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피해 배상 책임을 최대 5배까지 지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언론계가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지난 9월 말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달 9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토론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를 열고, 징벌적 손배제가 가져올 파장을 경고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이날 발제문을 통해 “징벌적 손배제가 거론된 배경에는 언론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며 “국민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에 기자들은 ‘검증 없는 받아쓰기’, ‘언론 정파성’을 가장 많이 꼽는다”고 밝혔다. 기자들 스스로도 언론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 그러나 김 회장은 ‘징벌적 손배제를 찬성하면 개혁, 반대하면 반개혁’이라는 프레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토론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를 열고, 징벌적 손배제가 가져올 파장을 경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토론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를 열고, 징벌적 손배제가 가져올 파장을 경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 회장은 먼저 기존 형사적 제재에 더해 징벌적 민사 배상 책임까지 부과하는 것은 ‘이중처벌’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는 언론 피해 구제책이 비교적 잘 돼 있다. 언론중재법이 있고, 명예훼손에 따른 각종 민형사 소송도 가능하다”며 “최근에는 기업 비판 기사를 쓴 기자의 급여를 가압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징벌적 손배제까지 시행하면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법원 판단은 공익 목적과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위법성 조각 사유를 들어 언론에 면죄부를 줬다”며 “이에 언론 피해자들 입장에선 피해만큼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징벌적 손배제라는 새 법을 만들기보다 법원이 언론 피해자에 대한 손배(양형)를 현실화한다면 징벌적 손배제 기대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고의성(악의적 가짜뉴스)뿐 아니라 중과실(선의의 오보)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했다”며 “중과실은 실수에 따른 오보까지 포함한다. 팩트 확인이 됐다고 판단해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도자료 오타가 오보로 연결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4년 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문화계 특혜 의혹을 제기한 서울경제 기자가 민형사 소송을 당해 수천만원 배상과 함께 최근 검찰로부터 징역 10월의 징역형을 구형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공익에 부합하는 기사였고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위법성 조각 사유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불과 4년 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언론은 엄청난 국민 지지를 받았다”며 “그런데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되면 기자들은 이처럼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파장이나 논란,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는 취재와 보도 행위에 쉽사리 뛰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권력감시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호소에도 기사쓰기를 망설일 수 있다”며 “사회적 약자가 언론사에 피해를 제보했지만 보도 이후 가해자 항의와 법적 대응 등이 예상될 경우 즉 징벌적 손배가 예상될 경우 기사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징벌적 손배제를 갖고 소모적 논쟁을 이어가기보다 더 큰 그림에서 언론개혁을 논의해야 한다”며 “언론개혁은 언론계 자정, 법과 제도 개선, 시민 대응 지원 등 삼박자가 이뤄져야 완성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언론계 자성과 성찰, 자정운동 및 자율적 규제가 요구되고 언론 보도가 개선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테면 △언론사 윤리 강령 강화 및 엄밀한 적용 △언론사 자체 팩트체크 강화 △알고리즘 변경 등 기술적 조치 △적극적인 정정·반론 보도 △명확한 출처 표기 등이다. 

또 다른 발제자인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한 개인 거짓말이나 가짜뉴스의 경우 이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또 언론과 개인에 의한 표현이나 정보 가치 및 해악성 유무는 국가에 의해 1차적으로 재단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지 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규제는 선진국 수준에 비춰 매우 강하다”며 “가짜뉴스 퇴출 문제는 (비록 신속한 해결은 되지 못해도) 더 이상 새 법을 창출함으로써 강제해서는 안 된다. 집단지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석형 언론중재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선진국의 경우 언론 분쟁에서 악의적 표현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있다”며 “세계적 추세에 따라 점진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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