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은 한국 탐사보도 영역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아시스처럼 고립돼 왔다.”

MBC를 대표하는 시사 프로그램 ‘PD수첩’ 탄생 30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7일 서울 정동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고 MBC가 후원한 ‘공영방송과 저널리즘, 그리고 탐사보도 : MBC PD수첩 방송 30주년을 맞이하여’ 세미나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안수찬 전 한겨레 기자는 MBC PD수첩을 ‘오아시스’에 비유했다. 1990년 5월 방송한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편을 이후로 지난 30년 동안 탐사 저널리즘을 좇고 정립한 PD수첩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현재 뉴스 생태계에선 고립돼 있다”고 진단했다.

안 전 기자는 탐사 보도를 위해서는 시간과 자원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 해외논문을 인용하며 PD수첩이 그동안 ‘시간 투자’에 있어서 타 매체들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1976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탐사보도기자협회에 제출된 기자상 후보작 757건을 분석한 결과, 완성된 기사에 할애된 평균 취재 시간은 20주였다. 5개월 정도 탐사 보도에 할애했던 것. 이 조사는 ‘탐사보도에 1년 이상 걸렸다’고 응답한 대상을 제외한 것으로, 보도에 1년 이상 걸렸다고 밝힌 이들도 적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PD수첩이 통상 ‘8주에 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데에 비춰보면, “PD수첩의 취재 방식과 투자는 한국언론에선 파격적 시도”(안수찬)였던 것. 그러나 안 전 기자는 “문제는 ‘8주에 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포털 사이트에 포획된 언론 문제를 포함해 전체 언론의 평균적 품질은 저하된 상태지만 최근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하는 기사들의 품질은 진화하고 있다는 것. 탁월한 기사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 기사는 최소 8주 이상씩 취재하고 있으며 기자들의 탐사 보도 역량이 과거와 달리 크게 향상됐다는 점에서 PD수첩이 타 언론 도전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 전 기자는 “MBC PD수첩이 독특했던 이유는 주류 미디어가 탐사 보도를 추구했다는 점”이라며 “이제는 PD수첩만의 지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탐사 저널리즘을 좇는) 공영방송 MBC’라는 브랜드로 확장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 전 기자는 탐사 보도 주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기자와 PD 직역이 구분돼 있고 본사와 지역사의 취재·보도 연계성이 다소 분리돼 있는 상황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보도 주체들이 늘어야 탐사 저널리즘이 MBC를 대표하는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

▲ 지난 27일 서울 정동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고 MBC가 후원한 ‘공영방송과 저널리즘, 그리고 탐사보도 : MBC PD수첩 방송 30주년을 맞이하여’ 세미나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언론정보학회 유튜브 화면 갈무리.
▲ 지난 27일 서울 정동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고 MBC가 후원한 ‘공영방송과 저널리즘, 그리고 탐사보도 : MBC PD수첩 방송 30주년을 맞이하여’ 세미나에서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언론정보학회 유튜브 화면 갈무리.

홍성일 전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PD수첩을 ‘PD저널리즘 1.0’으로 규정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산물인 PD수첩은 여전히 거대 권력과 맞서는 지사주의적 속성이 강하고, 때때로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거대권력을 비판하는 좋은 보도를 했으니 시청자들이 판단해달라’는 식으로는 외면을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홍 전 연구원은 “PD 저널리즘 1.0이 1987 체제 하에서 언론사 내부 조직 구조 역학 속에서 태동된 것이라면 PD 저널리즘 2.0은 ‘촛불 혁명’ 하에서 시민들의 감정 구조를 읽어내고 그들과 연대하며 PD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를 통해 새로운 변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전 연구원은 “시민 일상으로 다가가 그들 감정 구조를 파고들어 사회적 약자 편에서 당대 한국사회를 파고드는 ‘PD 저널리즘’의 가치와 가능성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면서도 “그것이 여전히 남성적이어야 하는가, 훈계조여야 하는가, 핍박받는 고독한 저널리스트여야 하는가는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즉 “PD 저널리즘 2.0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한 세대 뒤에 이은 ‘촛불 혁명’의 입체성과 다양성을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새로운 저널리즘 양식으로 반영할 것인가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

김연식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PD수첩이 우리사회 갈등뿐 아니라 대안과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부조리 고발에 대한 분노만 담아낼 것이 아니라 고발 주체와 함께 어떻게 현실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 그 과정을 취재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대안과 개선 방법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PD수첩이 갖고 있는 탐사보도 노하우를 다른 매체들과 공유하고, 특히 지역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지역에도 탐사 보도를 하고 싶어 하는 언론인들이 많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이를 지역 언론인들과 공유하며 함께 지역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다. 지역 계열사와 협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MBC PD수첩 제작진으로 활동했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뉴스 신뢰도가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PD수첩은) 정확성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사실을 획득하는 과정에서의 취재윤리가 지금보다 더 포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취재진은 여러 구성원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로 노동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며 “PD수첩은 권력 감시라는 성취를 이뤘지만, 노동과 생존을 둘러싼 불평등 문제를 공론화하고 다루게 된다면 더 많은 이들이 PD수첩을 시청하고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시민의 노동과 삶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PD수첩 진행자인 한학수 PD는 “현재 취재 각 단계별로 팩트체크와 데스킹이 촘촘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작은 실수가 큰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혹할 정도로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PD는 PD수첩 내에 취재팀과 별도로 팩트체크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 같은 내부 견제 시스템은 프로그램 생명을 지속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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