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뉴미디어 분야에서 지속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결 조건이 있다. 반드시 브랜드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 중반 출생자)는 브랜딩이 잘 된 뉴스와 잘 되지 않은 뉴스를 무의식적으로 구분할 줄 안다. 손끝이 무의식을 따른다. 콘텐츠가 유익한가? Yes. 그럼 구독(팔로우)할 만한가? 그건 No. 재미없는 유튜브 스킵하는 법을 젓가락질보다 먼저 배우는 엄지 관절 발달 세대에게, 콘텐츠가 각자 따로 노는 ‘○○일보 유튜브’는 가까이할 브랜드가 아니다.

지금 대부분 언론사에는 브랜딩 DNA가 없다. 소수 언론사가 전파와 지면을 과점했던 과거에는 굳이 뉴스 소비자들 머릿속에 각인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뉴스 공급 주도권이 포털로 넘어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독자가 브랜드를 보고 뉴스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요즘 애들은 우리가 뉴스를 만들어도 보질 않으니,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냥 다 맡겨보자.’ 이런 전략 아닌 전략으로 형성된 분야가 지금의 소위 뉴미디어다. 2015년께 SBS ‘스브스뉴스’가 이런 접근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생각해보면 이전까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인턴을 잘 뽑지 않았다. 흔치 않은 기회에 재기발랄한 인재가 모여든 결과다. 그러자 이를 본 타 언론사들이 앞다퉈 비슷한 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투입된 인력 중 일부가 지금은 각 사마다 뉴미디어 PD, 혹은 그 비슷한 이름으로 상주하고 있다. 내가 지금 회사에 들어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pixabay.
▲ⓒpixabay.

 

구독이 중심이 되는 뉴미디어 시대에서는 더욱 정교한 브랜딩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한 채널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나눠 제작해도, 독자에게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보이도록 정밀한 세계관을 설정해야 한다. 예능의 경우 합이 좋은 캐릭터만 잘 섭외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는데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이게 만만치가 않다. 의사결정권자의 리더십만으로는 부족하다. 각자 임무를 맡은 팀원의 이해도와 임무를 넘나드는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선 넘는 놈’들이 필요하다.

미국의 뉴미디어 매체 Vox의 아트디렉터 Dion Lee가 한국에 왔을 때 나눈 말이 있다. 그가 처음 취직했을 당시 Vox에는 10명 남짓한 인원이 있었다. 애니메이터, 저널리스트 할 것 없이 모두가 글도 쓰고 연구도 하고 실제 제작도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Vox다운’ 최선의 작업물을 위해 서로를 이해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이 팀의 멤버들이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한 배에 탔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한국 언론사에서는 선을 넘기 힘들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고용 조건 때문이다. 일단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언론사들은 한때 촬영과 편집 능력, 개인 카메라 소지 여부까지 봐 가면서 값싸게 인턴을 뽑았다. 뉴미디어 노동자로 진입한 청년들은 초반엔 그저 콘텐츠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뭐든 만들어보는 데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일할수록, 이곳의 누구도 내 미래는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턴이나 프리랜서를 뽑아놓고 브랜딩까지 해주길 기대하는 건 선 넘는 거다. 계약 위반이다. 이때 회사는 사내 뉴미디어 팀에게 지속가능한 수익을 먼저 보여주길 기대하는데, 최근 한 신문사의 뉴미디어 팀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해봤자 ‘팽’ 당할 사람들 다시 뽑아서 일 시킬 자신이 없어요.” 익숙한 무한 루프다.

▲왼쪽 위부터 KBS·SBS·CBS·중앙일보 뉴미디어 브랜드 크랩, 디지털뉴스랩, 씨리얼, 헤이뉴스 로고.
▲왼쪽 위부터 KBS·SBS·CBS·중앙일보 뉴미디어 브랜드 크랩, 디지털뉴스랩, 씨리얼, 헤이뉴스 로고.

 

두 번째 이유는 채용 구조다. 특히 방송사 ‘공개채용’ 벽은 참으로 굳건하다. 우연히 올해 SBS 정규직 PD 공채 공고를 보고 기함했다. 무려 네 번의 면접과 두 달의 인턴십을 거친다. 생계 활동을 하면서 준비할 생각은 아예 말란 소리다. 이렇게 형성된 고연봉 테이블은 특별 계급이다. 하는 일의 본질은 같은데 채용 루트가 달랐던 기획자들이 회사에는 점점 늘어나지만 ‘너희는 비정규직 아니면 자회사’라고 딱 선을 긋는다.

신문사도 다를 게 없다. 편집국 기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에서 기자 같은 PD, PD 같은 기자, 기획자 같은 디자이너는 나올 리 만무하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직무를 단순한 손발로 여기는 신문사에 지원할 확률도 희박하다.

얼마 전 KBS ‘저널리즘토크쇼J’ 페이스북에 기습적으로 올라왔던 일방적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프리랜서 PD의 비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시작한 팀이었다. 세련된 콘셉트 아래 지상파와 뉴미디어를 적재적소로 넘나들었다. 결국 이 또한 누군가의 선 넘는 희생 덕분에 가능했음을 짐작케 했다. 공교롭게도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제작진이 다룬 마지막 소재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노동 보도에 소홀한 언론을 비판하는 아이템이었다. 사람들이 브랜드에 기대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결국 일관성이다. 적어도 한 입으로 두 말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내가 뉴미디어 노동자가 된 지도 5년이 훌쩍 넘었다. 인턴, 프리랜서, 파견직, 계약직, 그리고 정규직. 나는 한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계약 조건을 거쳐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기억나는 장면 하나. 어느 주말이었다. 회사 선배가 ‘네 집 근처로 갈 테니 잠시 급하게 볼 수 있겠냐’고 했다. 나는 전날 동료들과 술을 기울이며 생일 파티를 했다. 모두가 그간 성과에 대해 진심으로 격려해주신 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나간 내게, 선배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조건으로 재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선배는 안 마시던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미안해서 울었다. 나도 울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이외에도 너무나 많다. ‘재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문명특급’ 이은재 PD가 어느 인터뷰에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존버’ 상태를 ‘존중하며 버티기’로 순화해서 표현한 것을 봤다. 실제로 그땐 존중하며 버티는 것밖엔 답이 없었다. 나라도 나를, 내가 하는 일을 두 배, 세 배로 아껴줘야 자존감이 바닥나지 않았다.

▲신혜림 CBS  씨리얼팀 PD가 2018년 8월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신혜림 CBS 씨리얼팀 PD가 2018년 8월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존중하며 버틸 힘을 줬던 것은 단연코 ‘씨리얼’이란 브랜드다. 우울할 때면 “역시 씨리얼”, “씨리얼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댓글과 주변 반응이 브랜드 지킴이를 자처하게 해줬다. 언론사 뉴미디어 노동자에게 이제나 저제나 힘든 것은 나와 처지가 비슷한 비정규직 아이템을 스스로 발제하는 일이다. 어떤 매체에서는 아예 암묵적인 금기 아이템이라고 한다. 취재하다 ‘현타’가 올 게 뻔하지만 그래도 발제해본다. 나는 나약하지만 씨리얼이란 놈은 정의롭고 할 말은 하는 애니까.

배운 것도 없이 바로 선배가 됐다고 징징대던 나는 이제 징징댈 핑계도 사라졌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오래 걸려도 끝까지 안고 가야 할 과제다. 늘 고민했다. 뉴미디어가 왜 ‘뉴’일까. 양질의 콘텐츠를 전달하는 임무는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문명특급’의 홍민지 PD는 지난 9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사람을 갈아 넣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뉴’가 있다고 말했다. 멋있으면서 슬픈 말이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당장은 밤낮으로 본인을 갈아 넣는 내가 아는 몇몇 사람 모습이 떠올라서다.

밀레니얼 세대에 ‘뉴’를 맡겨버린 업계. 우리에겐 지금이라도 좀 더 자세한 질문이 필요하다. “어떤 직무의 종사자는 소위 공채로 뽑히고, 어떤 직무의 종사자는 왜 그렇지 않은가? 어떤 역할이 정규직이고, 어떤 역할이 비정규직인가? 비정규직으로 실험을 시작하면 끝내 어떤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가? 비정규직 팀원을 데리고 있는 팀장들의 딜레마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했던 사회초년생의 의지를 지금의 시스템은 얼마나 무심하게 꺾고 있는가? 비정규직 언론 노동자의 결과물을 보며 언론인을 꿈꾸게 된 예비 저널리스트에게, 우리는 어떤 희망찬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 언론사 미래가, 저널리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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