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는 2020년 지면 구독료를 인상할 예정이며 ‘스크랩 마스터’를 통해 본지 PDF 서비스를 이용하는 스크랩 프로그램 이용료도 함께 인상할 예정이다. 제공 상품이 기존 ‘기본’ ‘프리미엄’에서 ‘내부라이선스’로 일원화될 예정이다.”

조선일보가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 ‘스크랩 마스터’를 운영하는 ‘㈜다하미커뮤니케이션즈’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또 다른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 ‘아이서퍼’를 운영하는 ‘비플라이소프트’에도 같은 내용의 공문이 발송됐다고 한다. 두 업체는 조선일보의 구독을 대행하고 있다.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은 지면 신문을 PC와 모바일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면을 따로 스크랩할 수 있고, 지면에 있는 작은 기사들도 따로 스크랩할 수도 있다.

▲지난해 조선일보가 (주)다하미커뮤니케이션즈에 보낸 공문.
▲지난해 조선일보가 (주)다하미커뮤니케이션즈에 보낸 공문.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조선일보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 이용료 인상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지를 통해 2020년 1월1일부터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스크랩 프로그램 이용료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1월1일부터 시행하려 했으나 기업들 반발로 지난 3월부터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 가격표’를 살펴보면, 대기업은 15만9500원(아이디 4개), 중견기업은 8만8000원(아이디 3개), 중소기업 5만5000원(아이디 2개)을 내야 한다. ‘이용범위’는 전자스크랩과 내부 공유로 한정했다. 전자스크랩은 지면 스크랩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내부 공유는 직원들끼리만 지면 스크랩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대기업 기준 아이디 4개 중 한 개는 제휴된 모든 매체를 볼 수 있는 아이디, 나머지 3개는 조선일보 조간 모니터링만 할 수 있는 아이디라고 한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기본’(2만7500원)과 ‘프리미엄’ 등 여러 이용 상품을 제공해 왔는데 이 조치는 ‘내부라이선스’(15만9500원) 상품 하나로만 일원화해 서비스하기로 한 것이다. 대기업들을 포함해 대부분 기업은 조선일보를 포함해 다른 언론사 신문 스크랩 서비스를 ‘스크랩 마스터’와 ‘아이서퍼’에서 매체별로 월 2만7500원을 내고 이용해왔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2만7500원의 기본 상품 등을 폐지하고 서비스를 일원화하면서 대기업은 연간 33만원 내던 이용료를 191만4000원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6배가량 오른 연간 구독료에 대기업들은 “아이디 4개까지 무슨 필요가 있나. 아침에 잠깐 보는데, 지나친 구독료 인상”이라고 성토했다. 반면 조선일보 관계자는 “시장 가격을 제시하는 건 기업의 자율이고 구독 여부는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도 “그동안 민간기업들이 많은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하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스크랩 서비스는 다른 언론사 대비 비싼 것일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다하미커뮤니케이션즈, 비플라이소프트 등과 각각 따로 계약을 체결한다. 반면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사들은 언론진흥재단에 신탁을 맡겼다. 언론진흥재단은 기존 가격 정책을 변경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대행사를 대상으로 독자적으로 가격 협상 공문을 낼 수 있었던 이유다.

언론진흥재단 ‘뉴스저작권’ 페이지를 살펴보면 기업을 상대로 한 ‘B2B 상품’으로 ‘스크랩상품’과 ‘내부라이선스’, ‘통합라이선스’ 등 3가지 상품이 있다. 스크랩상품은 기사 내용만 볼 수 있고, 내부라이선스는 기사 내용을 보고 내부직원들끼리 기사 스크랩 후 공유할 수 있다. 또 통합라이선스는 스크랩한 기사를 외부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기사 내용만 볼 수 있는 스크랩상품(2만7500원)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기업, 소상공인 등 모두가 같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진흥재단은 대기업을 기준으로 내부라이선스는 15만4000원, 통합라이선스는 31만9000원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대기업 기준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선일보 ‘내부라이선스’(15만9500원)와 언론진흥재단 ‘내부라이선스’(15만4000원)에는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다만 조선일보의 경우 여러 서비스 제공을 철회하고 하나의 선택지만 제공하는 상황에 이용자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

언론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민간기업들이 뉴스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가격만 올린 게 아니다. 기존엔 아이디를 하나만 쓸 수 있었다. 올해부턴 대기업 같은 경우엔 아이디 4개를 드리고 있다”며 “오히려 더 저렴해진 면이 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여러 상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스크랩마스터나 아이서퍼 등 대행업체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며 “(기업들이) 대행업체에 몰래 얘기해 동시접속 제한을 풀어달라고 한 적도 있고, 대기업이 한 개 아이디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저작권 위반 및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진흥재단 관계자도 “그동안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뒤 “기업들이 (스크랩상품을) 자꾸 값싸게만 쓰려고 한다. 콘텐츠 가격을 제대로 지불해야 언론사도 성장하고 포털 기사 어뷰징을 하지 않게 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대기업 관계자들은 “부담스러운 가격 상승”이라고 입을 모았다. A 대기업 관계자는 “아이디 한 개가 한 명에 대한 아이디였나? 한 회사에서 하나의 아이디로 같이 보는 게 왜 저작권 침해인지 모르겠다. 사실 뉴스 스크랩 서비스는 특정 부서만 본다. 아이디가 4개까지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B 대기업 관계자는 “한 아이디를 여러 명이 쓰는 게 문제라면 서비스업체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개발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이유로 아이디 4개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일원화해 비싼 상품을 이용하도록 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C 대기업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올리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상품을 단일화할 수도 있고 언론재단도 움직일 수 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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