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우리는 ‘손석희’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몇몇 사람들은 손석희가 ‘뉴스룸’을 떠난 뒤 볼만한 뉴스가 없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그의 부재는 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극한대립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손석희라면 어떻게 보도했을까’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뉴스 스테이션’에 없다. 시청자 중 몇은 MBC로, 몇은 유튜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몇몇은 JTBC에 남았다.  

2000년 MBC ‘시선집중’을 시작으로 MBC ‘100분 토론’, 이후 JTBC ‘뉴스룸’까지 언론인 손석희는 항상 시청자 곁에 있었다. 하지만 올해 1월 2일 신년토론을 끝으로 ‘뉴스 스테이션’을 떠났다. “… 매일 나오던 사람이 갑자기 안 나오니 적응이 안 되실 수도 있겠으나 앞선 사람은 뒷선 사람에게 길을 터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봅니다. 어찌 보면 너무 오랫동안 길을 안 비켜선 것인지도 모르지요.” (손석희가 자신의 팬클럽카페에 올린 글) 

손석희 없는 JTBC는 마치 ‘연합뉴스’ 같았다. 필요한 보도는 하지만, 특별히 문제 될 보도도 없지만, 관점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안전한 뉴스, 그런 느낌이었다. 지난 5월 권석천 논설위원을 JTBC 보도총괄로 선택한 것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당시 JTBC는 방송사 가운데 최초로 자사 보도 방향을 ‘합리적 진보’로 명시했다. JTBC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시청률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의 신뢰도 1위로 시민들의 성원과 격려 속에 이 시대 저널리즘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던 우리가 이대로 힘없이 물러설 순 없다”며 보도국 구성원을 향해 “손석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JTBC는 지난 5월6일 ‘뉴스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을 여섯 꼭지 연속으로 블록 편성하며 “법원의 권고에서 출발한 오늘 사과는 결국 등 떠밀려 이뤄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 ⓒJTBC
▲손석희 JTBC 대표이사. ⓒJTBC

권석천 총괄은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하는 방식을 칼로 끊어내는, 과감한 변화가 요구되는 때”라며 ‘한 팀(one team)’을 강조했고,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hand to mouth’ 저널리즘은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에서 건너온 기자들과 수많은 경력 기자, 그리고 공채 기자로 구성된 복잡한 조직 속에서 지금껏 손석희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던 ‘한 팀’을 하나로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추락세는 뚜렷했다. 손석희는 올해 시사저널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6년 연속 1위에 꼽혔지만 2017년 85.2%에서 2020년 52.9%로 하락했다. JTBC는 2017년을 기점으로 시청률·신뢰도·영향력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고, 올해 하락세는 더 가팔랐다. 같은 기간 MBC와 TV조선의 각종 지표는 상승했고, 어느 순간 JTBC는 더 내려갈 곳도 없었다. 

손석희는 지난 8월 사내에 뉴스혁신 TF를 구성했다. 8월 말 손석희는 사내메일을 통해 “합리적 진보라 함은 누차 얘기하지만,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보도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상위개념이며, 정파적 집단은 그 하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비판적인 ‘손석희 저널리즘’의 핵심 지향점이다. 

12월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슈체커(코멘테이터)다. 이슈체커 도입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원 팀’이다. 코멘테이터는 자신의 입장만 밝힐 수 없다.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코멘테이터의 워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조직을 한 덩어리로 묶어내는 전략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어떤 의제에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논쟁하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나아가 빠르게 이슈를 선점할 수도 있다. 

▲JTBC '뉴스룸' 진행자인 서복현 기자와 안나경 아나운서. ⓒJTBC
▲JTBC '뉴스룸' 진행자인 서복현 기자와 안나경 아나운서. ⓒJTBC

지난 7일, 개편 첫날 ‘뉴스룸’에 등장한 이슈체커 코멘트다. “검찰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큽니다.…다만 절차를 무시하는 듯한 그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보로 인해서 검찰개혁의 길을 벗어난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윤석열 총장의 거취와 검찰개혁이 동일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분명한 점은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검사들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견제 없이 사용한 것을 그런 관행을 한번 깨보자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섬세하게 접근해야 됩니다. 그리고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난 15일 ‘뉴스룸’은 방배동 모자의 비극을 다루며 그가 사회복지사를 만날 때까지 나흘간의 모습이 담긴 CCTV 기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어머니 죽음을 알리려 했던 그의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외침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는 앵커멘트는 적지 않은 울림을 줬다. JTBC 기자들은 현 정부에 비판적이지만 TV조선·채널A를 볼 수 없는 시청자들, 현 정부를 지지하지만 KBS·MBC는 불편한 시청자들이 JTBC로 돌아올 ‘모멘텀’을 준비하고 있다. 

손석희는 지난 3월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했던 조주빈에게 오랜 기간 살해 협박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리고 법원은 지난 7월 김웅씨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지속적으로 손석희를 공갈·협박한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바람이라도 폈나”는 견인차 기사들의 농담은 김씨에 의해 “젊은 여성과 밀회”로 바뀌었고, 언론은 김씨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받아썼다. 재판부는 “피해자(손석희)에게 측량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수많았던 모욕과 고난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1984년 3월27일자 경향신문 기사 ‘MBC 신인 아나운서 10명 선보여’의 한 대목이다. “남자 아나운서 중 손석희군(28)은 방송이 존재하는 한 방송인으로 남겠다는 열성파로, 타자와 드럼 연주가 특기.” 타자와 드럼연주가 특기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방송이 존재하는 한 방송인으로 남겠다”는 열성은 36년간 이어졌다. 손석희의 사장 집무실에 걸려있는 시계는 10분 빠르게 맞춰져 있다. 오늘도 그의 집무실 시계는 10분 빨리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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