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6개월.

법원이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2년8개월 동안 운영한 손정우에게 선고한 형량이다. 너무 배가 고파 먹을 게 없어 지난 3월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이씨에게 검찰이 구형한 형량이기도 하다.

JTBC는 지난 7월1일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이씨에 대한 보도를 시작했다. 이날 검찰은 이씨에게 절도 전과가 있다며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보면 상습적으로 절도를 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한다.

▲JTBC가 지난 7월1일 보도한 “‘코로나 장발장’ 달걀 18개 훔쳐...18개월 실형 구형”라는 제목의 리포트 화면 갈무리. 지난 7월1일부터 이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JTBC가 지난 7월1일 보도한 “‘코로나 장발장’ 달걀 18개 훔쳐...18개월 실형 구형”라는 제목의 리포트 화면 갈무리. 지난 7월1일부터 이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국민 법 감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 내도 집행유예, 별장 성접대도 무죄라더니 계란 몇 개 훔쳤다고 실형을 때리나.” “흉악범들은 잘만 풀어주면서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1년6개월이냐.” JTBC 보도에 달린 댓글이다.

JTBC는 5000원어치 달걀을 훔쳤는데 징역 18개월이 구형된 이 사건을 지나치지 않았다. 법에 허점은 없는지 정말 에피소드에 불과한 사건인지 봉지욱, 김도훈, 배승주, 고승혁 JTBC 기자들은 이 사건을 지난 6월부터 파헤쳤다. 전국의 사건 사고를 뒤져 대구와 울산의 ‘코로나 장발장’을 찾아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2일 JTBC 보도국 내셔널팀의 봉지욱 기자와 김도훈 기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 단순한 사건 기사였다.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보도하고 있다. 이유는?

“‘이게 정말 기사가 될까?’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누가 봐도 뻔한 좀도둑 이야기였다.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수습기자가 1진 선배에게 보고했다면 꾸중을 들을 만한 작은 사건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이 주제로 몇 차례 회의했다. 일단 이 사건에 대한 제보자가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제보자를 밝힐 수 없지만 내막을 깊숙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건의 표면이 아닌 내면을 봐 달라고 말했다.”

▲지난 7월2일자 JTBC 리포트 화면 갈무리. 이씨가 18개의 구운 달걀을 훔치고 징역 18개월을 받은 이유는 그동안 생계형 절도를 해온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2일자 JTBC 리포트 화면 갈무리. 이씨가 18개의 구운 달걀을 훔치고 징역 18개월을 받은 이유는 그동안 생계형 절도를 해온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사건의 내면이 어땠나?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는데 징역 18개월. 뭔가 이상했다. 이씨는 반복된 절도로 감옥을 집 드나들 듯했던 전과 9범이었다. 총 12년8개월 형을 살았다. 그런데 절도 금액이 너무 작았다. 손수레, 구리전선, 동파이프 등을 훔치고 2년, 3년씩 감옥에 간 거다. 그가 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택배기사, 일용직 건설현장 아르바이트 등을 했지만, 번번이 범죄의 굴레로 빠져들었다. 문제는 특가법이 ‘범죄의 쳇바퀴’였다. ‘특가법이 대체 무엇이길래 빠져나오지 못한 거지’ 의문이 생겼다.”

- 첫 보도에 달린 댓글을 보면 경찰에 이씨를 신고한 고시원 주인이 비판을 받았다. 이후 김도훈 기자가 보도한 ‘취재설명서’를 보니 고시원 주인은 고시원 사람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말다툼해서 신고할 수밖에 없었더라. 댓글들을 일일이 봤나?

“첫 보도 후 포털에 1만여개 댓글이 달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다. 댓글들을 살펴보니 국민 법 감정이 느껴졌다. 사회 기득권층의 ‘유전무죄’와 비교하며 비판했다. 법 앞에 공평하지 못한 현실을 오롯이 상징한 사건이 됐다. 고시원 주인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다. 보도 후 상당히 시달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의심하니 주인도 어쩔 수 없이 신고했다. 고시원 주인이 처벌을 원치 않아도 절도는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라 처벌할 수밖에 없다.”

- 로라 비커 BBC 서울 특파원이 JTBC 보도 링크를 트위터에 공유하며 한국 법원을 비판했다.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에게 이씨의 구형과 같은 1년6개월을 선고해서다. 형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나?

“로라 비커 BBC 기자의 트위터가 화제였다. 지난 7월6일 1년6개월의 형을 살고 나온 손정우에 대해 한국 법원이 미국의 송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라 비커는 한국에서는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이씨와 세계 최대 포르노 사이트 범죄자의 형량이 같다고 비판했다. JTBC 보도 후 별다른 관심 없던 타사들이 로라 비커의 트위터를 받아 적었다. 언론이 이 사건을 관심 가져 좋았지만 조금은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이후 ‘코로나 장발장’ 사건은 수원지방법원 주요 사건 리스트에 올랐다. 재판에 타사 기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JTBC ‘소셜라이브’에서 로라 비커를 초대하려고 했으나 ‘언어’ 장벽 문제 등으로 실현되진 못했다.”

▲로라 비커 BBC 서울 특파원 트위터 화면 갈무리. 로라 비커는 세계 최대의 아동 성 착취물을 운영한 손정우가 1년6개월 형을 살았는데,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코로나 장발장인 이씨가 1년6개월 구형을 받았다는 소식에 한국 법원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
▲로라 비커 BBC 서울 특파원 트위터 화면 갈무리. 로라 비커는 세계 최대의 아동 성 착취물을 운영한 손정우가 1년6개월 형을 살았는데,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코로나 장발장인 이씨가 1년6개월 구형을 받았다는 소식에 한국 법원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

- 이씨의 범행 현장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취재해봤나?

“그가 살았던 수원 고시원과 경찰서, 주민센터 등을 찾아갔다. 고시원 주변을 취재했더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월세 30만원 한 평짜리 고시원 방에 남은 건 양말 세 켤레와 낡고 구멍 난 운동복뿐이었다. 오랜 굶주림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었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형사도 인터뷰에 응했다. 담당 형사는 그를 기억했다. 수사 중 이씨에게 뭘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자 이씨는 선뜻 ‘짬뽕’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말 며칠을 굶었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 이씨 왜 돈이 없었나?

“이씨는 2020년 3월까지 단 세 번만 일용직 일감을 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일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번 돈은 총 36만원. 역병으로 무료 급식소마저 문을 닫자 3월 중순부턴 번번이 굶었다. 검거 당시 그의 전 재산은 330원이었다. 코로나19 상황도 큰 문제지만 그는 교통사고로 보행마저 불편했다. 무보험 차량에 치어 보상금도 못 받고 장애 등급 제도도 몰랐다. 왜소한 체격에 보행 장애까지 있는 그에게 건설현장 청소 일감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스팸 문자까지 날아왔고, 통장을 넘기면 돈을 준다는 이야기에 통장을 넘겨 피싱 조직이 되기도 했다. 범죄의 쳇바퀴는 쉼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 결국 재판부가 지난 7월 예정된 선고 일정을 취소하고 이씨에 대한 형량을 검토했다. 그럼에도 지난 10월 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선고를 미루고 판결 전 이씨에 대한 조사와 양형조사를 직권으로 실시했다. 이씨가 살아온 성장배경, 범행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다시 판단했다. 재판부는 1심 선고에서 ‘조사 결과, 이씨가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온 점이 드러났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극심한 곤궁에 처했던 점도 인정됐다. 그러면서도 판사는 판결에서 현행 특가법상 절도 누범에겐 벌금도 집행유예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판사 재량으로 가장 낮게 줄 수 있는 형량이 징역 1년이었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판사도 어쩔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 대구와 울산에도 ‘코로나19 장발장’이 있었다. 추가 취재한 건가?

“이 사건이 기획 보도가 되려면 상황의 특수성만 있어선 안 된다. 특가법 문제를 지적했는데, 단 하나 사례에 국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국의 사건 사고를 뒤졌다. 대구와 울산에서 또 다른 장발장을 찾았는데 특이한 점이 발견됐다. 대구의 A씨는 생선을, 울산의 B씨는 아이스크림을 훔쳤다. 대구 경찰과 검사는 A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특가법 적용이 검사 재량에 따라 움직이는 문제도 발견됐다. 수원 장발장과 확연히 다른 결말이다. 울산의 B씨 사건은 판사가 직접 나섰다. 판사는 선고를 유예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을 가려달라고 청구했다. 생존형, 생계형 범죄까지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없는 징역형만을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봤다.”

▲지난달 11일과 지난 10월8일 JTBC 보도화면 갈무리. 대구와 울산에도 코로나 장발장이 있었지만, 대구지방검찰청은 A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고, 울산지법은 B씨에 대해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경기도 수원 코로나 장발장과 대비되는 결과다.
▲지난달 11일과 지난 10월8일 JTBC 보도화면 갈무리. 대구와 울산에도 코로나 장발장이 있었지만, 대구지방검찰청은 A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고, 울산지법은 B씨에 대해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경기도 수원 코로나 장발장과 대비되는 결과다.

-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 자신들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지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게 아닌가?

“이번 기획으로 큰 허점이 발견됐다. 40대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취재를 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현재 사회복지망 시스템이 그렇다. 이씨는 돈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해 주거가 불안정했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납부 사실, 전기나 수도 연체 사실도 없었다. 교도소에서도 이런 사회복지 제도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찾아가는 복지’를 하기엔 지자체에 사회복지사 수가 너무 적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연속 기획보도로 이어진 것 같다.”

- 울산지법 판사에 이어 의정부지법도 결국 특가법 징역형 처벌에 대해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특가법 제5조의 4에 대해 두 명의 판사가 위헌제청을 했다. 헌법재판소에 문의하니, 현직 판사들이 특가법을 문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7월부터 넉 달 간 보도했는데, 그 사이 벌어진 일이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이 씨도 항소했다. 국선변호인이 헌재 판단을 기다려 보자고 한 것 같다. 2심 재판부는 지난 17일 ‘헌법재판소 위헌 여부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멈추겠다’고 했다. 작디작은 ‘코로나 장발장’ 이야기가 법 제도까지 바꾸는 큰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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