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힘드냐?” “그게 뭐가 힘들어?” “멀쩡해 보이는데” “먹고 살 걱정 없어서 그런 거야.” ‘우울증’이란 말에 따라 붙는 흔한 반응들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진단 사실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울증은 내과·외과 질환과 같은 병이고 원인과 증상이 다양해 겉모습만 보고 획일적으로 단언할 수 없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강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15일 발간된 ‘나의 F코드 이야기’(출판사 심심)는 반가운 안내서다. F코드는 정신·행동 장애를 나타내는 질병분류기호다. 우울증에 걸린 한 30대 직장인이 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자신의 관리법, 소소한 치료 정보까지 자기 경험담을 290여 쪽에 상세히 풀어냈다. 지은이는 주간경향의 이하늬 기자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하늬 주간경향 기자. 사진=이하늬 기자 제공.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하늬 주간경향 기자. 사진=이하늬 기자 제공.

 

2013년 기자가 된 그는 일을 시작한 지 3여년 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1장 ‘우울증에 걸리면서 알게 된 것들’에서 이 기자는 “그때 정신과에 갔어야 했다”며 “2016년 4월, 식욕이 확 떨어졌고 잠도 잘 못 잤다”는 회상으로 책을 시작했다. 이 기자는 폭식, 조기 각성, 잦은 눈물, 집중력·기억력 저하, 깊은 자책과 무기력감 등을 겼었다.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을 돌보고 있다. 

이 기자는 자기 경험담을 통해 사회가 우울증에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지 드러냈다. ‘정신과를 갈 때 고려할 점’이나 ‘나에게 맞는 상담소 찾는 법’, ‘나아지고 있음을 자각하는 법’ 등 유익한 정보도 책 곳곳에 적어놨다. 우울증은 완치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심장병, 고혈압, 당뇨도 완치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라며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요인의 복합 작용을 보건대 정신이 100% 건강한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관리하면서 산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책에서 “나는 만성 우울증”이라며 “우울에 불안, 약간의 강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업무에 지장이 갈까,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우울증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심리 질환을 겪으면 ‘약하다’거나 ‘기자 자질이 부족하다’고 보는 편견마저 팽배하다. 

경험을 드러내기 어렵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편견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 기자는 또 “처음엔 SNS를 통해 공개했고 브런치에 글도 썼다. 쉽진 않았지만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며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모두 일상 생활을 못하지 않는다. (정도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고, 업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내 기사를 못 믿는다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의 잘못이지 내 탓이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15일 출판사 심심이 발간한 '나의 F코드 이야기' 책.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5일 출판사 심심이 발간한 '나의 F코드 이야기' 책. 사진=손가영 기자.

 

기자 정체성을 강조한 책은 아니지만 언론계에 주는 함의도 있다. 우선 ‘기자사회’ 특징이 우울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끊임없는 경쟁, 비교, 평가, 과로 등이 요인이다. 또 매일 결과물을 내야 하다보니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나타나는 자기비판이 자괴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취재원과 관계를 다지는 데서 느끼는 중압감이나 업무와 일상이 구분되지 않는 데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칭찬, 인정, 평가가 매우 쉽게 끼어들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한다. 기사가 될 만한 사건은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매일 경쟁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좋은 기사, 평범한 기사, 나쁜 기사가 생산된다. 어떤 방향으로 취재할 것인지부터가 경쟁의 시작이다. 얼마나 빠르게 기사를 완성하는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경쟁 노동의 성과물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노출된다.”(109쪽)

이 기자는 ‘외부 자극’도 언급했다. 기자들은 살인사건, 사망 사고, 참사 현장 등을 취재하면서 참혹함에 충격받고 피해자 감정에 이입한다. 이 기자는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야 하는 기자들은 사망자 모습이 어떤지, 살해 방법은 어땠는지를 취재하지만 기사엔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자들 머릿속엔 남는다”며 자신도 2014년 진도 팽목항의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받은 충격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언론계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고 했다. 동료 기자들 사례를 종합하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 질환을 호소했을 때 충분히 쉴 수 있게 배려해주는 회사가 늘었고, 기자들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이 기자는 “내 주변만 해도 업무상 이유로 정신과 병원과 상담소를 찾는 기자들이 많다”며 “이 가운데엔 회사에 사실을 숨기고 혼자 치료받는 기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거창한 뜻은 없다. 사람들이 우울증과 정신 질환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기자가 책을 펴낸 동기다. 이 기자도 정신 장애 관련 공부 모임에 참석하며 꾸준히 공부 중이다. 그는 “꾸준히 취재하고 싶은 분야다. 당장은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지를 취재해 기사로 다루고 싶다”며 “나도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관련 공부를 하면서 얼마나 왜곡된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를 보도로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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