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달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10년 전 서울시장직을 던졌던 자신에게 “야, 이 ‘정치 초딩’ 오세훈아, 그때 왜 그랬어. 네 돈 아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며 “정치적으로 미숙아였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나 스스로를 ‘정치 초딩’이라고 자학하는 거”라고도 했다.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을 해선 안 된다’는 확신에 차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내던져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는 식의 비판은 접어두고, ‘정치적 미숙아’, ‘자학’의 뜻으로 ‘초딩’을 쓴 것에 주목해보자.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주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이, 스스로 ‘초딩’이라고 칭하며 이를 폄하하는 뜻으로 썼다는 건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나이가 어린 것을 미숙하고 열등하다는 뜻으로 쓴 멸칭은 급식충, 중2병, 초글링 등으로 적지 않다. 최근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린이’다. 주식투자 초보자는 ‘주린이(주식+어린이)’, 요리에 서툰 이들은 ‘요린이(요리+어린이)’ 등으로 부르는 신조어다. 

▲ 어린이들. 사진=pixabay
▲ 어린이들. 사진=pixabay

 

‘~린이’에서 ‘어린이’는 미숙하고 서툴다는 뜻으로 쓰였다. 무언가를 처음 해 능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을 비유했다. ‘주린이’로 지칭되는 대상은 실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요리를 어른보다 잘하는 어린이나 요리를 어린이보다 못하는 어른도 있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잘 못한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류에 따라가지 못하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린이 중에는 뭔가를 처음 시도했는데도 잘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땐 언어도 금방 배운다. 수영·절대음감·암기·암산 등 다들 어렸을 때 처음부터 배우지도 않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무용담 하나쯤 있지 않나.

토스의 한 에디터는 지난 3일 SNS에 “토스 및 토스증권에서는 ‘주린이’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며 기자들에게 “가급적 ‘투자 입문자’나 ‘초보 투자자’라는 말로 대신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토스증권이 공식 출범했는데 2030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한 다수 언론보도는 ‘주린이’라는 말을 썼다. 

▲ stop. 사진=istockphoto
▲ stop. 사진=istockphoto

 

‘어린이가 미숙하다’는 주장은 ‘신체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내린 편견이다. 어린이들이 하지 않는 파렴치한 짓을 하는 어른들도 많고, 어린이보다 미성숙한 어른도 많다. 

‘어린이’는 1920년대 방정환 선생이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로 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쓰기 시작한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도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로 정의했다. 어린아이를 대접해서 부르는 표현인데 오히려 언론에서 아이들을 폄하하는 맥락에서 사용한 것이다. 

인종·언어·종교·장애 등 차별금지의 기준 중에는 ‘나이’도 포함한다. 굳이 ‘초보자’, ‘입문자’라는 대체어가 있는데 ‘어린이’라는 말을 계속 끌어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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