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일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언론에 쓴소리했다. 10월25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망 후 그의 자손들 상속세 분석 보도를 본 뒤다. 당시 “이건희 상속세 11조, 호주 캐나다였으면 한 푼도 안 냈다”거나 “상속세 10조를 어떻게 마련하나”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11월2일 한겨레 칼럼 “[세상읽기]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재계 1위 재벌이 보유한 현금은 넉넉했다. 2007년 삼성 특검 때 발견된 차명재산 등을 차치해도 2014년 이 회장이 쓰러진 후 받은 배당금만 1조원이 넘었다. 무엇보다 한 가족의 상속세는 기업 경영과 큰 연관이 없었다. 최 교수는 ‘상속 리스크’까지 걱정하는 언론에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걱정”이자 “언론의 자기분열증”이라고 비판했다.

▲2020년 11월2일 한겨레 27면.
▲2020년 11월2일 한겨레 27면.

비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을 다룬 보도에도 유효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40개 매체 보도를 살펴본 결과 이 부회장 입장에 선 관점의 기사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재판의 관건인 ‘준법감시제도’ 양형 고려는 기존 미국 제도의 취지와 어긋나는 등 일반 상식에서 비판할 점이 다양했지만 소수 언론을 제외하면 기계적 중립에 빠진 보도가 최선이었다.

40개사 매체는 ABC협회가 지난 1월 발표한 2020년 일간지 유가 발행 부수 60위권 매체 중 스포츠·아동지, 영자신문 등을 제외한 매체다. 부수 순위대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한겨레, 문화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이다.

① 준법감시위 논란 ‘A vs B’ 중립이 최선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의 준법감시제도 제안은 시작부터 논란이었다. 재판부는 미국 연방법원은 기업범죄 재판에서 양형 기준으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여부를 반영한다며 이를 이 부회장 재판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과감한 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는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고 이 부회장에 묻기도 했다. 뇌물·횡령·범죄수익 은닉 등 범죄와 무관한 질문이다.

시민사회·학계 일각에선 즉각 집행유예를 위한 포석이라고 반발했다. 이 사건은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다. 관련 미국 연방법원 기준은 기업 범죄에 적용 가능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은 계열사 차원의 범죄가 아니라 개인 범죄였다. 또 이미 ‘범죄가 일어날 당시’ 작동한 준법감시제도가 대상이었다. 특히 대표이사가 연루된 경우 형이 가중됐다. 일반 시민 상식에 비춰 적용할 수 없는 기준을 무리하게 도입한다는 비판이 가능했다.

▲2020년 1월17일~2월4일 일부 보도 목록 갈무리.
▲2020년 1월17일~2월4일 일부 보도 목록 갈무리.

당시 보도는 ‘특검 VS 법원’ 식의 기계적 중립이 최선이었다. 한겨레, 국민일보 등 소수 매체만 “‘이재용 감형 위한 준법감시위’ 속내 드러낸 법원”, “항간에 ‘이재용 봐주기’ 소문 돈다‘…커지는 ‘삼성 준법감시위’ 논란” 등의 헤드라인을 걸었다. 매일경제와 동아일보 경우 독자가 재판부 논리의 허점을 알 수 없는 제목이었다. “이재용 재판부 ‘삼성의 약속 준법감시위 점검할 것’”(매경), “이재용 재판부 ‘준법감시委 엄격 점검’”(동아) 등이다.

② ‘대놓고 봐주기’ 외면, 준법감시위 긍정 조명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요소로 반영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40개 매체 중 다수는 외면했다. 이미 준법감시제도 양형 반영을 전제로 뒀고 2월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행보를 주로 소개하며 기대감을 전했다.

전자신문은 2월5일 준법감시위 첫 회의를 전하며 “삼성은 (1월9일) 준법감시위 설치를 공식화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7개 계열사 협약과 이사회 의결을 마치는 등 준법경영을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도 “삼성 외부에 설치돼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기구인 만큼 독자성을 담보할 사무국 규정, 위원회 위원 수당 및 여비 지급 규정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조명했다. 3~4월 회의가 이어지며 “삼성 준법위, 재판부 기피신청에도 소통·진정성 강화” 등의 긍정적 평가가 꾸준히 나왔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5월엔 그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이재용 대국민 사과, 직접적 감형 사유 아니지만 반성하는 모습은 고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니투데이는 “‘재판부 숙제’ 충실히 이행했다”고까지 적었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법조계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양형을 낮출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2020년 1~4월 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로 다뤄진 중앙일보 보도 목록.
▲2020년 1~4월 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로 다뤄진 중앙일보 보도 목록.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즉각 “법적 잘못을 도덕적 문제로 치환해 두루뭉술하게 사과하는 일은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삼성생명 공익재단 등을 통한 공익법인 사유화 문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법적 한도 초과분의 처분 문제 등 현재 방치되고 있는 삼성의 경영권 관련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책임지는 일”이라고도 밝혔다. 2008년 삼성 차명계좌 비자금 특검 수사 후 고 이건희 회장이 세금 납부, 사회환원 등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비중 있게 지면에 반영한 매체는 한겨레, 경향신문이다.

③ 검증 안 된 보도자료 “국민 60% 선처 바라”

4월과 6월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자료 인용 기사도 문제였다. 4월엔 “이재용 연관어 1위는 ‘코로나’…누리꾼 ‘재판’보다 ‘위기돌파’ 관심?”(중앙일보) 등의 보도가 나왔다. 해당 연구소가 1월26일~4월25일 동안 이 부회장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가 총 2만3145건으로 압도적이었고 ‘서울’이 2위, 경영과 산업이 각 3위, 4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재판’ ‘국정농단’ ‘특검’ 등은 30위권에 들지 않았다며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이 계속 성장해 코로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리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지난 6월8일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발 기사가 무려 80여개나 쏟아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지난 6월8일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발 기사가 무려 80여개나 쏟아졌다.

지난 6월에도 비슷한 보도가 쏟아졌다. 같은 연구소가 유사한 기법으로 여론을 분석한 결과 “국민 60%가 선처 의견을 냈다”는 보도다. 80여개 매체가 받아썼다. 팩트체커 매체 뉴스톱은 이를 “엉터리 분석”이라고 검증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개인 정보 문제로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만큼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데 연구소는 이를 분석에 썼다고 밝혔다. 공개된 방법론도 불명확해 샘플링 오류나 편향 문제를 분석하기 어렵고, 어휘가 쓰인 맥락을 보지 않고 임의로 긍정·부정으로 분류한 문제도 있었다. 지윤성 팩트체커는 “거의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고 밝혔다.

④ 6~12월 이재용 행보 집중, 가끔씩 ‘용비어천가’

6~12월엔 이 부회장의 법적 책임 규명을 경영 위기로, 이를 다시 국가 경제 위기로 연결하는 과장이 이어졌다. 동시에 이 부회장 경영 행보를 긍정적으로 조명한 보도가 꾸준히 나왔다. 6월 “‘갈길 멀다, 지치면 안된다’…이재용의 ‘K칩 광폭 행보’”(한국경제), 7월 “이재용 올해 현장만 14번 ‘강행군’…사법 리스크 악재는 여전”(아시아경제), 10월 “현지 직원인줄…베트남 휴대전화 공장 찾은 이재용”(조선일보) 등이다.

상당수 매체가 검찰 수사와 재판이 삼성전자 발전을 저해한다는 프레임을 반복하며 사법 절차 정당성을 공격했다. 8월 서울경제는 “삼성, 공격 경영 절실한데···수사→기소→재판 ‘뫼비우스 띠’ 갇혔”다거나 “‘라이벌들 다 쫓아오는데’···‘이재용 기소’ 4년째 시달리는 삼성”이라고 보도했다. 8월 문화일보는 “‘檢 리스크’ 시달리는 삼성… ‘다른 기업이면 이미 망해’”라고 제목을 달았다.

▲2020년 10월22일 매일경제 지면과 7월1일 한국경제(오른족) 지면 갈무리.
▲2020년 10월22일 매일경제 지면과 7월1일 한국경제(오른족) 지면 갈무리.

9월 헤럴드경제도 “다시 찾아온 ‘총수공백’ 위기…경영 옭아매는 ‘재판 리스크’”라며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패권 전쟁 등 지속되는 위기 속에서 전방위 경영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9월 이 부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되자 “수사에만 1년7개월 걸렸고, 수사심의위 권고가 나온 뒤 2개월을 더 끌다 결국 기소 결정을 내렸다. 하루가 천금 같은 기업인들로선 피가 마를 일”이라고 썼다. “이재용 끝내 기소, 이러니 기업할 맛 나겠나”라는 사설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7월 2분기에 매출 52조원, 영업이익 8조1000억여원을 올렸다고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영억이익이 6조2332억원에서 22.73%나 올랐다. 1분기과 비교하면 매출은 6.02% 떨어졌지만 영업이익은 25.58% 증가했다. 올해 초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36조2600억원, 영업이익 35조9500억원을 올렸다고 잠정 집계됐다. 2019년보다 매출은 2.54%, 영업이익은 29.46% 올랐다.

⑤ 12월 “준법감시위 긍정 평가” 물타기

12월 파기환송심이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왜곡 보도도 나왔다. 준법감시위 활동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를 두고서다. 특검 측 홍순탁 회계사, 재판부 측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삼성 측 김경수 변호사 등 3인이 평가했고 서울고법은 이를 법원 사이트에 공개했다. 전문을 보면 삼성 측 위원을 제외한 위원 2명은 모두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특히 기업 총수와 경영권 승계 관련 감시 능력을 미흡하다고 봤다.

경제지·보수지 보도는 보고서 내용과 달랐다. “강일원 ‘삼성 준법감시위 지속성 긍정적’”(매일경제), “‘삼성 준법감시위, 지속가능성 긍정적’… 이재용, 감형될까”(파이낸셜뉴스), “재판부가 지정한 강일원 ‘지속가능성 긍정적’”(문화일보), “삼성 준법감시위, ‘구조 진일보-지속가능성’ 등에서 긍정 평가”(전자신문) 등이다.

▲12월17일자 한국경제 15면. 한국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12월17일자 한국경제 15면. 한국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보고서 공개 2일 전인 12월16일엔 뉴시스 등 30여개 매체가 유사한 보도를 쏟아냈다. 전문심리위원이 정한 18개 세부 평가 기준 중 강 전 재판관이 “10개에 긍정, 2개에 중립, 6개 부정 평가를 냈다”며 “긍정 평가가 부정의 2배였다”는 보도다. 강 변호사가 위원회 활동에 ‘합격점’을 줬다거나 삼성 그룹이 준법경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기사는 당시 삼성전자 홍보팀이 산업부 기자들에게 배포한 3800여자 분량 참고자료와 내용이 같았다.

⑥ “국가 경제 중추, 기회 달라” 탄원 보도

지난 15일경부터 ‘탄원서 보도’가 쏟아졌다. 재계 관계자들이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위해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다는 기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5일 박용만 회장이 서울고법에 탄원서를 냈다고 밝히면서 관련 보도가 집중됐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도 지난 13일 법원에 유사한 탄원서를 냈다. ‘이 부회장이 한국 경제 중추 역할을 한다’며 집행유예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지난 15일부터 집중 보도된 이 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 관련 기사 목록 일부.
▲지난 15일부터 집중 보도된 이 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 관련 기사 목록 일부.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은 지난해 9월 한겨레 칼럼에서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 미전실이 합병을 주도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확정한 것은 철저히 뒷전이다. (분식회계 사건) 압수수색에서 혐의를 뒷받침하는 다량의 내부자료가 쏟아졌다”며 “그런데도 ‘이재용 (불법승계) 리스크’가 본질인 삼성 위기를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호도한다. 언론이라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곽 논설위원은 사안 본질을 “지난 20년간 (검찰, 법원이)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를 눈감아 주고, 봐주기로 일관한 한국사회의 ‘업보’”라 밝히며 “이 부회장이 실형을 산다고 해서 삼성이나 한국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설령 그런 위험이 있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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