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복귀한 지 꼭 1년이다. 인트라넷에 접속하면 이름 옆에 ‘전문계약직’ 대신 ‘사원’이라는 직급이 뜨고, 이번 연말 정산 때는 근무 기한이 ‘9999년 99월 99일’로 뜨는 기이한 영광도 맛봤다. 이제 정규직이 되어 다른 사원들과 똑같은 신분이 되었다는 징표들은 마치 언제 붙었는지 모를 작은 스티커들처럼 일과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처음 복귀 했을 때 우릴 향한 걱정 어린 시선은 누군가 말로 뱉지 않아도 느껴졌다. 과연 선배들과 섞여 지낼 수 있을까. 저들을 원하는 부서가 있을까. 애초에 ‘계약직 아나운서’라는 존재 자체가 기이한 것이었기에, 계약직이 부당해고 될 수 있다는 결론 역시 낯설었을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떤 문제가 있을는지 몰라도 막연하게 퍼져있는 껄끄러움을 이해 못 할 일은 아녔다. 

그런데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그건 지나간 아픔을 가시로 만들지 않으려는 우리 노력만큼이나, 우리가 제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준 선배들 덕이 크다. 이겨 돌아왔다고 한들, 어디 잘한 것만 있었겠는가. 주먹을 날리면 맞은 사람만큼 때린 사람 주먹도 저리다. 처음에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를 떠나,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아프지 않은 쪽은 없다. 서로가 자기 상처를 드러내기보단, 일단 나아가자는 합심을 한 건 모두가 박수받을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은 이제 끝났다. 예전 일은 마치 없었던 듯 살아가도 괜찮을 테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계약직 아나운서로 기억되고 싶다. 

계약직 신분은 한때 뚫고 나가야 할 거대한 장벽이었지만 이제는 구석진 세상 한편을 이해하는 열쇠다. 숱한 비정규직 뉴스를 전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을 주게 된다. 정규직으로 시작했더라면 몰랐을 것들이다. MBC도, ‘계약직 아나운서’ 이후 그 어떤 구성원도 효율 논리로 비정규직화하기 어렵게 되었다. 회사의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풀고 싶은 숙제가 있다. 이제 정규직이 되었다는 안도 속에 비로소 꿈을 펼치는 게 아니라, 계약직이었어도 경계 없이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다. 그리하여, MBC에 출근하는 모든 이들이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보며 작은 희망을 품기를 감히 소망한다. 계약직 아나운서로 남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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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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