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한 스푼] 독자는 내가 쓴 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저널리즘 한 스푼] 독자는 내가 쓴 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독자는 누구인가. 구독경제가 일상이 된 시대, 독자 우선 전략을 고민하는 언론엔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답하긴 쉽진 않다.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가 이뤄지면서 독자는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가 돼버렸다. 구독료를 내고 집으로 오는 종이신문에 줄을 그으며 기사를 읽던 독자는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모니터 뒤에서 포털이 뽑아준 기사와 맞닥뜨리는 익명의 누군가가 존재할 뿐이다.

다만 독자 성향에 대한 징후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파적 독자’가 그 징후 중 하나다. 흔히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 원인을 독자의 정파성에서 찾는데, 2020년 시사IN 신뢰도 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조선일보는 가장 신뢰하는 신문 매체였지만, 동시에 가장 불신하는 언론 매체이기도 했다. 내 편을 드는 언론엔 무한한 신뢰를, 남 편드는 언론엔 무한한 불신을 보내는 독자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이를 ‘나의 참언론은 너의 기레기’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그래서 언론이 선택한 전략이 ‘상업적 정파성’이다. 정파적인 기사와 메시지는 최소한 한쪽 편에서는 팔린다. 가장 쉽고도 명확한 독자 유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찜찜함은 남는다. 한국 언론의 독자는 정파적이기만 한 걸까? 언론이 정파성에 골몰해 갈등을 부추겨도 괜찮은 걸까?

“독자라고 하면, 정확히 얼굴을 모르는 까만 얼굴에 나쁜 말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듣똑라’를 제작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2020년 10월25일 열렸던 신문과방송 토크쇼에서 이지상 중앙일보 기자가 한 말이다. 그가 만들고 있는 시사콘텐츠 듣똑라(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 독자는 명확하다. 듣똑라 타이틀이 ‘밀레니얼의 시사친구’다. 2030세대인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똑똑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듣는다. 이 기자가 몸담은 언론사는 대표적인 보수지이지만 결이 다른 정보를 제공하니 정파적 독자가 아닌 또 다른 독자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까만 얼굴에 나쁜 말을 쓰고 있는 사람’이 ‘똑똑해지고 싶은 밀레니얼 세대’로 명확해지는 이 지점. ‘독자의 재발견’이다. 독자는 언론이 찾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오기도 한다.

▲ 신문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신문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이쯤 되면 선후 관계를 의심해볼 만하다. 독자의 정파성이 최근 크게 대두되기 이전부터 한국 언론은 정파적이었다. 이미 2000년대 초 정파성을 한국 언론의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한 연구가 수두룩하다. 다수 언론이 정파적 정보를 제공하니 정파적인 독자만 남을 수밖에 없다. 분명 다양한 층위의 독자가 있을 터인데, 그들이 찾아갈 만한 정보가 없는 언론 환경이었다. 독자를 궁금해하지 않고 정파색 짙은 기사만 관행적으로 쏟아낸 언론의 게으름이 정파적 독자를 낳았다. 낮은 언론 신뢰의 원인을 독자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심층적 고품질 기사를 찾는 독자를 만나고 싶은가? 그럼 그런 보도를 하면 된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독자를 만나고 싶은가? 그럼 논리적으로 타당한, 합리적인 기사를 제공하면 된다. 독자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든 찾아오게 돼 있다. 물론 ‘나는 정파적이지 않은 기사를 제공하는데 내 기사엔 정치 얘기하며 욕설을 퍼붓는 독자 밖에 없다’고 말하는 언론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럼 분명 동료가 정파적 기사를 쓰고 있거나 소속 매체가 정파적일 것이다. 이 경우엔 듣똑라처럼 매체와 구별되는 브랜딩 아래 기사를 쓰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요는, 독자가 찾아올 수 있도록 언론이 다양한 층위의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독자는 누구인가. 내 기사를 읽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내가 어떤 기사를 쓰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독자는 내가 쓴 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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