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부당해고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를 두고 사측이 3개월 넘게 “사망 책임 통감” 문구 적시를 거부해 합의 위반이란 지적이 나온다. 3달 전 청주방송, 언론노조, 유족, 시민사회계(이하 4자 대표)가 타결한 사회적 합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청주방송은 지난 22일까지 4자 대표 합의로 약속된 강제조정 결정문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음날 23일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내달 15일까지 회사 입장을 낸다’고 밝혔다. 22일은 이 사건 진상조사위가 ‘항소심을 법원 강제조정으로 마무리한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청주방송에 통보한 기한이다.  

지난 7월22일 합의 당시 4자 대표는 강제조정 문구까지 확약했다. “청주방송은 고 이재학이 근로자 지위에 있고 청주방송으로부터 부당해고된 사실을 인정하며, 이재학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유족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이다. 즉 법적 절차만 거치면 될 과제였으나 3달 넘도록 이행되지 않았다. 이에 지난 14일 첫 이행점검에 나선 진상조사위가 날짜를 지정해 이행을 권고했다.

지연 이유는 청주방송 입장 변화다. 9월께부터 사측이 ‘이재학 사망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 수정을 유족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합의 번복이었다. 결국 청주방송이 법원에 이의신청을 내면서 타결될 것으로 보였던 조정이 9월24일 불발됐다. 이후 상황 변동없이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 

▲지난 10월5일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원회가 4자 대표 합의를 훼손하는 이두영 이사회 의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청주방송 앞에서 열었다. 사진=대책위 제공.
▲지난 10월5일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원회가 4자 대표 합의를 훼손하는 이두영 이사회 의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청주방송 앞에서 열었다. 사진=대책위 제공.

PD 사망 사태 수습 중에 주주들은 배당금 잔치

사태 배경으로는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이 지목된다. 이 회장이 현 경영진에게 ‘사망 책임 통감 문구를 삭제해오라고 요구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결정권이 이사회, 그중에서도 이두영 회장에게 있어서 경영진이 결정한 사안도 이 회장이 거부하면 수포로 돌아가는 식이다. 

이 회장 지배력은 최근 그의 급여에서도 확인됐다. ‘충북인뉴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청주방송에서 매달 1300~1600만원을 대표이사 급여로 받았다. 지난 3월 사건 책임을 진다며 ‘대표이사 회장’을 사퇴한 후에도 9월까지 매달 1300만원이나 1600만원을 받았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언론에 “청주방송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이사회 의장”이라고 밝혀 왔다. 

언론노조 청주방송지부에 따르면 올해 6억원 가량이 주주에게 배당됐고 이는 직원들 모르게 진행됐다. 이 회장은 두진건설 지분을 포함해 약 36.22%를 보유하고 있는데 지분율을 따지면 배당금은 2억원 정도다. 

▲이두영 청주방송 전 회장(두진건설 회장). 사진=노컷뉴스
▲이두영 청주방송 전 회장(두진건설 회장). 사진=노컷뉴스

한 청주방송 등기이사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경영진을 포함해 회사 입장은 바뀐 적 없다. ‘도의적 책임은 지되 법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견지했다. 구체적 조정결정문안은 모르지만 이 연장선에서 이의신청을 냈을 것”이라며 “이사회에서 상황을 번복시켰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 이사는 이어 “이 PD 근로자지위는 이미 1심에서 패소로 판결이 났고, 2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도 했다. 4자 대표 합의로 구성된 진상조사위는 2개월 조사 결과 이 PD 노동자성을 규명했다. 이 PD 노동자성은 청주방송이 보유한 2017년 ‘비정규직 실태 진단 및 인사규정 정비 컨설팅’ 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이를 부정하는 말이 청주방송 이사진에서 나왔다. 

4자 합의를 이룬 경영진이 고립된 상황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성덕 대표이사의 임기는 오는 3월까지다. 연임 여부는 이사회가 정한다. 상황을 지켜본 한 청주방송 직원 A씨는 “이사회는 이두영 회장의 거수기다. 현 사장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모든 걸 무위로 돌릴 가능성도 있다”며 “모든 조직이 그렇듯 일부 임직원들은 이 회장 눈 밖에 나지 않으려거나 자기 자리 욕심으로 합의 정신을 지키려는 이들을 배척할 것이다. 이두영 회장 권력이 있는 한”이라 평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이 PD 사망에 영향을 준 직원들이 진상규명에 협조한 직원들을 괘씸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전했다. 진상조사 결과 가해자로 지목된 C직원이 회사에서 관련 사건을 진술한 D직원에게 ‘XXX’라며 욕설을 퍼부은 사례를 들었다. D직원이 다른 부서로 발령나자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2명이 바로 사장실을 찾아가 인사이동을 따지기도 했다. 

▲7월28일 마련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7월28일 마련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이재학 사망 9개월 째, 가해자 처벌 미완

청주방송 합의 이행은 계속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 고용 구조 및 처우 개선에 가장 많은 직원이 투입됐다. 지난 7월28일부터 전담인력 4명을 배치해 조연출, 작가 등 프리랜서와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 조건을 조사하고 의견을 청취 중이다. 

불공정 조항을 없앤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타 방송사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프리랜서 임금 조정도 논의 중이다. 직군별로 업무환경이 상이한 데서 벌어지는 갈등도 있어 처우 개선 조화를 맞추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이 PD 사망에 영향을 줬다고 조사된 4명 중 1명은 징계해고됐다. 나머지 3명 중 한 명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지난 23일부터 열려 진행 중이다. 이 직원 징계 절차가 끝나면 나머지 2명 징계 절차가 시작된다. 

문제는 ‘항소심 마무리’다. 청주방송이 확약된 조정결정문을 끝까지 거부하면 유족이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예정된 민·형사상 대응에 돌입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항소심 마무리는 4자 대표가 합의한 이행 과제 가운데 핵심이다. 이 PD는 전국 방송계의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겪는 부당 대우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18년 8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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