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에서 쓰레기 된 공정경제 3법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개혁입법이라던 공정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처리 과정에서 법안이 대폭 후퇴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이 아닌 ‘개별’ 3% 제한으로 완화되어, 독립적 감사위원 선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합산이 아니라 개별 3%로 의결권을 제한하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인 계열사의 지분 쪼개기로 의결권을 늘릴 수 있어 감사위원 분리선임에도 대주주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수 주주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키로 했지만, 소송 기준을 총발행주식 0.01%에서 0.5%로 50배 강화해 대형 상장사 소수 주주의 권한 행사 가능성이 줄었다.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크면 클수록 다중·대표소송이 어려워진다. 삼성전자의 경우 소송 자격을 충족하려면 시총 440조원의 지분 0.5%인 2조2000억원어치를 보유해야 한다.

한편, 공정위와 재벌의 담합을 막기 위해 사회적 피해가 큰 가격·입찰 담합(경성담합)에 한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려 했으나, 공정거래법 처리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삭제돼 무산됐다. 특히 민주당이 해당 상임위 소위에서 합의된 전속고발권 폐지를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뒤엎고 다시 전속고발권을 부활 시켜 법안을 처리해 더욱 큰 논란을 낳았다.

애초 공정경제 3법은 대부분 주주권 강화, 주주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내용으로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에는 크게 미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나마 재벌의 전횡을 주주권 차원에서라도 견제해 보려는 법안들이 대폭 후퇴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대상을 확대한 것이 의미 있어 보이지만 이 조치도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점에서 형식적이다. 계열사와 합병을 하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낮춰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를 보면, 계열사와 합병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의 사익편취 문제를 해소한 회사는 총 35곳에 달했다. 이런 방식으로 재벌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강화한 것도 재벌규제라기보다는 코로나 위기와 불안정한 거시변동 상황에 맞춰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반면, 재벌개혁 차원에서 하기로 했는데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것도 있지만 대놓고 재벌개혁에 역행한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일반 지주회사의 CVC 보유허용이다.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보유할 수 있고 CVC의 자기자본 200% 이내에서 타인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CVC가 조성한 펀드의 최대 40%까지 타인자본의 출자도 허용하고 있다. 이런 대기업 CVC의 허용은 재벌이 타인 자본으로 계열사를 확장하고, 총수 일가가 소유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몰아주기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처럼 공정경제 3법 개정은 소수 주주권을 미약한 수준에서 일부 확대했지만, 주로 재벌 지배구조를 합리화하고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가 됐다. 취약한 지배구조에 안전성을 더하고, 절차와 방식을 다소 복잡하게 했지만, 대주주의 이사회 지배력과 사익편취 수단을 계속 유지 또는 확대하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재벌개혁이라는 측면에서 공정경제3법 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하도급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징벌배상제, 집단소송법 개정은 민주당이 법안 처리 의지를 보이지 않아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 6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먹고 살자 최저임금, 재벌개혁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막아내자 최저임금 동결,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6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먹고 살자 최저임금, 재벌개혁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막아내자 최저임금 동결,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동관계법 “ILO 기준 무시한 개악”… 노동유연화도 확대

한편, 정부가 ILO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손질하는 내용에 ILO 권고기준에도 맞지 않는 개악 요소가 다분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우선, 이번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노동3권이 후퇴했다. 해고자, 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했지만, 해당 노조의 임원이나 대의원이 될 수 없고 조합원의 권리 보장이 안 된다. 조합비 납부 등 조합원의 의무만 지어질 뿐 권리는 행사할 수 없는 서류상의 조합원일 뿐이다.

또한, 2년으로 되어있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맞물려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 행사에 제약을 가져오게 했다. 교섭대표 노조가 아닌 소수노조의 경우 최소 4년간 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사업장 내 점거를 전면 금지하는 문구는 삭제했지만,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대신 신설되었다. 사업장 내 점거 제한,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조합원의 사업장 내 노동조합 활동의 제한도 대부분 살아있다.

둘째,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제 확대로 노동유연화가 확대했다. 업무량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다. 연구개발업무로 제한됐지만, 출퇴근 시간이 조정되는 선택근로기간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됐다.

또한 올해 1월 재난, 사고 상황에서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제를 경영상 사유로까지 확대 시행하게 했는데, 이번에 특별연장근로로 인한 장시간 노동에 따라 사용자의 건강권 보호조치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위반 시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오히려 이 조치 때문에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경영상 사유의 특별연장근로제가 상시 제도로 인정된 것이라 평가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의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던 정부·여당의 주장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ILO의 권고와 국제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노동기본권은 개악됐고 노동유연화만 남았다.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에도 노동유연화 확대와 노동기본권 개악으로 노동자의 삶을 더욱 고단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규제 완화와 시간 벌기… “기업 규제 더 풀어야”

이런 상황에는 재계와 보수 일간지, 경제지에 의해 공정경제3법은 기업규제법이고 노동관계법은 사업장을 해고자 천국으로 만들어 한국에서 기업 하지 말라는 법 개정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은 기업말살법이라며 앞서 처리된 법률들은 재개정이나 시행 유예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은 입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① 조선일보(12월11일)=[사설] 투기자본 돕는 ‘기업 3법’ 강행, 국익 손실 나면 누가 책임지나
② 한국경제신문(12월10일)=해고자가 회사 마음껏 드나들고 임금 협상 나서도 ‘속수무책’
③ 매일경제신문(12월12일)=밖은 투기세력, 안엔 해고자 활보… 기업 ‘지옥문’ 열렸다

이번 공정경제3법 개정에 대해서 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의결권 개별 3% 적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주식 총수의 0.01%에서 0.5%로 50배나 적용기준이 오른 다중·대표소송제 등 소수 주주권의 보장이 대주주의 기업지배에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며 이 또한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들은 “외국계 펀드나 경쟁 세력이 지분 쪼개기 등으로 20% 이상 의결권을 확보 가능한 상황에서는 기업의 방어권은 사실상 무력화되는 수준”이라며 “당장 내년 초부터 신규 감사위원 선임을 앞둔 기업들은 당혹감과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대혼란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행을 1년간 유예해 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12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12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경총의 주장은 대주주가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 못 하게 하는 방식을 오히려 설명하고 있는데, “지분 쪼개기 등으로 20% 이상 의결권을 확보 가능한 상황”은 외국계 펀드나 경쟁세력 보다 대주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펀드나 경쟁세력이 지분 쪼개기로 감사위원 선임이 가능한 상황이면 이미 이사나 대표이사 선임도 가능한 상황이라 이 법 개정으로 투기세력의 경영권 개입을 우려할 문제는 아니다. 즉, ‘기업(?), 재벌의 방어권’이 무력화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위원의 독립성’이 무력화된다.

노동관계법에 대해서도 “해고자가 회사를 활보할 수 있다”며 해고자가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인 것처럼 그려 해고자의 회사 출입에 따라 “더 이상 한국에서 기업을 할 수 없어 떠나고 싶다”라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또한 주 52시간제 확대시행에 대해서도 선택근로와 연장근로를 확대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지난 1년여간의 계도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족하다며 시행을 늦춰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처럼 공정경제 3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라기보다는 시행 시기를 늦춰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개별 3%를 적용할 수 있도록 계열사 지분 쪼개기와 다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백기사, 흑기사로 의결권을 확대할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면 내년 상반기 주주총회까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일감 몰아 주기와 같은 사익편취 규제 확대도 마찬가지인데, 규제대상 기업의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규제 면제 한도까지 낮춰야 하고, 이것도 자회사와의 합병 등으로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익편취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분율 조정을 위해 시간을 더 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한, 노조법 등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노동유연화 조치를 더 확대하라는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아가 이런 목소리를 통해 현재 처리된 법안보다 더 중요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징벌배상제, 집단소송법, 하도급법 등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방어선을 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입법 전쟁터 된 국회

국회가 입법 전쟁터가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문제는 특히 코로나 위기가 계속되면서 삶이 더 위태롭고 고단해진 노동자와 서민,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적 요구가 확대된 것과 또 이 위기로 자본의 수익률이 더 떨어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진 상황에서 이윤율 증대를 위한 규제 완화와 시장 자유화 요구가 충돌하고 있다.

오늘은 공정경제3법, 노동관계법으로 충돌했지만 (국회 상임위나 전체 회에 상정이 되든 안 되든) 내일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징벌배상제, 집단소송법 등으로 충돌할 예정이다. 이뿐이랴.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늘어난 재정통화 확대정책에 따라 막대한 재정부채를 누가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를 놓고 재정준칙은 물론 각종 세법 개정도 직접적 혹은 변칙적으로 쏟아질 전망이다.

또한 자본주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동성 확대에 따라 부동산, 주식, 펀드, 채권 등 자산시장이 급등하면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큰 자산 불평등 시대를 낳고 있다. 실물경제와 괴리된 자산시장의 급등은 누군가의 부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도 지속적이고 장기간 진행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좌충우돌하면서도 방향을 정한 모양새다. 재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공정경제3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은 물론이고, K-뉴딜 사업과 연계된 재벌의 시장 확대, 산업은행 주도로 이루어지는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각종 특혜적 지원과 재벌기업의 시장 독점 확대 등.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경제 위기 하에서 단순한 기업 지원 정책 그 이상의 방향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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