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은 “인류의 공공재”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으며, 이는 코로나19 종식의 첫 걸음이다. 반면 백신 접종 비용을 지급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면 코로나19 종식 가능성도 작아진다. 이 때문에 G20을 필두로 대부분 국가에서 코로나 백신을 “인류의 공공재”로 규정하고 코로나 백신 개발과 보급에 나서고 있다.

지난 11월22일 코로나19 사태 속에 화상으로 진행된 G20 정상회의 정상선언문에서 “(코로나19) 진단 기기, 치료제 및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 적정 가격에 공평하게 보급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광범위한 접종에 따른 면역이 전 세계적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19일 세계보건총회(WHA) 기조연설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며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는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개발은 공공투자? 입도선매!

현재 대부분 백신은 서구의 초국적 제약회사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현재 임상 3상에 진입하거나 3상을 마친 코로나19 후보 백신은 11개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를 비롯해 미국의 모더나와 J&J, 영국의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 중국의 칸시노와 시노백, 시노팜, 러시아의 가말레야 등이다. 이 밖에 임상 2상에는 14개, 1상에는 제약사 38개가 진입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 백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서구 의료 전문가들이 안전성과 효과에 지속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주로 서구의 초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한 백신만이 국제적으로 대량 유통될 전망이다.

백신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효과적 배분을 위해 국제적으로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형성했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 세계보건기구(WHO)를 공동 주관기구로 하는 글로벌 백신 공급기구로, 2021년 말까지 20억회 분의 백신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월 기준으로 한국을 포함해 184개국이 가입해 있다. 이 프로그램 참여국은 백신의 균등 분배를 위해 총인구의 20% 분량의 백신만 우선 수령하기로 했다.

그런데 코백스 퍼실리티 회원국들은 ‘코백스 선시장공약(Advance Market Commitment)’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코백스 AMC는 공여국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백신 제조사들과 선구매 계약을 체결, 개발 성공 시 자신의 국가의 구매 물량과 함께 일정한 부분을 개도국에 백신을 지원한다.

쉽게 말해 코백스 AMC는 입도선매 형태로 개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개발에 투자했으면 백신의 특허권을 정부가 공동으로 보유해도 되는데 입도선매로 하는 것은 특허권이 아니라 개발된 백신을 구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투자 자금이 아니라 거래 대금을 미리 지불한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백신의 특허권, 지식재산권을 해당 제약사가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화이자와 모더나도 코백스 퍼실리티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입도선매 방식으로 개발이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국들은 이미 화이자 백신을 입도선매했다. 미국(6억회분·5억회분은 추가 구입 선택권), 유럽연합(3억회분·1억회분은 추가 구입 선택권), 일본(1억2000만회분), 멕시코(3440만회분), 영국(3000만회분) 등이다. 화이자가 내년까지 공급 가능하다고 밝힌 13억5000만회분의 90% 정도가 이렇게 이미 계약된 물량이다. 입도선매된 백신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1회당 아스트라제네카는 3달러 수준에서 모더나는 37달러까지 차이가 난다.

▲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 로이터/연합뉴스
▲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 로이터/연합뉴스

이 같은 입도선매 방식의 개발은 초기에 가장 많은 물량을 계약할 수 있는 이가 가장 투자를 많이 받아 앞선 줄에 서게 됨을 의미한다.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소에 따르면, 가능성 있는 백신 개발품 64억회 분량이 이미 선구매됐고, 다른 32억회 분량은 구매 협상이 진행 중이거나 “이미 맺은 구매 계약 건의 추가 구매 옵션”으로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등 부자 나라들에서는 코백스 퍼실리티 이외에도 이미 이 같은 방식으로 모든 인구가 투약하고도 남을 백신을 확보했다.

한편, 제조 능력을 갖춘 중위 소득 국가 일부에서는 개발 조건을 놓고 제약사들과 구매 계약을 협상할 수 있었다. 브라질과 인도, 멕시코처럼 임상시험을 열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춘 나라는 이를 기회로 사용해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 일례로 인도는 임상시험에 자국민 참여를 허용하고 세계 최대 백신 제조사인 인도의 세럼연구소는 자사에서 생산하는 백신의 절반을 국내용으로 확보했다. 브라질은 옥스퍼드대학교와 아스트라제네카가 시행하는 임상시험을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 여건이 돼 국민들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제공하고 백신을 얻은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국 언론은 도대체 정부가 제약사들과 공급 물량을 얼마만큼 계약했는가에만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아마 우리도 대유행이 번져 확진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면 브라질과 인도처럼 국민들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제공하고 백신을 구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 네이버 뉴스 ‘한국 백신’ 관련 기사 갈무리
▲ 네이버 뉴스 ‘한국 백신’ 관련 기사 갈무리

공공재의 사전적 정의는 가로등, 공원, 일반 도로와 같이 비경합적(내가 이용해도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고)이고 비배제적인(사용료 없이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를 말한다. 현재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고 유통되는 방식은 개발에 성공한 서구의 초국적 제약사들에 의해 공급이 독점된 공급독점 시장과 같다.

게다가 가격이 이미 책정돼 선거래가 일어난 입도선매 방식이므로 공공재와는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공공재는 공공이나 국가가 소유하는 데 반해 코로나 백신의 특허권, 지식재산권은 각국 정부가 개발 자금 대부분을 부담하는데도 명백하게 제약회사 소유다. 공공 소유가 아닌 백신은 공공재가 아니다.

백신 기술 공유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거부”

세계 보건의료에서 불평등 문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WHO는 매년 신생아 2000만명이 백신 부족 문제를 겪는 것으로 추산한다.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백신 공급 대부분이 선구매 계약으로 부유한 국가들에 의해 선점됐다고 한다.

이 같은 백신 공급의 구조적 문제는 특히 공중 보건 긴급 상황에서 특허 또는 지식재산권으로 인한 예방 백신, 치료의 접근성, 가용성을 방해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전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는 특허받은 치료제의 엄청난 가격으로 인해 HIV/AIDS와 효과적으로 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허는 필수 의료 기술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데, 지금 코로나 백신 개발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WHO는 5월29일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및 공평한 분배를 위한 ‘코로나 기술접근 풀(C-TAP)’을 출범했다. C-TAP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관련한 기술, 과학적 지식, 자료 등을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한다. WHO의 이 같은 구상은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40개국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연합체인 국제제약협회연맹(IFPMA)은 바로 다음날 성명을 내고 WHO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IFPMA는 “지식재산 시스템은 바이오 의약품 혁신자와 정부, 대학과 다른 연구 파트너가 협력해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등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의료 수요를 맞추는 데 속도를 높일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지식재산권이 유지되지 않으면 백신 개발 동인이 사라져 백신 개발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백신 소유권은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등장한 시스템이 바로 코백스 AMC와 같은 ‘입도선매’ 시스템이다. 결국 이 시스템은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 재난 상황에서도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과 지식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국제적으로 팬데믹을 종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지식재산권 배제하고 제네릭(복제의약품) 허용해야

화이자와 모더나의 후보 백신은 모두 신기술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전령RNA) 방식으로 개발됐다. 기존 백신을 제조하려면 달걀에 원료 성분을 배양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mRNA 백신은 이 과정 없이 만들 수 있다. 그 때문에 통상 백신을 개발하는 데 최소 4년이 소요되는 것이 1년 이내 짧은 기간에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메신저 리보핵산(mRNA)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설계한 것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처음 개발됐다. 원천기술인 mRNA 방식을 정부가 가진 셈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모더나는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공동으로 수년간 mRNA 백신에 대한 기본 연구를 진행해 왔고 국립보건원의 연구자금 지원까지 받았다. 화이자와 공동으로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앤테크 역시 독일 정부에서 3억7500만 유로(5천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화이자와 모더나 후보 백신의 원천기술과 개발자금이 모두 정부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이들은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며 아스트라제네카 후보 백신의 10배 가까운 가격을 책정하고 그나마 코벡스 퍼실리티에도 참여하지 않고 개별로 각국 정부와 협상하고 있다.

대가를 주지 않으면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약자본의 이윤추구 논리와 이를 정당화하는 현재의 백신 개발 시스템으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속도를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개발된다 하더라도 개도국 수십억명의 인구는 여전히 백신에 대한 접근권이 떨어져 대유행을 잠재울 만큼의 백신을 맞을 수도 없다. GAVI가 목표로 하는 개도국 20% 인구가 백신을 받더라도 팬데믹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정당한 접근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진정으로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코로나 기술접근 풀(C-TAP)’이 확산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기술이 투명하게 보급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백신 보급을 가로막고 있는 지식재산권협정(TRIPS) 폐기 내지는 최소한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서는 배제돼야 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제품 특허권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 TRIPS 협정 유예안을 제출한 상태다.

특히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제네릭(복제의약품) 허용에 있다. 지식재산권은 초국적 제약회사가 충분한 백신을 공급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다른 공급사가 제네릭(복제약) 대체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백신 가용성을 제한할 수 있다.

가령 화이자가 내년까지 공급가능하다는 13억회 분량은 화이자가 백신 제조 기업들과 맺은 계약에 따른다. 인도와 남아공 등에서는 백신을 빨리 개발할 정도의 기술은 없지만 개발된 백신을 생산할 능력은 갖추고 있다. 민간기업만이 아니라 국영제약회사도 있다. 제네릭을 허용하면 백신 생산이 가능한 기업들이 각국 정부 발주로 더 많은 백신을 만들 수 있고, 영하 70도 상태를 유지하면서(전용 냉동고 1대 비용만 2만 달러에 달한다) 비행기로 이동해야 하는 유통 문제도 완화할 수 있어 더 빨리 백신을 투약할 수 있다. 즉, 지식재산권 유예나 배제 또는 백신에 대한 공적 소유를 통해 코로나 백신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해야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대부분 어린이를 표적으로 삼는 소아마비가 대유행해 전 세계 가족을 황폐화했다. 이 상황에서 1955년 조너스 소크(Jonas Salk)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세상을 바꾸었다. 소크는 백신에 대한 특허권자가 누구냐란 질문에 “그건 인류겠지요. 특허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태양에 대한 특허를 어떻게 낼 수 있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렇게 소아마비 백신은 특허 없이 국제 시장에 출시됐으며 현재 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이 질병이 근절됐다.

지식재산권 제도, 이윤을 남기지 않으면 개발하지 못하겠다는 논리가 우리를 죽이는 셈이다. 코로나 백신은 진정한 ‘인류의 공공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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