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저평가됐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20일 내놨다. 국회가 감사를 요구한 지 만 1년 1일 만, 법정 감사 시간인 2월을 8개월 넘겨서다. 하지만 감사원은 조기폐쇄 결정 자체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종합 판단은 아니라고 밝혔다.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해 고려한 폐쇄 결정 과정에서와 달리 경제성 평가만 살폈기에 종합적 판단은 유보했다는 설명이다.

21일 다수 신문은 감사 결과가 경제성만 따진 ‘반쪽’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감사 결과 가운데 산업부가 감사를 앞두고 자료를 삭제했다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으며 폐쇄 결정 자체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문제 제기했다. 신문들은 감사 결과의 파장 가운데 여야 정치권의 입장 차에 의미를 두고 보도하면서, 어정쩡한 결론 탓에 논란이 불가피하게 이어지게 됐다고 했다.

다음은 21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알맹이 빠진 월성 1호기 감사…정부 ‘탈원전’ 유지”
국민일보 “1년 끌던 월성1호기 감사 ‘절충식 반쪽결론’”
동아일보 “원전 감사 막으려 444개 문건 삭제”
서울신문 “‘경제성만 따졌다…월성1호기 ’반쪽 감사‘”
세계일보 “‘월성1호기 경제성 저평가’… 폐쇄 판단은 유보”
조선일보 “감사 전날밤, 원전 자료 444개 지웠다”
중앙일보 “백운규 원전 위법부른 문 대통령 한마디”
한겨레 “탈원전 정쟁만 남긴 월성1호기 감사”
한국일보 “‘월성1호기 논란’ 마침표 못 찍은 감사원”

경제성 불합리, 종합 판단 미뤄… “출발부터 한계 품은 감사”

월성 1호기는 1983년 준공돼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원전이다. 2012년 설계수명(30년)이 만료되면서 가동을 중단했다가 개보수 비용 7000억원을 들여 설계수명이 10년 연장됐지만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성과 안전성, 지역수용도를 종합 평가해 2018년 조기 폐쇄됐다. 그러나 보수야당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위해 월성 원전을 조기 폐쇄하면서 경제성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다”고 비판해 감사 논의가 촉발됐다.

감사원은 우선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삼덕회계법인에 용역을 맡긴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판매단가는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한편 비용을 높게 책정했다고 봤다. 전년도(2017년) 판매 단가를 적용하는 대신 전망단가를 추정하면서 지나치게 낮게 예측됐음에도 한수원이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원전 문제의 핵심인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문제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해, 조기 폐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21일 한국일보 1면 인포그래픽
▲21일 한국일보 1면 인포그래픽
▲21일 경향신문 2면
▲21일 경향신문 2면

감사원은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도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 등이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백 장관이 경제성 평가가 나오기 전에 ‘조기 폐쇄’ 방침을 정하고, 한수원에 조기 폐쇄 이외의 다른 방안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018년 퇴직한 백 전 장관의 재취업이나 포상에 제한을 가하고, 자료 삭제를 지시한 산업부 국장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수원 이사들의 배임죄 적용은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서 “경제성에 한정된 평가, 평가 결과와 조기 폐쇄의 연관성을 밝히지 못한 감사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감사원이 한수원에 조기 폐쇄 이외 방안은 고려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는 점을 제시한 뒤 “하지만 당시 계속가동은 택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고 했다. 월성 1호기는 2017년 5월 콘크리트 부벽에서 결함이 발견돼 운영 정지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경향은 감사원이 백 전 장관을 검찰 고발하지 않은 이유도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문들은 감사가 출발부터 한계를 품고 있었다고 총평했다. 보수야당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조기 폐쇄의 경제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촉발된 탓에, 감사 대상에 경제성만 포함됐고 “이 때문에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21일 서울신문 1면 머리기사
▲21일 서울신문 1면 머리기사

서울신문은 감사원이 감사를 둘러싼 논란을 피해가려는 의도로 원전 조기 폐쇄의 타당성 자체를 판단하지 않았다고 봤다. 감사원은 ‘직무 감찰 규칙에 정부 정책 결정과 목적의 옳고 그름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당초 감사원이 법정 감사 시한은 8개월이나 넘긴 원인 자체가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와 탈원전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감사위원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1면에서 “애초 경제적 타당성에 초점을 맞춘 이번 감사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지지 여부와 최재형 감사원장의 발언을 둘러싼 치열한 진영 싸움으로 번진 것은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는 작업이 그만큼 어려운 과제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결정적 한방이 없었다”면서도 “다만 감사원 감사 결과는 월성 1호기 즉시 조기폐쇄 결정에 흠결이 일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줬다”며 “때문에 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탈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여권 입장에서는 향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고 평했다.

▲21일 한국일보 3면
▲21일 한국일보 3면

조선일보 “한수원 증거인멸로 엘리트 범죄”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가 착수되자 관련 증거 자료와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 등 444개의 파일을 조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복구 불능 상태로 증거인멸”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산업부는 대안 검토 등 중간 절차를 건너뛰고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조기 폐쇄를 밀고 나갔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면서 감사원이 문제를 파악하고도 폐쇄 자체에 결론을 흐렸다며 다른 신문들과 반대편에서 감사원을 비판했다.

▲21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21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조선일보는 감사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 보좌관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고 물은 뒤 폐쇄 결정이 급물살을 탔다는 점을 기사 앞머리에 강조한 뒤 감사원의 보도자료에서 밝힌 주요 감사 결과를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백운규 원전 위법 부른 문 대통령 한마디”란 제목을 붙이고 3면에는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가 어떻게 달라졌고, 조기 폐쇄 결정이 이뤄진 과정은 어땠는지 인포그래픽을 제작했다. 동아일보도 1면 머리기사와 2면에 ‘444개 자료 삭제’를 주요 감사 결과 내용으로 소개했다.

▲21일 중앙일보 3면 인포그래픽
▲21일 중앙일보 3면 인포그래픽
▲21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21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중립감사 위반’ 논란 최재형 감사원장에 중앙일보 “대권주자감”

한편 신문들은 1년여의 감사 과정에서 정치권의 논란 중심에 섰던 최재형 감사원장에도 주목했다. 최 원장 관련 논란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 9, 10, 13일 감사위원회가 열렸지만 심의가 의결되지 않고, 최 원장은 총선 전날 이례적으로 나흘간 휴가를 냈다. 경향신문은 최 원장이 그 무렵 직원들에게 ‘외부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고 한 발언도 입길에 오르내렸다고 했다.

▲21일 서울신문 2면
▲21일 서울신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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