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1인당 재산은 28억원이다. 그런데 19대 국회의원 1인당 재산은 무려 96억원이었다. 여기서 결론은 “21대 국회의원은 검소(?)해졌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정답은 “정몽준 의원이 21대에는 입성하지 않았다”이다. 정몽준 의원 재산은 약 2조원이다. 2조원을 300명으로 나누면 67억원이다. 정몽준 의원 한 명이 평균 재산 67억원을 올려놨기 때문에 의원 1인당 재산 96억원이라는 숫자엔 별 정보적 가치가 없다. 1인당 숫자를 산출하는 데 주의해야 할 이유다.

재정 관련 숫자가 나오면 많은 언론은 1인당 숫자를 산출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 숫자 자체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올해 국세가 283조원, 국가채무가 956조원이다. 수백조원 숫자를 별 설명 없이 제시하면 독자들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단위가 수백조원이 되다보면 숫자에 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국세 300조원이 적은 건지, 200조원이 많은 건지 일반 독자는 감을 잡기 어렵다. 이때 빠지기 쉬운 유혹은 그냥 1인당으로 산출해 보는 것이다. 수백조원의 큰 숫자도 5000만명 인구로 나눠 보면 우리가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숫자로 바꿀 수 있다.

▲ 2020년 1인당 세부담액이 750만원이라는 기사 제목
▲ 2020년 1인당 세부담액이 750만원이라는 기사 제목

매년 세입 예산을 발표할 때마다 나오는 기사가 있다. 1인당 세부담이 수백만원이라는 기사다. 어떤 기사는 1인당 세부담액을 “국민 한 사람당 짊어지는 세금 부담”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팩트가 아니다. 우리나라 세수는 우리나라 국민만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서 세금을 내기도 하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내기도 한다. 특히, 법인이 내는 법인세도 53조원이 넘는다. 분자는 외국인+법인인데 분모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자연인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특히 ‘정몽준 재산의 오류’도 발생한다. 어차피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약 40%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종합소득세 상위 1%가 전체 종합소득세액의 50%를 넘게 낸다. 이런 상황에서 1인당 세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1인당 채무라는 개념은 더 기묘하다. 기사를 보면 국가채무 728조원을 국민 수로 나눠 1인당 채무액을 산정한 것 같다. 그런데 국가가 채무자라면 채권자는 누굴까? 국채를 구매한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채 채권자의 85%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채권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수로 채무액을 나누는 것이 도대체 무슨의미일까?

이전 미디어오늘 기사를 재인용 하자면 “마치 내가 와이프에게 돈 100만원을 빌렸는데, 우리 가족 1인당 채무가 50만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만큼 이상한 표현이다. 나는 비록 100만원의 채무는 있으나 우리 가족 재정은 건전하다. 특히, 우리 와이프의 채권 추심 능력은 탁월하니 돈을 떼일 염려도 없다.”

[관련기사 : 사상 첫 2020년? 기사 속 비유의 거짓말]

▲ 조선일보 5일자 기사. 아기 1명당 1억6000만원을 쏟아부었다는 내용.
▲ 조선일보 5일자 기사. 아기 1명당 1억6000만원을 쏟아부었다는 내용.

오늘 특히 말하고 싶은 기사는 “아기 1명당 1억6000만원 쏟아부었”다는 저출산 예산 관련 기사다. “지난해 저출산 대책으로 45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 이를 작년 출생아 수(28만명)로 나눠보면 신생아 한 명당 1억6000만원 예산이 들어간 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는 저출산 예산을 오해한 결과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집계한 45조원의 저출산 예산은 저출산을 막고자 추가로 쏟아부은 예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중복 집계한 예산이다. 저출산만을 위해 지출하는 ‘저출산대응 및 인구정책지원’ 프로그램에 속한 사업의 합계는 20년 2.4조원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아동수당이 2.3조원, 모자보건사업이 330억원이다.
 
즉, 저출산 관련 예산 45조원 중 이 2.4조원만 저출산을 위해 존재하는 예산이다. 나머지 40조원이 넘는 저출산 관련 예산은 다른 별도의 목적(프로그램)에 따라 지출하는 예산을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중복 집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학대예방 사업은 ‘아동보호 및 복지강화’ 프로그램에 속한 사업이다. 이런 사업들도 저출산고령화위원회에서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중복 포함해서 45조원까지 불어났다. 아동학대예방 사업이 직접적으로 출산률을 높이지 않는다고 관련 예산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왜 이런 간접 예산을 저출산 관련 예산에 중복집계해 놓았을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예산 액수 뻥튀기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는 여성인권, 아동인권 등 사회 인식의 근본적 변화 없이 해결할 수 없다. 이에 위원회가 간접적 예산 사업도 총괄적으로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1인당 1억6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타 언론 보도를 따라 쓰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일은 아니다.

▲ 매경이코노미 11일자 기사. 앞서 5일자 조선일보 '신생아 한명당 1억6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잘못된 보도를 인용했다.
▲ 매경이코노미 11일자 기사. 앞서 5일자 조선일보 '신생아 한명당 1억6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잘못된 보도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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