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적폐에 대한 대청소에는 언론에 대한 요구도 담겨 있다.” “국회에 시민사회까지 참여하는 사회개혁 대기구를 구성해 언론에 대한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 공영방송이 본분을 다 하도록 하는 제도적인 입법을 하자고 제안해뒀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적장치를 확실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6년 12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권주자이던 시절 이용마 MBC 해직기자 병문안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발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다짐’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약에 대거 반영됐다. 하지만 2021년, 거대 여당과 함께 집권 4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의 언론·표현의 자유 공약 이행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16년 12월16일 이용마 MBC 해직기자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남양주 인근 요양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 2016년 12월16일 이용마 MBC 해직기자와 당시 대선 주자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남양주 인근 요양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미디어오늘이 문재인 정부의 언론·표현의 자유 공약 이행 현황을 분석한 결과 19개 공약 가운데 완벽하게 이행한 공약은 없었다. 6개 공약을 일부 이행하거나 내용을 일부 변경해 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13개 공약에선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았고, 이 가운데 3개 공약은 전혀 추진되지 않거나 백지화됐다. 이번 집계는 ‘문재인미터’의 지난해 판정(언론개혁시민연대 작성)을 참고했다. 공약 유형은 대선 공약집을 토대로 매체별로 재분류했다.

일부 이행하거나 변경(축소)해 이행한 공약은 ‘방송 공공성’(2건)과 ‘시민 참여/미디어 교육’(4건) 부문에서 나왔다. ‘방송 공공성’ 공약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서 탄압받은 언론인 명예회복 및 진상규명 추진’의 경우 일정 부분 달성됐다. 문재인 정부가 사장을 임명한 공영방송 체제에서 언론인 복직이 이뤄졌고 KBS, MBC, YTN 등은 진상조사 기구도 운영했다. 다만,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 청문회를 여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 한계다.

▲ 문재인미터 자료(언론개혁시민연대 작성) 참고. 공약 분류는 분야별로 재구성. 디자인=안혜나 기자
▲ 문재인미터 자료(언론개혁시민연대 작성) 참고. 공약 분류는 분야별로 재구성. 디자인=안혜나 기자

‘종편과 지상파 동일규제’ 공약도 일부 이행됐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는 종편을 유료방송에 의무적으로 내보내는 의무송출 특혜를 폐지했고,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도 지상파와 동일한 징수 기준을 적용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등 방송 광고 비대칭 규제는 해소하지 못했는데 이들 정책은 미디어산업 전반의 논의와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방송 광고시장 합리화를 통한 미디어 공공성 확보의 경우 방통위가 협찬 고지 강화를 골자로 한 재허가 재승인 조건을 부여해 시행 중인 점,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한 점, 관련 자문 기구 논의가 이뤄진 점 등을 반영해 ‘추진’으로 분류했다.

‘미디어 교육’ 부문 공약은 상대적으로 추진 비중이 높았다. 교육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신규 미디어센터를 설립했거나 설립 추진 중이고 시청자미디어재단도 센터를 추가 설립했다. 2020년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한 점도 성과다.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포용, 허위정보 대책, 코로나19 비대면 교육 대응 차원에서 관심을 가진 결과다.

▲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안. 미디어 교육의 방향성과 적극성을 두고 이견이 있지만, 범정부 정책을 마련하고 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다른 공약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경우다.
▲ 디지털 미디어 소통역량 강화 종합계획안. 미디어 교육의 방향성과 적극성을 두고 이견이 있지만, 범정부 정책을 마련하고 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다른 공약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경우다.

‘시민 참여’ 부문도 일부 성과가 있다. 추가 사업자 선정 등은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방통위가 2020년 ‘공동체라디오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사업’을 마련해 지원예산 2억원을 편성하고, 공동체라디오방송의 출력을 증강했다. 문재인 정부는 시청자권익보호 전담 기구 설립을 약속했지만 2020년 별도 기구 설립이 아닌 시청자미디어재단 내의 한 파트로 관련 업무를 다루며 변경(축소) 이행했다.

당초 공약과 달리 소극적으로 추진하거나 전혀 이행하지 않은 과제는 절반에 가까운 9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라인 공간의 표현의 자유’ 공약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방통위 업무과제를 통해 관련 논의가 일부 이뤄졌으나 ‘가짜뉴스’ ‘드루킹’ 논란이 불거지면서 규제로 축이 옮겨졌다. 특히 당사자의 요청만 있으면 사실인 게시글도 차단하는 ‘임시조치’ 제도의 경우 ‘이의제기권 신설’ 등 개선 논의가 실종됐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2015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에 합의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이를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임시조치 제도 역시 방통위가 개정안을 추진하다가 2020년 업무계획에서는 아예 삭제했다. (여당은) 가짜뉴스 규제 강화론으로 흐르면서 규제 대상 정보를 확대하거나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을 마구잡이로 발의하는 등 공약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 시장의 불공정 거래 개선’ 공약도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점 갑질’ 대응 차원에서 조사에 나섰으나 소극적인 조사에 그쳤고 정부 차원의 대책은 등장하지 않았다.

‘방송 공공성’ 및 ‘지역방송’ 등 방송 부문 공약은 ‘소극 추진’이 많았는데 방통위 차원에서 관련 업무를 진행했으나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강조했던 언론개혁 공약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보도제작 편성의 자율성 확보 과제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만 해도 당론으로 추진했다. 사장 선임의 경우 당초 이사 3분의 2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특별다수제를 제시했으나 집권 후에는 시민 참여 등을 반영한 제3의 방식을 제안했다. 방통위는 ‘중립지대 이사’를 골자로 하는 안을 제출했으나 여야 정쟁 속에 20대 국회에서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거대 범여권이 구성된 21대 국회에서는 오히려 당 차원의 논의가 사라진 모양새다.

▲ 2016년 12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3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논의를 촉구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2016년 12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3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논의를 촉구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2017년 3월2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농성을 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7년 3월2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농성을 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또한 방통위는 보도제작 편성 자율성 확보, 지역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재허가 조건을 대거 부여했지만 국회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소극 추진’에 그쳤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경우 방통위가 의결했으나 이례적으로 1년 넘도록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있다. 

‘지역방송 예산 현실화’ 공약은 방통위와 국회가 노력했지만 기재부가 저지해 이행되지 않은 경우다. 2021년 기준 37개 지역방송에 투입되는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예산은 40억3000만원으로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방통위 지역미디어정책과 관계자는 “105억원의 예산안을 올렸지만 기획재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예산 확보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수신료 인상, 중간광고 도입 등 정책은 방통위가 나름대로 추진했지만 정부나 여당이 방치하거나 외면하고, 때로는 저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미디어산업 성장 정책의 경우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추진했다기보다는 이 정부가 아니었어도 진흥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았던 사안이다. 정부 차원에서 언론 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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