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피해액이 1조(兆)6000억원에 달하는 라임자산운용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이 라임의 배후 ‘전주(錢主)’인 김봉현(구속)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혐의를 받는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권(與圈)의 전·현직 정치인 4명에 대해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라임 사태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본격 제기됐다.

조선일보 보도는 수천만 원의 돈과 ‘고가의 양복’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기동민 의원을 제목에 이름을 명시하면서 “로비 의혹을 받는 여권 출신 정치인 3명도 함께 소환해 금품 수수 및 로비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는 게 핵심이었다.

기 의원은 이미 지난 5~6월부터 ‘고가의 양복’ 수수 장본인으로 언론 보도에서 이름이 오르내렸다. 기 의원은 과거 언론에 “4년 전 김 전 회장을 만났고 당선 축하 인사로 양복 선물을 받은 것도 맞다”고 했지만 고가의 양복에 대한 대가성과 금품 수수를 부인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조선일보 보도에서 새로운 사실은 기 의원이 출두를 미뤄온 점, 그리고 추가로 “더불어민주당 다선(多選) 출신으로 지난 4월 총선에서 낙선한 K 전 의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초선 L 의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지낸 K씨” 등이 검찰로부터 출석 조사 요구를 받았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보도가 정면 겨냥한 것은 이름을 공개한 기동민 의원 뒤에 붙었던 “여권 4명”에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는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품 수수 및 로비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라임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진 뒤 금융 당국 조사를 피하기 위해 여권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한다” 등 검찰 소환 등 수사의 진척 사항에 대해선 확신을 못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 이후 다른 언론이 여권 인사들의 소환 통보 소식을 잇따라 전하면서 라임사태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날인 8일 조선일보는 한발 나아가 전날까지 익명 처리했던 고위 인사의 이름 하나를 공개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8일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내용을 기사화했다.

조선일보가 혐의 확정 전 ‘강기정’이라는 이름을 김 전 회장 진술을 인용보도해 폭로한 것은 청와대 연루 가능성에 초점을 옮겨가고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강기정 정무수석은 주말을 건너뛰고 12일 서울남부지검을 찾아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5천만원을 받다니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수세적인 국면에 머물지 않고 의혹을 바로잡아 공세를 적극 차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이날 김 전 회장에 대해 위증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우선 강 전 수석은 “검찰조사 출석 요청은 받은 적이 전혀 없다”며 “정무수석 재직 중일 때도 없었고 그만둔 후 현재 두달째인데 전혀 조사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일방 법정 진술에 따라 혐의가 덧씌워졌다는 하소연이다.

▲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월12일 오전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도착,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월12일 오전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도착,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 전 수석은 다만 “제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광주MBC 사장이던 이 전 대표를 알게 됐고 그 후 2~3년 만에 연락이 와 청와대 들어오고 나서 만난 적은 있다”면서도 “당시 이 전 대표가 ‘라임과 자기 회사가 모함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해서 ‘그런 일은 되도록 빨리 금융감독기관에 검사를 받으라’고 조언한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와의 만남은 시인했지만 금품 수수에 대한 김 전 회장의 법정 진술과 강 전 수석의 발언은 180도 배치된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전화가 와서 내일 청와대 수석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개가 필요하다고 해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이 청와대에 가서 (수석을) 만나고 돌아온 뒤 연락이 왔다. 수석이란 분이 김상조 실장에게 직접 전화해 ‘억울한 면이 많은 것 같다’고 본인 앞에서 강하게 얘기해줬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 전 수석은 “라임 사태도 정무수석 업무가 아니었고, 이강세가 말한 게 라임이었는지 나중에 알았다”며 김상조 정책실장에게 ‘라임이 억울한 점이 많다’고 전화하는 등의 주장은 허위라고 주장했다.

강 전 수석은 김 전 회장의 법정 진술에 대해 허위라고 반박한 것을 넘어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이름을 최초 보도한 매체라는 점을 부각해 향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의적 보도’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기사 제목에 김 전 회장이 자신에게 직접 금품을 줬다고 오인할 수 있는 것처럼 기술한 점 등도 소송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 전 수석은 “조선일보는 김 회장의 진술을 보도하면서 따옴표 속에 ‘강기정에 5천만원 줬다’는 표현을 처음 적었는데, 이는 실제 김 회장의 진술과도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9일자 조선일보 보도 제목은 “라임전주 ‘강기정에게 5000만원 줬다’”였다.

김 전 회장의 진술은 정확히 이강세 전 대표가 강 전 수석을 만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 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현재 김 전 회장이 실제 이 전 대표에게 돈을 전달했는지, 그리고 그 돈이 강 전 수석으로까지 흘러들어갔느냐를 놓고 다투는 중인데, 이를 모두 건너뛰고 김 전 회장이 강 전 수석에게 5천만원을 줬다는 제목으로 마치 김 전 회장으로부터 자신이 돈을 직접 받은 것처럼 왜곡을 했다는 것이다.

보통 제목의 글자수 제한이라는 형식적 제약 때문에 인용 대목을 축약한 경우는 있지만 오인될 수 여지가 있는 법정 진술 내용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제목으로 쓰는 건 이례적이다. 조선일보 의도가 숨어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와 강 전 수석의 싸움은 당장 왜곡보도를 가리는 문제로 보이지만 양측이 여론전을 통해 우위를 차지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조선일보가 강 전 수석의 이름을 공개하면서까지 의혹을 제기한 것은 여권 연루 의혹에 검찰이 적극 수사에 나서도록 여론을 통해 압박한 것이다. 이에 강 전 수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검찰 수사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양측 공방이 라임사태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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