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침묵을 둘러싼 해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이 사상 첫 ‘검찰총장 직무정지’로 이어졌는데 왜 입을 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시기 문제일 뿐 대통령 결단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관건은 따로 있다. 혼란을 수습하고 검찰개혁 동력을 세울 리더십이 대통령에게 존재하는가.

청와대는 추 장관과 윤 총장 갈등에 적극적으로 ‘입장 없음’을 피력해왔다. 지난 24일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결정했을 때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단에 한 문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장관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해 별도의 언급은 없었습니다.”

지난달 윤 총장이 대통령 메신저로부터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들었다고 주장했을 때도 청와대 측은 “대통령의 언급을 들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자들 질문을 받았던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보가 없다.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보다 앞서 7월 추미애 장관이 ‘검언유착’ 사건에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을 때도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공식으로 입장을 낼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20년 11월3일 제55차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0년 11월3일 제55차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지난 10월 추 장관이 라임자산운용 및 윤 총장 가족·측근 사건에 다시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을 때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이) 장관으로부터 수사지휘권 행사 여부를 보고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수사지휘권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침묵이 추 장관에 대한 암묵적 동의 내지 승인이라는 추측이 이어진 이유다.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지지했다거나 힘을 실어줬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관련 사건에서 배제했어야 한다는 당위성 문제인지, 추 장관이 현행법에 명시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겠다고 결정했으니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인지, 검찰개혁을 위한 관문으로써 필요성을 강조했는지 등 여러 관점에서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는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불구속 수사하도록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사례가 나온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수사 지휘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참여정부 이전까지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이런저런 지휘를 하는 건 아주 다반사였다”며 “당시 수사권 지휘야말로 법무부장관이 평소 검찰총장에게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이 임기를 지키지 않고 사퇴한 일은 “이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검찰총장은 자기 소신과 달라도 법무부장관 지시에 의해 처리하는 게 절차다. 본인 소신은 얼마든지 별도로 밝히면 될 일”이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마련된 중요한 제도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임기를 지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2019년 7월25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 대통령은 이날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진=청와대
▲2019년 7월25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 대통령은 이날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진=청와대

그러면서도 “천 장관의 수사권 지휘가 현명했는지도 의문은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강금실 장관 때부터 법무부와 검찰 개혁을 위해 비검찰 출신 법무부장관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조직과 융화가 잘 안됐다. 검찰을 통솔해서 개혁 대열로 이끄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끝까지 검찰 조직과 융화하지 못했고, 검찰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수사권 지휘로 인해 치른 희생도 컸다”고 돌아봤다.

2020년 11월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여러 차례 이행됐고 검찰총장은 임기를 지키고 있다. 되레 여권에서 ‘총장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개혁’이 있어야 할 자리는 ‘추미애 대 윤석열’ 구도가 뒤덮었다. 사태가 검찰총장 직무정지로 이어지면서 검찰 반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불가피한 희생일까, 반복되는 실패일까.

10여년 전 일을 지금의 ‘추·윤 갈등’에 그대로 대입해선 안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상황을 지켜봤을 때와, 책이 출간됐을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서의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의 판단이 달라졌을 수 있다. 그렇다면 15년 전과 지금은 무엇이 같고 또 달라졌는지, 지금의 갈등 양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면 이 또한 정치권을 넘어 국민에게 설득해야 할 부분이다.

이쯤에서 문 대통령 취임 일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2017년 5월10일 취임선서에서 문 대통령은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 강조했다.

▲2018년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 들어올린 기자들의 손 사이로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보인다. 사진=청와대
▲2018년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 손을 들어올린 기자들의 뒷모습,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러나 질문을 마주하는 대통령은 점차 보기 어려워졌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국민과 소통의 방법으로 언론과 소통하는 것은 핵심적이기에 언론과의 접촉을 더 늘려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2019년 신년 기자회견과 출입기자단 초청행사를 제외하면 여러 언론과 즉흥 질문을 주고받는 자리는 없었다. 올해 5월 취임 3주년은 애초 ‘특별연설’ 형식으로 진행됐고, 최소한의 질문만 허용됐다. 윤도한 당시 국민소통수석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특별연설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고 강조하며 “연설 내용 가운데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거나 궁금한 부분”을 물으라고 설명했다. 질의는 3번의 문답으로 끝났다.

검찰개혁에 관해서도 소통은 더디고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8월 ‘검찰개혁 승부수’로 지명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두고 자녀 입시 의혹이 불거졌으나 문 대통령은 다음달이 돼서야 ‘입시 제도 전반 재검토’를 주문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검찰개혁 필요성을 직접 역설한 일도 조 장관 시절까지다. 조 전 장관 사퇴 이틀 뒤인 10월16일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 면담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조국 장관이 사퇴 전에 발표한 검찰 개혁 방안”이라고 말한 뒤 문 대통령 메시지는 사라졌다.

최근 대통령은 각종 행사를 비롯한 국정홍보 현장에서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불편하고 민감한 사안은 피하고, 알리고 싶은 일만 알리는 일방 소통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라며 “정부가 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반대 의견이 있으면 귀를 기울이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도 그 소신이 유효하다면 관망 끝에 결단만 내리는 심판자에 대통령을 가둬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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