 범주로 한정(연예·문화 등 제외)해 1월부터 12월까지 지난 한해 보도를 조사했다. ‘음란물’의 경우, 검색도구에서 ‘아동’과 결합해 사용한 경우로 한정했고 법률용어를 개정한 지난해 6월2일부터 12월까지 반년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 시정권고 대상 언론사 및 기사 개수. 자료=정치하는엄마들
▲ 시정권고 대상 언론사 및 기사 개수. 자료=정치하는엄마들

 

해당기간 두 표현을 가장 많이 쓴 언론사는 세계일보로 279건의 보도가 있었다. 연합뉴스(273건), 조선일보(192건), 국민일보(182건), 매일경제(180건), 중앙일보(179건), 한국경제(173건) 등이 뒤를 이었다.   

‘몰카’ 대신 ‘불법촬영’ ‘디지털성범죄’

정치하는엄마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던 ‘몰카’는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하며 반응을 살피는 이벤트나 장난 등 유희적 의미를 담고 있어 범죄를 순화시키기 때문에 심각성을 나타내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9월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몰카가 아닌 불법촬영으로 표현했고, 지난 2019년부터 불법촬영을 범죄로 규정하며 몰카와 범죄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법령을 보면 불법촬영 뿐 아니라 촬영물 복제·유통·구입·시청 등 일련의 행위가 모두 범죄다. 이에 언론이 ‘불법촬영’, ‘디지털성범죄’라는 적합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 '몰카'(위)와 '리벤지포르노' 등의 표현을 쓴 언론보도
▲ '몰카'(위)와 '리벤지포르노' 등의 표현을 쓴 언론보도

 

‘음란물’ 대신 ‘성착취물’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로 지난해 6월2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용어를 ‘아동·청소년이용성착취물’로 바꾸고 해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음란물’은 범죄 피해자를 음란한 행위를 한 자로 간주해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디지털성범죄를 과소평가하는 용어”라며 “취약한 상황에 처한 아동·청소년이 쉽게 범죄대상이 되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용어가 개정됐음에도 언론에서 ‘음란물’ 사용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사회적으로 디지털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선 언론이 올바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모니터링 자료를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내 시정권고를 요청했다. 언론중재위 심의기준 제2장 제12조(범죄묘사)를 보면 언론은 범죄행위를 미화하거나 정당한 수단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 

한편 불법촬영물로 피해자를 협박한다는 의미의 ‘리벤지포르노’ 역시 함께 고민할 표현이다. 리벤지는 보복·복수를 뜻하는데 피해자가 보복을 유발할 만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을 포함한 용어다. 이에 불법촬영물을 가지고 상대를 협박하거나 이를 유포하고 시청하는 일련의 집단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사적인 갈등으로 사안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지난해 11월28일자 한겨레21 보도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리벤지포르노’대신 ‘이미지 기반 학대(image-based abuse)’를 사용하고 있다. 피해자가 촬영에는 동의했더라도 동의없이 유포할 경우 학대로 여기는 것이다. 대상 이미지는 성적인 신체부위, 샤워하는 모습 등 사적인 사진, 종교적으로 착용하는 복장을 벗은 모습 등을 포함한다. 

▲ 범죄. 사진=pixabay
▲ 범죄. 사진=pixabay

 

언론보도 분석·조사를 한 정치하는엄마들 온라인운영팀 수경 활동가는 “심각한 범죄를 가벼운 용어로 포장한 3000여건의 기사들이 내년 초 다시 자료 발표 때는 ‘0건’이 되길 바란다”며 이번에 문제된 언론사들의 후속조치를 촉구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 계획을 밝혔다. 

베로니카 활동가도 “언론은 자극적 표현과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암적인 폐습을 도려내고 국민 정서를 고려한 보도에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그램 n번방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아동·청소년 피해가 세상에 드러났다”며 “온라인그루밍, 스토킹, 지인능욕 등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된 사회 분위기에 따라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와 인권침해 현장을 스릴러 드라마로 착각하지 않는 분별과 윤리의식으로 보도와 취재에 임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언론사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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