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인생을 부정당한 기분입니다.” MBC ‘보도국 작가’였던 이지은(가명)씨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말했다. 이씨는 만 9년을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도 원고를 써오다 지난 6월 계약이 중도 해지됐다. 갑자기 왜 자르냐는 말에 돌아온 답은 ‘인적 쇄신’. 10년 간 수십 번의 개편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일해 온 그였다.

이씨가 더 억울한 건 “거짓말 때문”이다. 계약상 프리랜서인 이씨는 회사 내에서 부당해고를 호소할 방법이 없었다. “다신 작가 일을 할 수 없을 지 모른다”는 각오와 함께 노무사를 찾았다. 지난 8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자신의 부당해고를 구제해달라고 신청했다. 결과는 ‘각하’였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회사가 실제와 180도 다르게 말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지은(가명) 작가 근무 모습.
▲이지은(가명) 작가 근무 모습.

“뉴스프로그램 작가가 자율·독립적으로 일했다고요?”

이씨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 ‘뉴스투데이’ 작가였다. 오전 6시~7시40분 동안 3부로 진행되는 방송이다. 이씨는 여기서 해외 소식을 전하는 ‘이 시각 세계’ 코너를 맡았다. 2·3부마다 국제 뉴스 단신 3~5개씩을 각 2분~2분30초 동안 방영한 코너다. 총 5분 가량의 원고를 이씨가 쓰면 리포터가 생방송에서 읽었다.

명칭은 ‘작가’지만 업무는 보통의 구성작가와는 달랐다. 이씨는 ‘보도 인력’이었다. 주요 현안을 검색한 후 아이템을 선별해, 이를 요약된 방송보도용 원고로 정리했다. 데스크는 아이템을 점검하고 원고를 첨삭했다. 단신도 기사이므로, 이씨의 원고 작성은 기자들의 보도 메커니즘과 유사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지난 6월26일 ‘이 시각 세계’는 총 8개 단신을 전했다. 2부에 5꼭지, 3부에 3꼭지다. 이씨는 프랑스 에펠탑이 석 달 만에 재개장한 소식,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에서 49명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돼 군 병력이 투입된 사실, 브라질이 대규모 메뚜기떼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소식 등을 꼽았다.

MBC는 이를 두고 지노위에 “이씨는 별도 협의 없이 독자로 위탁업무(원고작성) 수행이 가능한 프리랜서”라고 밝혔다. 이씨가 가장 억울한 지점이다. “차장, 부장, 부국장의 지휘·감독이 없었다고요? 어떤 아이템을 보도할지, 원고는 어떻게 쓸지, 전반을 결정한 권한이 작가에게 있다고요? 바로 뒤에 앉은 차장이 수시로 ‘작가님 이거 빼세요, 이거 넣으세요’ 한 말은 다 뭔가요? ‘작가님 이리 와보세요’라는 말에 부장, 부국장 자리로 후다닥 뛰어가 지시를 들었는데, 그들은 다 누구인가요?”

▲이씨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날인 지난 6월26일자 '뉴스투데이' 이 시각 세계 코너 도입부 갈무리.
▲이씨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날인 지난 6월26일자 '뉴스투데이' 이 시각 세계 코너 도입부 갈무리.
▲이씨는 편집자가 신속히 영상 가편집 등을 할 수 있게 원고를 1~2분 단위로 계속 업데이트하며 송고했다. 차장이 이 원고를 지켜보면서 수정을 지시했다.
▲이씨는 편집자가 신속히 영상 가편집 등을 할 수 있게 원고를 1~2분 단위로 계속 업데이트하며 송고했다. 차장이 이 원고를 지켜보면서 수정을 지시했다.

10년 간 수원-서울 3시간 거리 오가며 새벽 출근

이씨는 매일 새벽 1시30분 일어났다. 생방송 시간에 맞춰 원고를 쓰려면 적어도 2시 전에 기상해야 했다. 그의 집이 있는 수원과 서울 상암동은 차로 1시간 넘게 걸렸다. 3시40분께 도착하면 방송이 끝나는 7시50분까지 일했다. 매일 고정된 자리에서 고정된 시간 동안 같은 업무를 했다.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면 커피 한 잔 하거나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이씨는 보도국 정규직 기자들의 긴밀한 지휘 아래 일했다고 밝혔다.

“출근 후 1시간~1시간30분 정도 아이템을 찾는다. 기사 제휴를 맺은 CNN, AP, 로이터 등의 영상과 연합뉴스, 종합일간지 국제면 등을 훑어 아이템을 고른 후 A4 1~2장 분량으로 정리한다. 새벽 5시30분 차장(기자)에게 보고한다. 차장이 보도할 아이템을 꼽고, 보도 순서도 지정한다. 빠진 아이템이 있으면 추가를, 보도가치가 덜한 아이템은 삭제도 지시한다. 차장이 말한 순서대로 제작 PD가 큐시트를 작성한다.

직후 정신없는 원고 작성이 시작된다. 6시30분까진 원고와 영상편집이 마무리돼야 한다. 편집자가 영상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게 원고를 2~3개 문장 단위로 수시로 올린다. 20~30개 문장으로 구성된 2부 원고를 완성한 즉시 차장 자리로 가 초안을 첨삭받는다. 작가는 지적사항을 최종 반영해 송고시스템에 올린다. 차장이 출고하면 FD가 들을 수 있게 ‘출고했습니다’라고 외친다. 새벽 6시30분께다.”

2부 준비가 끝난 직후 3부 준비에 돌입했다. 3부 ‘이 시각 세계’ 방영을 30여 분 앞둔 때다. 이때는 변동사항이 많아 긴장감이 더 팽팽하다. 타사 뉴스에 인상깊은 아이템이 실리면 보도에 반영해야 했고, 갑자기 사건·사고가 터질 때도 있었다. 총기 난사, 내전 발발 등 종합 취재가 필요하지만 시급히 보도돼야 할 현안은 당장 리포트를 제작할 수 없으니 ‘이 시각 세계’ 보도로 내보냈다. 모두 이씨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닌 뉴스투데이팀 데스크가 결정했다. 그렇게 7시10분께 원고를 마감했다.

▲2011년 6월 작가 채용 합격 당시 받은 문자. 이시는 이날 새벽 4시 출근 공지를 받은 이래로 퇴사 전까지 3시30분~4시 사이 출근했다.
▲2011년 6월 작가 채용 합격 당시 받은 문자. 이시는 이날 새벽 4시 출근 공지를 받은 이래로 퇴사 전까지 3시30분~4시 사이 출근했다. MBC는 이와 관련 지노위에서 '출근시각 지시가 아니라, 향후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계약 첫날 안내할 사항들이 있어 미팅을 요청한 것'이라 반박했다.
▲이씨가 사용했던 MBC 상암사옥 7층 자리 사진.
▲이씨가 사용했던 MBC 상암사옥 7층 자리 사진.

퇴근 시간은 7시50분 전후로 일정했다. 방송이 끝나는 때다. 코너 시작 직전까지 아이템 순서 변경 등의 지시가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코너 방송사고 여부를 확인하는 일도 업무였다. 이씨는 업무 내내 기자들이 쓰는 기사작성·송고 시스템 ‘MARS’를 같이 썼다.

이렇게 일한 햇수가 10년이다. 이씨는 2011년 6월 한 커뮤니티의 구인 게시판에서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실기시험과 면접을 보고 채용됐다. 주 5일 일했던 이 작가는 2017년부턴 토요일 ‘이 시각 세계’까지 맡아 주 6일 일했다. 프리랜서로 분류된 그는 휴가를 가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오래 일한 이유는 일이 좋아서다. 자신이 적은 원고가 매일 아침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위장 프리랜서 = 쉬운 해고”

그런 이씨는 “다음 달까지 일해야겠다. 프로그램 개편이 있다”는 MBC 측 전화 한 통으로 계약이 끝났다. 계약상 계약 기간도 1년이었지만 이마저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해지됐다. 이씨는 ‘업무 위임 계약서’라는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 “갑이나 을의 의사표시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개편 등 방송사 일방 사정으로 인한 해지 시 마지막 방송 2주 전 구두나 서면으로 통보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1달 전 구두 통보한 MBC는 계약을 준수했다.

이씨는 프리랜서일 뿐일까. 이씨는 자신을 “위장된 프리랜서”라 주장하고, MBC는 “독립적인 자유계약자”라 반박한다. MBC는 “코너 대본 작성, 자료 조사로 한정된 업무 구조상 업무내용이 MBC에 의해 일방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도 없었다. 아이템도 PD가 주도하는 방송 특성상 PD와 논의해 최종 선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지노위에 밝혔다.

MBC는 또 업무 시간·장소가 고정된 데 대해 “이씨가 업무수행에 적합한 시간을 스스로 판단했을 뿐 출근시간을 지시한 적 없고, 사무실에 나온 이유도 회사 망을 통해 주요 외신을 보는 게 효율적인데다 저작권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라고 반박했다. 이씨 원고 검토엔 1~3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기사 데스킹과 달랐다거나 월급이 아닌 회당 보수를 용역 대가로 지급했다고 강조했다.

MBC는 근본적으로 이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지노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지노위도 같은 논리로 이씨 신청을 각하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은 먼저 신청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따지는데 근로자가 아닐 경우 ‘각하’로 끝난다. 근로자로 인정이 돼야 비로소 해고가 부당한지 정당한지를 검토한다.

“‘작가님, 알고 서명한 거 아니에요?’ ‘프리랜서라고 인정하신 거 아니에요?’ 심문 당시 지노위원이 묻더라. ‘그거 싸인 안하면 나가야 하는데요? 물어본 당신은 좁은 업계에서 퇴출될 거 각오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나요?’ 이게 위장된 프리랜서들이 줄 수 있는 답이다. 세상에 누가 계약할 때 ‘이 일은 프리랜서를 쓸 게 아니라 직원을 뽑아서 시킬 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이씨는 지노위원들이 갑을 관계에 대한 감수성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근태를 스스로 관리했다는 MBC 주장에 이씨는 일화 하나를 꺼냈다. 2019년 5월20일의 자동차 충돌 사고다. 이씨는 새벽 3시 출근길인 의왕-과천 고속도로에서 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입었다. 이씨는 “소방차도 출동해 나를 병원에 후송하려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출근을 먼저 했다. 생방송 원고에 차질을 빚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내 일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신속히 소통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 업무는 원래 국제부 야근 기자들이 교대로 맡았던 일이다. 2011년부터 ‘프리랜서’ 이씨를 뽑아 인력을 대체했다. 이씨는 그마저도 주먹구구식이었다며 “2011년 프리랜서 계약서를 1번 쓰고 6년간 쓰지 않다가 방송계 비정규직이 사회적 이슈가 된 2017년 1년 단위 프리랜서 계약서를 꼬박꼬박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누군가는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섰지만 같이 일했던 이들도, 사회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누구 하나 고공에 오르거나 죽어야 귀 기울여 준다는 말이 비로소 체감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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