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지상파 방송 광고 결합판매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2020년 세밑, 방송업계가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지난 40년간 이어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이하 코바코) 중심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 체제의 끝을 알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방송계는 2011년 소위 ‘미디어렙 파동’ 이후 10년 만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지 않은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1980년 전두환정권은 언론 통폐합 이후 코바코에 지상파 광고 판매대행 독점권을 줬다. 이후 코바코 독점을 두고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2008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11년 민영미디어렙이 출범했다. 결합판매는 KBS MBC SBS 독과점에서 방송의 지역성·다양성 구현을 위해 지역·중소·종교방송사 등의 광고를 지상파3사가 결합해 판매하는 제도, ‘교차 보조 시스템’으로 불린다. 현재 KBS와 MBC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코바코는 지역MBC·EBS·종교방송 광고를, SBS 미디어렙은 OBS를 비롯한 9개 민영방송 광고를 함께 팔고 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길어지고 있다. 그만큼 깊게 들여다보고 고심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며 “(헌법소원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으면 빨리 결정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조기열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11월 작성한 ‘2021년도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세입세출예산안 및 방송통신발전기금 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는 ‘결합판매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요하게 담으며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른 폐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의 모습.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의 모습. ⓒ헌법재판소

해당 보고서는 결합판매를 두고 “과거 지상파 독점 구조 및 방송광고 시장의 급격한 성장 환경에서 마련된 것인데, 최근 CJ ENM 등 우수한 콘텐츠로 경쟁력을 갖춘 PP의 부상, 방송광고 시장의 전반적 침체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결합판매는 종합편성채널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유료방송사업자(SO)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차별적 규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늘어나는 지상파 적자 규모를 언급하며 “결합판매는 일종의 끼워팔기로 광고주가 의도하지 않은 비용 할증을 야기해 방송광고 기피를 유발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결합판매가 지상파와 광고주 양쪽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한국광고총연합회는 지난 2월 결합판매제도 해소를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보고서는 “안정적 재원의 제도적 보장은 지역·중소지상파가 스스로 광고매출을 통한 수익 증대 유인을 없애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헌재 결정 이후) 결합판매를 통한 재정지원이 없다면 정부가 방송통신발전기금과 같은 공적 재원을 통한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중소방송사 광고 집행에 세재 혜택 등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으며 “헌법재판소가 결합판매 위헌 요소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지상파의 재무구조를 고려하면 결합판매제도는 그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국회와 정부가 사전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상파3사.
▲지상파3사.

보고서는 또한 “현행법은 종편에 1사1렙 체제를 허용하는 반면, 지상파의 경우 공영미디어렙(코바코)이 KBS와 MBC라는 복수의 키스테이션을 두고 있다는 점, 종편 미디어렙은 결합판매제도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점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종편 광고영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이면 출범 10년을 맞는 종편도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중소방송 또는 공익방송을 신규진입시켜 TV조선이 ‘미스트롯2’ 광고를 판매할 경우 이들 광고를 결합 판매하게 할 수 있어서다. 물론 결합판매가 ‘합헌’일 경우 가능한 이야기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현 결합판매가 합리적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방안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합판매제도 취지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고 있다. 제도개선반을 구성해 전체적인 틀을 살펴보며 미디어렙·코바코·중소방송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 전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결합판매를 둘러싼 각종 방송정책 논의를 촉발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사 간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예 미디어렙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해외 선진국 지상파는 한국처럼 미디어렙을 통한 광고 의무 위탁 규정이 없다. 대부분 직접 광고영업을 허용하되 사후규제로 대응한다. 미디어렙법에 따르면 광고-편성 연계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을 때 최대 행정처분은 과징금 5억이다. 

앞서 MBN미디어렙은 협찬 프로그램을 MBN에 방영시키기 위해 이미 확정된 편성의 변경을 요구했다 적발돼 미디어렙법 위반으로 2015년 과징금 2억4000만 원 행정처분을 받았다. 애초 ‘미디어렙’ 취지가 무색해진 사례로, 차라리 직접 광고영업을 허용하되 방송법에 규정을 신설해 광고-편성 연계가 적발되면 광고 영업 정지 등 중징계가 가능하도록 조항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코바코는 광고 대행이 아닌 ‘광고 진흥’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코바코는 방송 광고 뿐 아니라 인터넷·모바일 등 디지털 광고도 대행할 수 있는 크로스미디어렙 도입과 정부 광고 대행과 같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수신료 인상 국면도 코바코의 미래를 좌우할 변수다. 만약 KBS가 2TV 광고를 없애며 수신료 인상에 나서면 코바코는 사실상 MBC 광고 판매만 전담하게 된다. 앞서 KBS는 1994년 수신료가 전기세에 통합 징수되며 수입이 늘었지만, 대신 1TV 광고를 포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참여한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는 지난 9월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화를 위한 미디어정책보고서’에서 “공·민영 미디어렙, 광고주, 공영방송 KBS와 MBC, SBS, 지역방송, 중소지상파방송, 공공채널(방송), 종교방송 등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다”며 “전체 방송광고 시장의 활성화, 지역방송사 및 중소방송사의 경쟁력 강화, 방송의 공공성, 다양성, 지역성 구현 등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와 다원적 미디어 시스템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결합판매제도 개선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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