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자사 직업병과 지역 공해 실태를 고발한 포항MBC 다큐멘터리 ‘그 쇳물을 쓰지 마라’를 취재 보도한 포항MBC 기자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포항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한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라며 “강력 공동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지난달 31일 ‘포항MBC 장성훈 기자가 확인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단정적으로 보도해 포스코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제기했다. 

포스코는 소장을 통해 “장 기자는 이 사건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해 포스코가 운영하는 포항제철소 공정과 근로자, 주민의 피해 간 연관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음에도 포스코 회사에 소속됐던 직원 또는 인근 주민 진술에만 의존해 포항제철소 공정으로 인해 근로자와 주민에게 피해를 입힌 것처럼 단정적으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또 “장 기자는 특집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제작해 2020년 12월10일경 포항MBC가 이를 방영하도록 했고 2020년 12월21일경 MBC가 이를 방영하도록 했다”고 했다.

▲포항MBC 다큐멘터리 ‘그 쇳물을 쓰지 마라’
▲포항MBC 다큐멘터리 ‘그 쇳물을 쓰지 마라’

앞서 ‘그 쇳물 쓰지 마라’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30~40년간 다니다가 최근 퇴직한 뒤 각각 폐암과 백혈병, 루게릭병, 악성 중피종에 걸린 노동자 4명과 다른 사망자 유족의 산업 재해 사례를 전했다. 또 포항제철소 인근 주민의 암 발병 빈도수를 직접 조사하고 발병자나 사망자 유족을 인터뷰했다. 

다큐는 롤숍, 코크스, 스테인레스 등 사망·발병 노동자들이 일한 공정을 소개하며 전문가 인터뷰와 미국 EPA·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발표, 국제 연구논문을 종합해 해당 공정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과 질환의 연관성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들 공정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과 발병의 연관성, 포스코의 정보 은폐 문제를 지적했다.

다큐 보도 앞뒤로 포스코 포항과 광양제철소 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잇달아 산재로 숨지면서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지역공해 문제에 비판 목소리가 커진 터다. 

포스코는 소장에서 다큐 속 16가지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압연유나 연마유의 산업안전보건법상 물질안전보건자료 기재를 보더라도 발암물질이 함유되지 않았다”거나 “코크스 공정에서 배출되는 물질은 작업환경 측정상 노출 기준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관리된다”는 등 내용이다.

포항MBC 측은 포스코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밝히는 한편 포스코의 제소가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라고 비판했다. 포스코 측이 앞서 포항MBC 취재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다가 보도가 나간 뒤 기자 개인을 상대로 정정이나 반론이 아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점에서다.

▲포항MBC 다큐멘터리 ‘그 쇳물을 쓰지 마라’ 캡쳐.
▲포항MBC 다큐멘터리 ‘그 쇳물을 쓰지 마라’ 캡쳐.

장성훈 기자는 “다큐는 작업장의 환경에 있던 이들이 암이나 루게릭병 등 중대한 질환에 걸린 사실과 작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문가 주장을 담았다. 포스코 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전문가와 논문을 통해 충분히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 기자는 “수많은 노동자와 주민 건강 피해에 관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포스코에 설명할 기회를 여러 차례, 여러 경로로 제공했음에도 포스코 측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구체적 근거는 밝히지 않은 채 형식적 답변에 그쳤다”고 했다.

김형일 포항MBC 보도제작국장은 통화에서 “보도 앞뒤로도 반박하지 않다가 언론중재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기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태로 보인다”며 “언론에 대한 대기업 횡포이자 탄압이라고 보고 회사 차원에서 공식 법적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항 지역 노동시민사회 단체 15곳이 구성한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 박충일 집행위원장은 “포스코가 노동자 직업병과 지역 공해 문제에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할 시점에 실태를 감추려 언론인 개인에게 손배를 청구한 것은 프레임 전환 시도이자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고 밝혔다. 연대회의와 전국금속노조 측은 “포스코 고소에 공동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앞서 지난 5월엔 광양제철소가 위치한 광양만권 철 농도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다고 발표한 광양만녹색연합 활동가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해,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기업의 보복행위”라고 규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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