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현장 기자 40여명이 자사 법조 보도가 데스크 주도로 정권 편향적으로 작성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지만 개선된 게 없었다”며 사회부 데스크와 국장단에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 한겨레 데스크는 조만간 토론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기자 41명은 26일 한겨레 편집국 국·부장단에게 이메일로 보낸 성명에서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며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청와대나 법무부 관련 의혹 취재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며 결국 빈손으로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최근에는 한발 늦은 취재를 넘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운전 중 폭행을 감싸는 기사를 썼다가 오보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며 “이런 일들이 결국 현장에서 무기력을 넘어서 열패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다”고 밝힌 뒤 최근 한겨레의 청와대와 법무부 관련 3건의 기사‧사설 보도를 사례로 들었다. 기자들은 먼저 지난해 11월25일자 “윤석열 새 혐의…‘양승태 문건’으로 조국 재판부 성향 뒷조사” 기사를 두고 “추 장관의 틀린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한겨레는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을 조사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공개된 문건에 관련 내용은 없었다.

▲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기자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 인용 당시 현장 반응을 담는 보도도 실제와 정반대 내용을 작성토록 주문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2일 오전 한겨레 지면 계획에 “‘법원 초토화시킨 장본인인데…’ 윤석열 살린 법원 결정에 착잡한 판사들” 제목의 기사가 잡혔다고 밝힌 뒤 “애초 현장 기자들은 ‘법원이 추 장관의 행정권 남용을 제한했다’, ‘재판부의 법리와 양심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판사들의 반응을 묶어 발제했지만, 편집회의를 거치더니 취지가 정반대인 기사안으로 정리됐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결국 지면에서 빠졌다. 성명에 따르면 편집부에서도 같은 날 집배신에 ‘오늘자 1면을 보며’라는 비판 글을 올렸지만 국장단은 답변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지난달 21일 “이용구 차관 관련 검찰 수사지침 ‘목적지 도달 뒤엔 운행 중 아니다’” 보도에 대해서도 “무리한 편들기가 오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사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건에 경찰이 강화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이는 가운데 검찰 수사지침에도 이 건은 ‘운행 중’ 일어난 사건으로 아직 분류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기자들은 이 기사에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어도 어차피 특가법 적용을 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라며 “사실관계가 틀린 자료라는 현장 보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일부 내용만 수정해 이를 지면에까지 실은 이유가 무엇인지 국장단에 묻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이어 “심지어 지난 15일자 지면에 실린 ‘김학의 출국금지, 절차 흠결과 실체적 정의 함께 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은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다”고 비판했다. 해당 사설은 “일부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자체의 정당성까지 흔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기자들은 “인물을 떠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지켜온 가치”라며 “조국 사태 때부터 지적된 편들기식 보도가 이런 사설과 보도를 낳은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현재 법조 기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 그에 따른 부끄러움과 책임은 온전히 현장 기자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한겨레가 어쩌다가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사를 쓰게 된 걸까”라고 했다. 이어 “이해관계를 떠나 틀린 건 틀렸다고 비판하고, 의혹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취재해야 한다”며 “데스크에서 구체적인 정황이나 물증 없이 ‘한쪽 편을 드는 기사’를 현장에 요구하며 설명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자들은 지난해 법조팀도 비슷한 문제 제기를 수차례 전했지만 개선된 게 없었고, 국장의 ‘토론단위 확대’, ‘보도 점검 자리’, ‘현장 기자 비상구’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국장단과 사회부장, 법조팀장이 해당 기사와 사설에 대한 경위를 밝힌 뒤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고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

기자들은 성명 내용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를 전체 구성원에게 보내고 “현장 기자들의 요구를 전체 구성원과 공유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춘재 한겨레 사회부장은 “조만간 기자들이 해당 사안을 논의할 일정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국에서 과거에 해왔던 것을 보면 그런 문제 제기가 있을 때마다 그래왔다(토론 자리가 열렸다)”고 말했다. 성명 내용에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과 김태규 법조팀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한겨레 기자들은 지난 2019년 9월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비판 보도가 삭제된 것에 항의하며 “편집국장 이하 국장단은 ‘조국 보도 참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관련기사 : 한겨레, 조국 비판 칼럼 출고 후 삭제 후폭풍]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227

[관련기사 : 한겨레 기자 추가 성명 “어용언론 조롱 받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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