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지역방송의 존립에 영향을 미칠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자들은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 ‘결합판매’라는 용어와 제도를 창안했다. 관련 법률 제2호 제11호에 명료하게 정의를 해 둔 법적인 용어다. 이 법률은 방송광고판매대행자와 방송통신위원회에 ‘결합판매’와 관한 의무를 구체적으로 부여했다. 그럼에도 사용하기 어렵지도 않은 법률용어로서 ‘결합판매’를 굳이 ‘끼워팔기’라는 용어로 대체하며 딴죽을 거는 학자와 업계종사자들이 많다. 제정 법률의 잉크가 마르기전부터 해당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목청을 높여온 사람들이다. 헌법이 보장한 광고주들의 영업의 자유가 ‘결합판매’로 인해 침해되었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가 방송의 공익성과 방송광고의 공공성, 사업자들의 영업의 자유 등을 총체적으로 저울질한 뒤 합헌성의 범주 안에서 기본권 조화의 한 양식으로 제안한 방식의 하나가 ‘결합판매’다. 서울에 기반을 둔 방송사업자가 광고로부터 얻는 수익을 독식해야 한다고 믿는 ‘토종 서울시민 학자들’, 지역에 발을 걸치고 있으나 이미 ‘정신적 서울시민’이 돼 버린 지 오래인 지역 학자들의 머릿속에 지역민들이 응당 자기 지역의 뉴스를 볼 권리가 있다는 것은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물리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자원배분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하는 서울시민들로서 그런 생각을 한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필자가 보기에 정작 뼈아픈 사실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지역의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 지역방송을 이끌어가는 경영진조차 지역관점의 지역뉴스를 홀대하는 분위기 자체다. 재원이 부족하다는 둥 그럴듯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 방송. 사진=gettyimagesbank
▲ 방송. 사진=gettyimagesbank

지역방송의 생존을 위해서는 법과 정책의 개선만으로 부족하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지역방송 내부의 성찰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정책의 부실을 지적해야 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지역방송 위기를 부르대 왔다는 점에서 그동안 지역방송이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역방송 성찰 운운한 필자의 말이 서운하다면, 더 이상 이 칼럼을 읽을 이유는 없다. 필자도 지역방송 종사자들이 듣기에 귀가 행복한 이야기나 풀어놓자고 이 칼럼을 쓰고 있지 않다. 원론으로 돌아가자. 지역방송은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 비록 외면을 받더라도 여전히 지역민들에게 공급할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존립이 필요한가. 서울 소재 방송사의 인사 적체를 해소할 방편이나 서울제작 프로그램의 중계 송신 거점으로 작동해 주어야 할 기능 때문에 지역방송은 존속되어야 하는가.

조금 바뀌어서는 바꾸지 못한다. 확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바뀌는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일시적으로 당장의 수입이 줄어들 수는 있다. 오래전부터 울린 위기 경보음을 무시했기 때문에 떼어 내기 버거워진 굳은살 때문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지역뉴스 관점’에 대해 짚어보자.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도래는 지역방송에게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언론이 지역정부의 대외 홍보용 보도 자료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베껴서 보도할 때 지역 언론의 가치는 하락한다. 지역 언론보다 지역정부의 홈페이지에 더 유용한 생활정보가 가득하고 시민들은 지자체의 인터넷 공간에서 언론에 다루어지기 전의 각종 보도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광고홍보비를 이유로 지자체의 보도자료 관점을 따라, 보도 자료의 내용을 단순 전달하는 데 머무른다면 도대체 지역 언론이 왜 필요한가? 직거래 상품처럼 홍보용 정보 역시 지자체와 시민들 양쪽 모두에게 직거래가 더 편하고 빠를 수 있다.

영상시대에 지역방송의 뉴스보도 위기는 더욱 엄혹하다. 지역정부가 촬영해서 제공한 철저하게 지역정부의 관점을 반영한 영상들이 지역방송의 뉴스프로그램을 통해 송출되는 일들이 빈번해 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정부와 지역의 공공기관, 지역의 여러 기업들은 자체 SNS를 통해 길고 짧은 홍보영상을 수시로 공유하고 있다. 유용한 정보를 재미있게 만들어 공급한 까닭에 홍보효과도 높다. 지자체가 제공한 보도자료, 보도영상을 ‘관점’ 없이 전달하는 지역방송과 견줄 때 지자체 유투브 채널들의 파급효과와 전파 속도의 경쟁력은 결코 작지 않다. 지자체 등이 제공하는 일부 광고홍보비의 단맛에 취해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철저히 지역민들의 관점에서 취재하고 가공한 지역뉴스 생산을 포기해 온 대가다.

▲ 방송 이미지. 사진=gettyimagesbank
▲ 방송 이미지. 사진=gettyimagesbank

그렇다고 지역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광고재원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자체 광고홍보예산은 지역 언론의 비판기능을 압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투명한 배분을 이끌어 내야 한다. 법과 정책적 접근이다. 또 지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지역 언론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비중을 높여가는 노력도 해야 한다. 법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는 그것대로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다른 한편, 당장의 광고재원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지역정부와 지역의 공적기관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포기하면 안 된다. 지자체 홍보 관점의 보도 자료를 단순히 중계하는 지역의 방송뉴스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투브 홍보영상 채널에 비교우위의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그럴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상당하다.

관점이 있는 지역뉴스를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다. 지역방송이 존립할 수 있고, 존립해야 할 기반은 바로 ‘관점 있는 지역뉴스’다. 지역정부가 제공하는 보도 자료와 광고홍보비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보도 자료와 지역정부의 재원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보도 자료는 뉴스 생산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지역정부의 광고홍보비는 매체로서의 기능에 맞추어 체계적이고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지역방송은 지역정부의 홍보기능보다 지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하는 지역 뉴스를 생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지역정부의 광고홍보비를 잃을 수 있으나 지역 방송 존립의 당위성을 얻어내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지역관점의 뉴스 생산이다. 당장은 고통이 배가되겠지만, 그 선택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해보고 싶더라도 해 볼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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