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한 스푼] ‘서울공화국’에 균열 내는 지역 언론들
[저널리즘 한 스푼] ‘서울공화국’에 균열 내는 지역 언론들

프랑스의 대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프랑스 남부 시골 출신이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프랑스의 서울인 파리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그가 살던 지방은 특유의 강세를 지닌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부르주아 자제로 득실대는 이 고상한 학문의 전당에서, 부르디외는 남부 사투리를 감추지 못하는 촌놈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온갖 촌스러움을 내던짐으로써만 대학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표준말을 이르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 했다. 방송과 영화에서 ‘교양 없음’의 스테레오타입은 여전히 사투리다. 억센 시장 아주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조폭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부산 출신으로 사투리를 썼던 나도 중학교 때 상경한 후 애를 많이 먹었는데, 내 말투에 녹아있는 촌스러움에 교실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왕왕 있었다. 난 학창 시절 내내 내 안에 있는 지방의 흔적을 몰아내려 무척 애썼다. 후에 부르디외는 말투로 차별받았던 경험을 ‘아비투스’란 훌륭한 이론으로 승화했지만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것으로 아픈 경험을 마무리 지었다.

“홍매화가 벌써 천지빼까리! 지금 겨울 맞나?” 부산일보의 ‘사투리 뉴스’를 처음 알게 됐을 때 느꼈던 첫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서울말에 둘러싸인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신문과 방송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고향의 입말을 마주했을 때 그 느낌이란. 내 것 아닌 말로 포장하며 살고 있던 내게 ‘너는 그 자체로 괜찮다’며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사투리 뉴스를 기획했던 황석하 부산일보 디지털콘텐츠팀 기자는 “서울 1극 체제가 부른 다양성의 말살, 특히 언어의 획일화를 막는 것도 지역 언론의 역할”이라고 했다. ‘사투리 소멸’을 몸소 경험하고 있던 내게, 사투리 뉴스는 지역 언론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례였다.

여전히 언론엔 서울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울에서 폭설이라도 내리면 텔레비전 뉴스는 교통이 마비되고 출근길에 고생하는 회사원 모습을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내보낸다. 서울 부근에만 폭설이 내린 걸 마치 전국이 폭설로 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앙지’는 서울에 있는 언론사만이 독점할 수 있는 표현이고, 포털 뉴스에선 여전히 지역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런 ‘서울공화국’ 체제에서 묵묵히 지역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포항MBC는 아무도 제기하지 않았던 포스코의 산업재해 문제를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로 전했다. 부산일보는 33년간 온전히 들여다본 적 없는 지역의 상처, ‘형제복지원’ 사건을 10개월에 걸쳐 취재해 보도했다. ‘서울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 부당함과 반성해야 할 역사를 담은 중요한 이야기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수 있었을까.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지역 언론은 서울에 골몰하느라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지역 이야기를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 보도한다. 사투리 뉴스도 지역 문화에 애정을 갖는 지역 언론 고민이 반영된 결과였을 터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소외된 문제를 찾아낼 수 있게 되고, 좀더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다. 서울만을 외치는 이 시대, 말투까지 서울말이 독점하는 시대에, 지역 이야기를 기록할 지역 언론은 그래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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