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20여 년 넘게 기자로 살았던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이 고려대에서 ‘저널리즘의 새로운 과거와 오래된 미래, 복제 보도와 원천 보도’란 제목의 박사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국내 언론의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 ‘복제 보도’와 ‘원천 보도’ 개념을 제시하며 “복제 보도에 기울어진 관행이 기자 전문직주의를 침식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원천성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보도 관행의 혁신이 필요하며, 상당한 자원 투입이 필요한 원천 보도의 생산을 돕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복제 보도가 만연한 디지털 환경에서 원천성이 저널리즘의 기본적 원칙으로서 새롭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십여 언론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속보 경쟁에 돌입하고, 사실관계를 직접 취재하지 않은 채 다른 언론의 기사를 출처 표기 없이 베껴 쓰며, 반론 청취는 생략하거나 소략하고, 대동소이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도하면서, 최소한의 취재원만 인용해 짧은 기사로 물량 공세에 집중”하는 게 저자가 목격한 한국 언론의 모습이다. 그 중심에 복제 보도가 있다. △다른 언론 기사를 베끼는 ‘베껴 쓰기’ △보도자료를 발췌해 옮기는 ‘옮겨 쓰기’ △기자회견이나 소셜미디어 글을 발췌하는 ‘받아쓰기’가 복제 보도의 주요 유형이다. 

복제 보도는 ‘뉴스 동질화’의 시작과 끝이다. 뉴스 가치 판단을 보증받으려는 기자들의 심리적 요인으로 비슷한 뉴스 아이템을 비슷한 방식으로 보도하는 ‘뉴스 표준화’에서 기사품질이 하락한 것이 뉴스 동질화로, 뉴스 표준화가 주류 언론을 따라가는 관행에 주목해 위계적 관념을 내포했다면 뉴스 동질화는 언론 간 위계 구분 없이 ‘모든 언론에 대한 모든 언론의 흉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디지털 플랫폼에 구조적으로 포획된 가운데 가치 있는 정보를 공동체에 제공하는 기자들의 능력과 권위는 파괴되었고, 이제 기자는 “누구나 만드는 뉴스를 그저 전업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기자들의 모습.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기자들의 모습.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논문에 따르면 디지털 환경에서 기자들은 뉴스 생산자가 아닌 정보 처리자가 된다. 낮은 비용으로 뉴스를 생산하려는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한 복제 보도는 디지털 환경에서 단 하나의 마감 잣대, ‘바로 지금’이라는 마감 압박에 따라 기사를 실시간으로 생산한다. 여기서 한국 언론의 구조적 특수성은 ‘포털’이다. 포털은 뉴스를 재배열하며 의제를 전파하며, 포털에 노출되지 않으면 기사를 전달 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포털이 성장하며 가십성 기사가 증가했고, 어뷰징(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일부만 바꿔 같은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행위)이 확산했다. 

논문은 구체적으로 취재 보도 관련 행위와 인식 측정을 위해 디지털기자 5명, 일반기자 5명, 탐사기자 5명이 각자 이틀 동안 기록한 30일 분량 다이어리 텍스트와 총 30여 시간의 인터뷰 녹취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디지털 기자 일과에서 두드러진 행동은 포털의 기사 랭킹 및 이슈를 살펴보는 ‘탐지행위’였다. 포털 편집은 뉴스 판단의 준거였으며, 이들은 네이트 판 등 인터넷 커뮤니티와 페이스북·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해외 황색지(더 선, 데일리 미러 등)를 하루에 몇 차례씩 순회하며 뉴스거리를 찾았다.  

한 언론사 디지털부서 기자들은 유명인사 30여 명의 소셜미디어 체크리스트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의 SNS를 “한 시간에 한 번씩 체크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언론사의 디지털부는 인턴기자들은 보통 짧은 기사를 하루 10건씩 쓰며, 받아쓰기 대상은 주로 유명인의 SNS 글이고, 베껴 쓰기 대상은 연합뉴스 등 통신사 기사다. 연예 정보를 포함한 가십까지 보도하는 ‘마구 쓰기’ 관행도 발견됐다. 이 과정에서 데스크의 역할은 기사의 제목을 선정적·자극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일반 기자들은 출입처를 중심으로 아침 보고를 올리고, 타사 보도를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하며 원천 보도와 복제 보도의 중첩 지역에 존재하는데 원천 보도 시도는 간헐적이고 예외적이다. 대부분은 복제 보도 중심으로, 이들은 하루 평균 10~30건의 보도자료와 기자회견 등을 검토해 선택적으로 기사화한다. 디지털 순회도 이뤄진다. 서로 신뢰하는 기자들끼리는 ‘꾸미’라는 메신저 방을 만들어 각종 자료를 공유하는 관행도 발견됐다. ‘정보 탐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일반 기자는 여러 언론이 주목하는 이슈는 집중적으로 기사를 쓰지만, 그렇지 않은 의제는 보도 대상에서 제외한다.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저자는 “한국 언론의 복제 보도 관행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사’, ‘어느 언론이건 다 쓰는 기사’,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기사’, ‘짧고 파편적이며 조각난 기사’ 등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복제 보도의 대안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원천 보도’다. 원천 보도는 ‘오직 기자들만 행할 수 있는 것의 핵심’으로, 원천 보도는 정부기관 같은 중간 매개나 보도자료 같은 여과 없이 정보의 출처를 기자가 직접 목격, 직접 관찰하며 직접 인터뷰 등을 통해 발굴하고 검증해 보도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심층 인터뷰에서 복제 보도 관행은 ‘회사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소모적인 업무’로, 원천 보도 관행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지만 주변에서 외면당하는 업무’로 인식했다. 복제 보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인 반면 원천 보도는 ‘남들이 몰라주는 일’로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논문은 “자신이 속한 언론의 기업적 미래를 걱정하는 샐러리맨의 정체성과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의 고유성을 앞세우는 전문직의 정체성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복제 보도 관행을 규범적으로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기자는 없었다. 다만 포털이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필요악의 차원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논문은 이 같은 뉴스 전략이 “언론 스스로의 직업적·산업적·사회적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우려하며 “뉴스 소비자가 접하는 한국 언론은 복제 공장의 형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직접 발굴한 정보가 없고, 검증하지 않은 공개 정보만 보도하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은 의견이나 관점을 강화하는 것인데, 정파적 프레임으로 충성 독자를 모을 수 있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유튜버 등 전통 언론 외곽의 다양한 주체들이 더 논쟁적이고 날카로운 의견과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며 “디지털 환경 속 담론 공중의 관점에서 기자의 의견과 관점은 특별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기자는 원천성의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론은, ‘오래된 미래’다. 저자는 “모든 좋은 기사는 반드시 직접 취재에서 출발한다. 직접 취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발굴과 그 사실의 검증을 뉴스룸 외부에 맡긴다는 것이고, 이는 홍보와 선전을 대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원천성은 탐사보도 등 예외적이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모든 보도 과정에 적용해야 할 일반 원칙에 해당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원천성의 원칙이 기자 전문직주의의 핵심 내용이 될 수 있으며 기자의 직업적 이익을 지키는 전략”이라고도 강조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출입처 중심으로 편제한 한국적 뉴스룸 체계를 하루빨리 변모시킬 책임이 뉴스룸 간부들에게 있다”며 “간부들이 현장 기자들을 출입처로부터 놓아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탐사부서가 아닌) 일반 부서에서도 기획취재 또는 자유 취재 기자들을 배치한다면 원천 보도를 시도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 했다. 학계는 “포털이 복제 보도 및 원천 보도 생산과 유통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계에는 “포털 외곽에서 원천 정보가 풍부한 기사를 따로 모아 제공하는 ‘좋은 기사의 포털’”을 제안했다. 이를 위한 공적 후원은 뉴스 유통구조를 지배해온 포털과 소셜미디어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거나, 언론 관련 재단이 공동 기금을 마련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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