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생각 없이 쓰는 표현들이 있다. 심지어 그런 말을 써도 괜찮냐고 누가 물어도, 바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익숙한 단어들도 있다. 

지난 2일 미디어오늘은 “‘품절녀’ ‘품절남’ 기사에 이런 표현 쓰지 맙시다”란 기사를 보도하고 SNS에서 부적절한 표현, 다시 생각해볼 만한 표현에 대해 제보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독자에게 의견이 왔다. ‘손절’ 대신 ‘절연’, ‘몸값’ 대신 ‘연봉’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손절’은 손절매의 준말이다. 국어사전에는 “앞으로 주가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미 지출한 비용이지만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을 고려하지 말고 향후 손해를 줄이기 위해 주식을 팔아 더 큰 손해를 막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인간관계에도 앞으로 손해가 예상되니 관계를 끊어내는 상황에도 사용된다. 

▲ 사진=istockphoto
▲ 사진=istockphoto

 

중앙일보 지난달 28일자 “의절 대신 손절한다, 사람이 자본이 됐으니까”란 칼럼을 보면 경제용어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칼럼을 쓴 문소영 문화부장은 “인간관계를 매몰비용과 손절의 차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몇 년 전 인터넷에서 20년 베프를 절교가 아니라 ‘손절했다’고 쓴 글을 처음 봤을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현대인은 인간관계에서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를 포함한 투자와 수익을 무의식적으로 따지는 것”이라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의 ‘인적자본이론’도 언급했다. 

문 부장은 이런 현상이 꼭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철학자들이 우려한 대로 은연중에 인간을 물화물화(物化)하고 도구화하는 사고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교적 ‘절연’이나 유교적 ‘의절’ 대신 자본주의적 ‘손절’을 쓰는 시대. 이제 그 명암을 돌아볼 때”라며 글을 마쳤다. 

같은 맥락에서 ‘몸값’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보자. 

▲ '몸값'이란 단어를 쓴 언론보도
▲ '몸값'이란 단어를 쓴 언론보도

 

네이버 포털 국어사전에서 ‘몸값’을 검색했다. 팔려 온 몸의 값, 사람의 몸을 담보로 받는 돈, 사람의 가치를 돈에 빗대어 낮잡아 이르는 말 등 세가지 뜻이 나왔다. 다음 포털 국어사전에도 ‘몸값’을 검색했다. 사람의 몸을 근거로 조건을 붙여 매기는 값, (기본의미) 팔려 온 사람의 값, 성적인 관계를 매개로 지불하는 매춘의 값 등 세가지 뜻이 나왔다. 

몸값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돼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처녀와 원조교제를 원하는 남성이 고등학생과 모텔에 가서 대화를 하다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화대를 깎으려 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국어사전이나 해당 영화에서 ‘몸값’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손흥민의 몸값’과 같은 뉘앙스의 표현이 아니었다. 

주식 관련 기사가 아닌 인간관계 관련 내용에서 ‘손절’이란 단어를 쓰거나 연봉 대신 ‘몸값’을 사용한 언론보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미디어오늘도 이런 용어를 과거 사용했다. 앞으로 이런 표현 사용에 대해 좀 더 숙고할 예정이며, 다른 언론에도 이왕이면 손절 대신 절연·의절, 몸값 대신 연봉 등의 표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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