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기자단 중심 출입처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서·북 유럽 등지에서 정부 기관의 공보 대상은 일차적으로 대중이며 기자들은 등록제를 기반으로 기관을 취재한다. 취재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론인 차별 문제는 대부분 비협조적인 정부 기관이 기자 취재를 통제하는 경우다. 언론인들은 이같은 폐쇄성에 서로 연대해 맞선다. 한국 기자단 관행처럼 기자가 다른 기자를 평가하는 문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독일, 영국, 핀란드 등 유럽 국가는 공식적이고 투명한 언론 대응이 원칙이었다. 수사기관을 포함해 정부 부처 대부분이 트위터 등 SNS를 적극 활용했고 보도자료도 ‘기자 집단’을 먼저 거치기보다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경찰 기관 홈페이지만 봐도 언론 담당관 연락처를 찾기 쉽다. 기자가 메일링 서비스를 요구하면 이에 응한다. 일반 시민이 등록할 수 있는 공보자료 발송 서비스도 있다. 

언론인을 차등화하는 제도도 없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장정훈 독립PD는 “매체력에 따라 취재 협조 정도가 다른 상황은 당연히 있겠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며 회견장을 출입하지 못하거나 취재나 정보 접근에서 차별을 겪은 적은 없었다”며 “유력 정치인 선거 유세 현장 등 취재진이 몰릴 땐 ‘선착순’이다. 예로 선거캠프에서 기자단 버스를 따로 운영하면 기자들에게 비용을 받고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고 말했다.

▲ 2018년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2018년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또 장 PD는 “보통 기자회견은 모든 언론사에 열려 있고 누구나 입회해서 질문할 수 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 책임자가 사건을 브리핑하고 질문을 받는 것도 현장에 모여든 모든 기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전했다. 

독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진 기자도 공공 정보 접근에 크게 차별받은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법원에 기자증 사본을 보낸 후 원하는 판결문을 받아 봤고, 정부부처는 물론 경찰서 보도자료도 동등히 제공받을 수 있었다. 또 공공기관부터 기업까지 다양한 취재원이 보도자료를 직접 등록하는 통합시스템이 있어, 기자들은 이곳에서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기자증이 있는 누구나 등록 가능하다. 

독일 헌재, 기자단에 판결문 먼저 줬다 비판 직면

독일 기관이 증빙으로 요구하는 ‘기자증’은 보통 독일 기자협회(DJV)와 언론노조(Ver.di) 등에서 발급받는다. 자신이 쓴 원고나 원고료 영수증을 통해 자신의 주 수입원이 취재 활동임을 증명하면 된다. 이유진 기자는 “기자증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급받을 수 있다”며 “독일 프리랜서 기자는 4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취재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 직종에 대한 인식도 더 넓다”고 말했다.

독일에도 ‘법조기자단’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보 접근이나 취재 기회에 독점권을 주는 일은 금기시된다. 2019년 여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판결 내용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법조기자단에 우선 배포했다가 언론평의회의 비판을 받았다. 독일 언론 유관 단체들이 꾸린 자율규제기구 언론평의회는 “국내 다른 법원에선 사전통보 관행이 일반적이지 않다”며 “연방헌재는 특정 언론인을 우선시했으며, 이 같은 ‘시간 우위’는 다른 동료들에게 불리했다”고 했다. 언론평의회는 연방헌재 소장에게 기자단 사전통보를 중단하거나 통보 대상을 확대하라고 서한을 보냈다.

▲ 독일 기자증. 독일 기관이 증빙으로 요구하는 ‘기자증’은 보통 독일 기자협회(DJV)와 언론노조(Ver.di) 등에서 발급받는다.
▲ 독일 기자증. 독일 기관이 증빙으로 요구하는 ‘기자증’은 보통 독일 기자협회(DJV)와 언론노조(Ver.di) 등에서 발급받는다.

특정 기자 취재 거부하다 제지당한 핀란드 재무부

핀란드언론인조합(UJF)에 따르면 핀란드엔 정부 부처가 우선적으로 취재에 응하는 기자단은 없다. 핀란드 총리실은 모든 부처를 대상으로 언론 공보 원칙을 명시한 ‘향상된 정부 공보를 위한 지침’을 두고 있다. 지침은 “공권력은 언론과 소통하며 적극적이고 공정하며 서비스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대원칙을 밝힌 뒤 “기자회견과 브리핑이 열리면 모든 언론사 대표들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참가자 수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 기준은 공정하고 명확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비참여자에게도 행사 주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핀란드 재무부는 2015년 프리랜서 기자의 공무원 인터뷰 취재를 거절하고 백그라운드 브리핑 참석을 불허했다가 의회 옴부즈만에 진정이 제기됐다. 재무부는 ‘기자가 과거 취재 당시 약속을 어기고 신문이 아닌 영상물에 인터뷰를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옴부즈만은 재무부 조처에 “수년 전 다른 사건과 관련 있기에 비례성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결론 내렸다. 

▲ 야리 한스카 프리랜서 기자는 2015년 10월 핀란드 재무부의 취재 거부 행위에 대해 의회 옴부즈만에 진정을 제기했다. 사진=핀란드타임스 보도 갈무리
▲ 야리 한스카 프리랜서 기자는 2015년 10월 핀란드 재무부의 취재 거부 행위에 대해 의회 옴부즈만에 진정을 제기했다. 사진=핀란드타임스 보도 갈무리

영국에는 한국과 유사한 기자단이 하나 남아 있다. 의회를 취재하는 기자 집단으로 ‘로비 저널리스트’라 불린다. 대부분의 영국 기자들은 이를 ‘엘리트 문화’라고 비판한다. ‘자유 언론’ 가치에 반한다는 비판 칼럼도 현지 언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로비 저널리스트는 의회 보안 심사를 거쳐 의회 출입증을 발급받고, 총리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정기브리핑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왓츠앱 그룹방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정보를 교환한다. 

언론사들이 폐쇄적 운영에 반발해 탈퇴한 적도 있다. 1980년대 후반 신생 매체였던 인디펜던트지와 가디언지는 ‘브리핑 내용을 데스크에도 발설 말라’는 로비 기자그룹 규칙에 반발해 그룹에서 탈퇴했다. 당시 의회에 출입했던 데이비드 헨크 전 가디언‧현 프리랜서 기자는 “이후 정부가 로비 브리핑 내용을 요약해 공개 발표하기 시작했고 로비 기자그룹도 더 개방적이 됐다”고 했다.

영국엔 공무원이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이 없지만, 유착 관행이 ‘로비 기자’들 사이에 일부 남아있다. 헨크 기자는 “공무원이 기자에게 밥 사주는 관행이 있다면, 사람(기자)들이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로비 기자가 장관이나 특별 고문에게 점심식사를 사주며 정보를 교환하는 경우가 있다. 다수 기자는 로비 기자 시스템을 엘리트 문화라고 여기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 영국 의회는 웹사이트에 로비저널리스트로 등록된 기자의 명단과 소속 언론사, 겸직하는 유관 직책을 모두 공개한다. 순서는 알파벳 순이다.
▲ 영국 의회는 웹사이트에 로비저널리스트로 등록된 기자의 명단과 소속 언론사, 겸직하는 유관 직책을 모두 공개한다. 순서는 알파벳 순이다.

언론 자유 지수가 하위권인 터키에서도 기자단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터키는 공개 발표와 기자회견 중심의 공보가 한국보다 활성화된 편이다. 터키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는 국회, 군대 같은 기관이 아니라면 터키 공공기관에는 한국과 같은 출입제도나 기자실이 없다고 밝혔다. 유명인이나 고위공직자 기자회견 등 취재 경쟁이 붙은 현장도 선착순으로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6년전 쯤 한 구청장 같은 공직자가 기자들의 편의를 봐준다며 기관에 기자용 휴게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즉시 ‘언론인 매수’로 비판받고 폐쇄한 사례가 있다”며 “법원이나 큰 관공서 주변 카페를 가보면 기자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독자적으로 취재원을 만나는 게 아니라, 기관 공무원이 기자들 여럿과 술 마시고 밥을 사주면 욕 먹는다. ‘매수’로 보인다”며 “기업에 밥을 얻어 먹긴 하지만, 공무원과 기자들 여럿이 모이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 터키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는 ‘터키는 정부의 공개 발표와 기자회견 중심의 공보가 한국보다 활성화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 터키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는 ‘터키는 정부의 공개 발표와 기자회견 중심의 공보가 한국보다 활성화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기자단 장벽을 벗어난 취재가 가능한 배경의 하나로 ‘기자증’ 제도를 꼽을 수 있다. 독일처럼 프랑스도 기사 원고와 원고료 등 취재와 기사작성이 주요 생계 수단임을 입증하면, 기자협회와 언론사주협회가 절반씩 위원을 구성하는 ‘기자증발급위원회’에서 기자증을 지급한다. 내부무가 기자증을 발급하는 터키는 자격 요건을 강화하며 통제 수준을 높이고 있다. 각국 정부 부처는 기자증을 증빙하는 언론인 취재에 협조한다. 

독일은 정부 기관과 공간적 거리를 둬야 독립성을 지킨다는 인식이 강하다. 독일 연방 기자단은 스스로 기자회견장과 취재 공간을 마련한다. 연방 정부는 베를린 연방 기자단 건물 기자회견장에서 일주일에 3번 정기 기자회견을 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곳에서 연례 기자회견을 한다. 사무공간이 필요한 기자들은 소정의 비용을 내고 기자단 건물에 입주하거나 동료 기자들과 공유 오피스를 임대하기도 한다.

▲ 앙겔라 메르켈이 1년에 한 번 기자회견을 여는 기자회견장은 정부 소유가 아니라 연방기자단 소유 건물이다. ⓒ 독일연방정부
▲ 앙겔라 메르켈이 1년에 한 번 기자회견을 여는 기자회견장은 정부 소유가 아니라 연방기자단 소유 건물이다. ⓒ 독일연방정부

기자단은 일본 문화, ‘보도자료 기사’는 드물어

반면 한국의 기자단 관행이 유래한 일본은 기자실 중심의 출입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기자들은 기자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거나 취재보도가 획일화하는 데에 경각심이 크다.

일본 기자들은 출입처로 출근해 해당 기관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취재한다. 10년여 경력의 일본 일간지 B 기자는 “출입처 기자실에서 보도자료를 보면서 전화를 돌려 2~3건의 기사를 작성하는 일상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했다. 일본 중앙과 지방 관청, 재계에 기자단과 기자실이 있다. 기자단 내 합의에 의해 새 가입자를 받는다. 기자단은 ‘기자 클럽’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선 공공기관이 기자 편의에 맞춰 기사형 보도자료를 제공하는 문화는 없다. 기자끼리도 획일적 보도를 피한다. 카미야 타케시 아사히신문 기자(서울특파원)은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등이 진행한 지난 10월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면접조사에서 “일본에도 보도자료가 나오지만 기사 형식은 아니다. 보도자료에 없는 것을 찾아내서 쓰는 것이 기사의 부가가치이고 그만큼 특종이 되니까 남들 다 쓰는 걸 안 쓰려면 취재를 더 해야 한다”며 “일본도 그런 일이 있지만 큰 사건이 일어나면 다들 비슷한 헤드라인을 쓰는 게 가장 창피한 일”이라고 전했다.

기자실 운영 문화와 폐쇄성에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B 기자는 “제대로 훈련을 받은 주요 언론사 기자들을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기자실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인터넷미디어등 새로운 매체가 배제되어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사에서 일해봤던 이 기자는 “한국의 출입처는 취재원이 기자단의 기자에게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이들이 기관에 공감하도록 운영되고 있다”며 “법원 기자실에 가면 ‘내 자리’가 있고 다른 언론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권리처럼 자리잡은 환경에서 취재원과 거리두기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장정훈 독립PD도 “한국 출입처 문화는 기자를 게으르게 만들면서 취재력과 상상력을 떨어뜨린다. 또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 언론사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각종 취재 특권을 부여해주는 건 공개적으로 뇌물을 주고 받는 것과 같은 행위로 볼 수도 있는데 국민들이 기자들 편의 제공에 세금을 쓰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출입처 문화가 저널리즘에 도움 된다면 지금쯤 한국은 영국보다 양질의 기사를 쏟아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게 객관적 현실”이라고 짚었다.

알파고 기자는 “기자단은 구조적 문제로 보인다. 일례로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언론관이 문제라고 비판받아도 그는 한국 대통령보다는 기자들과 자주 만났다”며 “공공기관이 언론을 파트너로서 적극 상대하고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기자들도 바뀐다. 과거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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