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현장 취재기자 41명이 낸 성명이 한겨레 안팎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성원들은 이른바 ‘조국 사태’ 보도를 둘러싼 논쟁이 내부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언론사 내 86세대와 그렇지 않은 취재기자 사이 인식 차가 벌어져온 가운데 줄곧 첨예한 법조 분야에 현장 소통 문제가 겹치며 부인할 수 없는 오보 사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범진보진영 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인식 차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겨레 21~27기 현장 취재기자 41명은 지난달 26일 한겨레 국·부장단에 이메일로 성명을 보냈다. 현장 기자들은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한겨레의 법조 기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고 했다. 햇수로는 3년~11년차 기자가 연명했다. 성명은 이후 전 구성원에 공유됐다.

성명은 한겨레의 최근 법조 보도 사례를 언급하며 ‘현장 목소리를 배제한 채 무리한 편들기’가 지속됐다고 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을 감싸는 보도가 오보로 이어졌고, 추미애 장관의 틀린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으며,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다음날 편집회의에서 현장 취재 내용과 정반대인 제목이 지면 배치됐다고 했다. 기자들은 국장단과 사회부 데스크가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 한겨레 기자 “정치적 이해 따라 법조기사 작성” 집단 성명]

임석규 편집국장은 28일 사내 구성원에게 메일을 보내 사과 뜻을 밝혔다. 임 국장은 “지난해 유독 법조 관련 이슈들이 많았다. 민감한 사안들이었으니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 팩트가 뭔지 더욱 엄밀하게 점검하고 꼼꼼하게 짚어봐야 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개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놓친 점이 뼈아프다”고 했다. 이춘재 사회부장과 김태규 법조팀장은 같은 날 보직 사퇴했다. 한겨레는 이틀 뒤 웹사이트에 이용구 차관 보도 관련 사과문을 올렸다.

▲1월29일 한겨레 2면 ‘이용구 차관 관련 보도’ 사과문
▲1월29일 한겨레 2면 ‘이용구 차관 관련 보도’ 사과문

성명은 사내 여러 반응을 이끌어내며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명의 한 한겨레 구성원은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게시자는 “거시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없는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경우엔 망나니의 미친 칼날이 될 수 있다”며 “기사의 방향은 현장의 보고와 데스크(부장과 팀장)의 판단을 토대로 해서 편집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시자는 이어 “한겨레 기자로 일한다면 언제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큰 진실을 고려하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한다”며 “가치와 방향에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국일보처럼 중도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현장 기자 성명을 두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다”며 “선의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선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이 글은 성명 내용을 반박하기보다 논의를 희석하는 면이 있다. 현장 기자 성명이 한겨레가 낸 오보와 이를 발견하고도 시정하지 못하는 취재 보도 시스템을 언급했는데, 게시글은 이에 ‘진보 가치’로 답했다. 한겨레가 발표한 사과문 취지에도 반하는 성명이다. 복수의 15년차 이상 한겨레 구성원이 글을 SNS에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했다.

단순 ‘신구·세대갈등’ 아냐, ‘민주당’에 대한 오랜 시각차

다수 언론이 한겨레 성명 사태를 ‘신구갈등’으로 규정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겨레 기자들은 편집국 내 86세대 기자와 현장 기자들의 시각 차이가 오랜 문제라면서도 단지 ‘세대 차이’로만 봐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겨레 기자들은 두 성명이 사내 고‧저연차 집단의 의견을 단순 대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 A 기자는 “연차 높은 기자 가운데 현장 기자 성명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책임지는 위치인 탓에 연명할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 기자는 “성명 뒤 높은 선배 기자들로부터 ‘기자들이 맘고생을 많이 했겠다,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했다. C 기자는 “여러 고연차 선배들이 유사한 얘길 한다는 말을 다수에게 전해 들었다”면서도 “단순화하긴 어렵다.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젊은 기자도 있고 이른바 ‘문파’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현장 기자 성명 취지에 공감하는 기자들은 데스크가 정부 편향적으로 기사를 판단해온 데다 조직 내 소통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성명을 낸 기수보다 높은 연차의 한 기자는 지난달 31일 사내 게시글을 올려 “(이번 사안은) 조국 사태 이후 계속되는 편집국의 편향과 무능이 겹쳐진 문제”라고 했다. 이 기자는 “법조의 문제는 지난 1년여간 사회 전체를 달구는, 나아가 한겨레 편집국 전체의 정체성을 표하는 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부장과 부서원의 소통을 넘어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능력 문제”라고 했다.

이 기자는 “‘검찰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기자는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열망 또한 시니어들과 차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성명은) 민주당 정권이 ‘명분’만 앞세우며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명분’을 감싸느라 ‘사실’에 눈감지 말자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기자들은 민주당을 대하는 한겨레 내 인식 차는 오랜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겨레 D 기자는 “조국 사태 이후 반복되는 건, 오랫동안 86세대의 장기 집권 체제다. 현 편집국 지도부는 (아래 세대와 비교해) 민주당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젊은 기자들은 정권을 잡는 순간 권력이라고 인식하지만 그 위 구성원은 민주당이 같은 편이라는 정서가 있다”고 했다.

C 기자도 “단순화하긴 어려우나 박원순 시장 사망 등 국면에서 윗 기수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과 동료의식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젊은 세대도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한겨레의 가치를 지향해 여기 모였지만,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와 동질감을 느끼느냐 측면에서 다르다. 그래서 현장 기자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을 때 갈등이 생기거나 위 기수 선배들이 번뇌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법조 취재 특성에 조직내 소통 문제 겹쳐

성명을 쓴 기자들은 해당 성명이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두 번째지만, 무력감 끝에 나왔다고 말한다. E 기자는 “조국 사태 뒤 현장 기자들은 더 큰 무기력과 열패감에 빠졌다. 사장과 국장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는 근본적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성명을 보면 오보나 편집부원의 비판 글 등 앞서 문제를 제기할 사건들도 몇 건 있었다”고 했다.

복수 기자는 이 문제가 기본적으로 법조 출입처 시스템 풍토 탓에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F 기자는 “(한겨레 법조 보도 문제는) 검찰 대 정부의 싸움이 아니라 검찰 안의 싸움에 가깝다. 이용구 차관 폭행 보도는 윤석열 라인이 출처다. 이 사안이 불기소 처분될 사안이라는 보도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에서 나왔다. 요약하면, 검사들 싸움에 기자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D 기자는 “타 부서에 비해 출처를 묻지 않는 법조 출입처 시스템이 오보를 부른 면이 있다. 일선 기자와 법조팀장, 법조를 오래 한 선임기자가 만나는 검사 ‘레벨’이 다르다 보니 선배가 가져온 정보가 고급정보로 신뢰받는 관행이 자리잡았다”고 했다.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성명이 언급하는 내용이 편집국의 논조 편향이 아닌 법조팀 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G 기자는 “법조나 사회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보인다”며 “임석규 편집국장 체제의 편집인들은 널널한 사람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기사를 쓰며 (이번 편집국) 데스크에 의해 내용이 주제의식에 안 맞게 흔들린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 한겨레 기자는 사내 게시글을 올려 “시간 제약 등 여러 문제로 데스크가 판단을 하고 기사 방향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한겨레 스탠스는 매우 논쟁적이다. 선후배와 부서,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논쟁이 끝이 없다. 내 의견이 100% 맞다고 확신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서로 견뎌줘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현장과 소통 부재가 법조 보도에서 특히 두드러졌지만 편집국 전체에 퍼졌다고 반박했다. 한 기자는 답글로 “정당팀이라고 왜 기사 방향에 (일선 기자의) 불만이 없겠느냐. 현장에는 다 있다. 다만 중간 관리자들이 법조보다 훨씬 섬세하게 관련 문제를 조율하고 판단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C 기자도 “(여타 부서는) 법조팀처럼 현재 치열하고 뜨거운 주제를 다루진 않아 비교할 바 아니다. 부장 재량에 따라 달랐지만 부서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켜켜이 쌓여왔다고 본다”고 했다. 이 기자는 현 편집국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토론단위 확대’나 ‘보도 점검 자리’, ‘현장 기자 비상구’ 등이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편집국 조직 구조도 현장 기자의 문제 제기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D 기자는 “핵심은 중간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라며 “한겨레의 현 부장제는 부장-차장-팀장-팀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모든 편집회의는 국·부장단이 하는데, 단계가 여럿인 데다가 부장과 팀원은 코로나19로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현장 기자들이 발제해도 내용이 깎이는 데다가 기자들의 일이 너무 많은 탓에 자신의 발제를 관철하기까지 업무 흐름이 복잡해졌다. 부장단은 이 과정을 겪지 않으니 ‘우리는 현장 기자들이 쓰겠다고 하는 거 못 쓰게 한 적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직이 권위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국 내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는 데에 다수 기자가 입을 모았다. 이번 성명 사태를 ‘정권 편향’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 F 기자는 “예민한 사안이 있으면 편집위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해야 한다. 국장이 주도하고 다른 의견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토론이 거의 없다”고 했다. B 기자는 “‘한겨레 신구갈등’으로 보도되거나 익명게시판 글이 자극적으로 기사화됐지만 사실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고 공감한다”고 했다.

한겨레가 수평적 조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논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안팎에서 나온다.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회 외부위원을 맡고 있는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건강하다고 보는 부분은 현장 기자들의 문제 제기에 내부가 반응하면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3일 편집국 간담회를 열어 이 문제를 토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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