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회의사당 점거사태를 선동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온라인에서 퇴출됐습니다. 트위터가 그의 계정을 영구정지했고, 이어 페이스북도 같은 조치를 내렸습니다. 유튜브는 1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계정 중단 조치를 7일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고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극우 성향의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 ‘팔러’에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저지당했습니다. 구글과 애플이 앱마켓에서 팔러를 퇴출시켰고요. 심지어 아마존은 팔러의 서비스 호스팅 자체를 끊어버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죠.

관용할 수 없는 표현에 대해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그널 랩스’ 분석을 전한 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이 정지된 후 일주일 동안 선거 사기를 주장하는 소셜미디어 속 허위정보가 73%나 줄었다고 합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조치가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영구정지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 영구정지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 플랫폼의 조치는 ‘논란’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극단적 시민들의 주장이 ‘표현의 자유’냐 아니냐는 논쟁도 있지만, 이보다 더  뜨거운 쟁점은 ‘플랫폼 권력’ 그 자체에 대한 논쟁입니다.

저는 그동안 사업자들이 허위정보와 혐오표현에 자율규제로 대응해야 한다는 기사를 여러차례 써왔습니다. 법적 규제보다 정치적 논란의 소지도 적고, 생태계를 가꾸는 것이 사업자 스스로의 책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취재 때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런 우려를 전했습니다. “트위터의 판단에 대해 논쟁이 필요하다. 선거 기간 여론으로 심판 받는 후보자 발언의 진위 여부를 제3의 플랫폼 사업자가 판정해 대응하는 건 일종의 정치개입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이 발언을 부각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미국 현지 반응은 어떨까요. 언론에선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는 “기업들의 행동은 진보진영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이와 같은 조치가 누가 온라인에서 발언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가를 법이나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결정하는 데 대한 논란으로 옮겨붙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드 러벤펠드 예일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을 통해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통제받지 않는 새로운 권력을 가진 리바이어던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우려합니다.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나오는 괴물 이름입니다.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는데요.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아마존이 ‘팔러’의 호스팅을 끊은 사례를 언급하며 소셜미디어 계정을 정지시키는 것을 넘어 인프라 자체를 없애는 데 대해 부정적 견해를 전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트럼프 집권기에는 오히려 그를 방치하며 이용자를 유치하다, 막바지에 이르러 적극 대응에 나섰다는 점에서 공적 역할을 고민한 대응이 아닌, 사기업의 ‘이익’을 위한 판단이 아니었나 하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한편 유럽에선 보다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 플랫폼 기업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구글, 페이스북에 대한 강한 규제가 쏟아진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사업자에 대한 견제구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미국도 유럽도 아닌 우리는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지금도 국내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자체 심의에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이거나 혐오를 부추기는 콘텐츠에 소극 대응을 한다는 주장과 문제 소지가 없는 콘텐츠에 과도한 대응을 한다는 비판을 모두 받고 있죠. 특히 전자의 경우 페이스북코리아측이 ‘한남충’을 혐오발언으로 판단해 대응하면서도 ‘김치녀’는 그렇지 않다고 밝혀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 기업들이 더 강한 조치를 하게 된다면 논란을 피할 수 없겠죠.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당연히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 삼는 정치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고, 플랫폼이 방치하는 점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완벽하게 지워버릴 권한까지 플랫폼에 쥐어주는 게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적극적인 자율규제 조치에는 투명한 과정 공개가 필요하지만, 국내 사업자가 아닌 글로벌 플랫폼은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인색합니다.

자율규제 기사를 쓸 때마다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댓글을 접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정치적 검열’ 논란이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심의기구가 강력하고, 플랫폼 사업자가 정치권력에 취약한 특성도 있죠. 여권에서 연일 발의하는 ‘가짜뉴스를 제대로 처리 못하면 플랫폼을 처벌하겠다’는 식의 법안은 오히려 플랫폼에게 검열 권한을 강화시키는 아이러니도 있습니다.

고민을 적고 보니 어떻게 해도 해답이 없는 ‘노답’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막강한 권력은 견제하지 않으면 오남용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위원은 폴리티코 기고 글에서 이번 사건을 가리켜 “우리는 민주주의에 있어 디지털 플랫폼의 역할이 전환되는 시기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선 ‘언론개혁’이 미디어 부문 최대 과제입니다만, 이와 함께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논의와 토론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에게 망 사용료와 세금을 징수하고, 법적 규제를 하는 것 못지 않게 그들의 권력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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