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신문 부수 인증기관인 한국ABC협회 내부에서 “일간신문 공사(부수 조사)결과와 관련한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진정서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접수돼 파장이 예상된다. ABC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유료부수에 신빙성이 없다는 지적이 신문업계의 ‘침묵’ 속에 이어져 온 가운데 이윽고 내부폭로마저 나와 관리·감독 위치에 있는 문체부의 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ABC협회 소속 내부 관계자들은 9일 문체부 미디어정책과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지난 5년간 ABC협회 일간신문 공사결과는 신뢰성을 잃었고 공사과정은 불투명해 구성원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20년(2019년도분) 공사결과 A신문은 발행부수 대비 95.94%의 유가율을 기록했다. 2019년도(2018년분) 공사결과 B신문은 93.26%의 유가율을 기록했다”며 “협회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유료부수 공사결과를 버젓이 발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신문은 조선일보로, 발행부수 121만2208부와 유료부수 116만2953부로 차이가 불과 4만9255부다. B신문은 한겨레로, 발행부수 21만4832부와 유료부수 20만343부로 차이가 1만4489부다. 쉽게 말해 100부를 발행하면 조선일보는 이 중 96부, 한겨레는 93부가 돈 내고 보는 유료부수라는 이야기다. 

전국종합일간지 경기도지역 신문지국장은 “ABC협회가 아무리 신문사 회비로 운영되더라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치다. 지국에 들어오는 신문의 최소 3분의1은 파지다. 2분의1이 파지인 곳도 있다”며 “ABC협회는 오늘이라도 해산해야 한다. 그 사람들 때문에 신문시장이 왜곡돼 파지가 늘었고 지국장들은 구독료가 아닌 파지로 먹고 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된 KBS '저널리즘토크쇼J'의 한 장면. 파지로 직행하는 신문들의 모습.
▲지난해 방송된 KBS '저널리즘토크쇼J'의 한 장면. 폐지공장으로 직행하는 신문들의 모습.
▲한국ABC협회 로고.
▲한국ABC협회 로고.

전국종합일간지 서울지역 신문지국장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30%는 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ABC협회가 내놓은 조선일보 유료부수에서 30만 부 정도는 빠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 뒤 “업계에서 동아일보가 유료부수 2등으로 올라갈 때 ABC협회에서 계획적으로 (공사를) 나간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가진 적도 있다”고 전했다. 

광고업계 관계자 또한 ABC협회 공사결과를 두고 “불가능한 수치다. 폐지공장으로 직행하는 부수가 아예 없다고 가정해도 예비부수나 판촉 부수를 감안했을 때 유가율은 80%대가 현실적인 최대치”라고 말했다. 이어 “ABC협회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납득 할 수 없는 조사결과를 내놓으며 광고주들 사이에서 지표의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로부터 분기별 부수 결과를 보고 받고, 30여 곳 이하의 표본지국을 조사해 본사가 주장하는 부수와의 성실률(격차)을 따져 부수를 인증하는 공사기구다. ABC협회 내부 관계자들은 진정서에서 “최근 2~3년간 신문사의 (표본)교체지국과 교체지국 수, 교체 사유에 대해 공사원이 전혀 인지하지 못해 의도적 부수 왜곡이 가능한 상황”이며 “ABC공사원이 신문사 직원보다 공사 일정을 늦게 인식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또 “한 신문사의 경우 (공사 이후) 8건의 보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조원이 알지 못하게 공사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ABC협회 내부 관계자들은 “적합한 역량과 적격성을 갖춘 공사원이 업무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수 공사에 배정되고 적합한 역량과 적격성이 떨어지는 공사원이 업무 중요도가 높은 부수 공사에 배정돼 결과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고도 주장하며 이번 부정행위 조사요구가 “독립성을 훼손하고 협회를 불투명하게 운영해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협회장의 독단과 전횡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준 한국ABC협회장. ⓒ연합뉴스
▲이성준 한국ABC협회장. ⓒ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ABC협회의 한 내부 관계자는 “이성준 회장이 ‘우리는 신문사를 주인으로 모시는 조직’이라는 마인드를 강조했다. 우리는 하인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부수에 관여하며 전횡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며 “모 신문사와 관련해 회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왜 이 신문사 부수를 이렇게 적게 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BC협회는 수입 대부분을 신문사 회비에 의존하고 있어 신문업계 입김이 불가피하다. 

이 관계자는 “(조선일보처럼) 발행 부수의 96%를 유료부수로 판매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있을 수 없다. 신문사들이 경영 차원에서 발행 부수를 줄였는데 유료부수가 줄지 않으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했으며 “과거 회장들은 (공정한 부수 공사를 위한) 방패막이였지만, 이 회장은 오히려 신문사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전한 긴장관계를 형성해야 할 신문사와 ABC협회가, 일종의 갑을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번 진정서는 이성준 회장이 2014년 말 이래 현재까지 회장직을 유지하며 앞으로도 상근 고문으로 지속적인 ABC협회 관여 의사를 밝히면서 더는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과 관계자는 “진정서를 접수했으며 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ABC협회 유료부수 공사결과는 세금으로 집행하는 정부광고비의 신문사별 단가를 결정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어서, 이를 왜곡시키는 행위는 정부도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이성준 ABC협회장은 10일 통화에서 “회원사가 주인인 건 당연하다”고 답했으며 조선일보처럼 높은 유가율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의에는 “11일 긴급 이사회로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답했다. 이어 “이곳은 내가 협박하고 압력 넣어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나는 도덕적으로 한 톨의 흠결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사 내용도 내가 알 수가 없다”며 진정서의 주장을 부인했다. ABC협회는 “반듯한 부수공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수 공사는 제3자가 개입할 수 없는 공사절차와 수칙이 있다. 표본지국은 3년 단위로 교체하며 모든 조사는 통계학에 근거해 실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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