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연분홍TV ‘퀴서비스’ 제작진이 다른 유튜버들에게 들었던 피드백이다. 매번 다른 콘셉트와 형식에 장치와 그래픽, 색보정 등 만듦새를 알아보는 이들의 조언이다. 그러나 퀴서비스는 1년을 맞은 현재 당초 가늠했던 주목도를 훌쩍 넘어섰다. 첫발을 떼면서는 구독자 수 1000명과 조회수 1만명 영상 배출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현재 구독자 5000명, 조회수 1만명 넘는 영상은 10건이다. 지난 6월 퀴서비스 시즌2 제작비 1000만원 크라우드펀딩이 120%를 달성했다.

만듦새보단 날것으로 관심을 끄는 유튜브 영상이 넘친다. 유튜버가 매번 영상의 품질에 공들이기는 쉽지 않다. 퀴서비스를 만들고 출연하는 연분홍치마 활동가 넝쿨은 “우리가 고집하는 고퀄리티는 연분홍치마의 원대한 꿈에서 비롯했다”며 “단지 기술적 완성도만의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퀴어를 위한 만능 엔터테인먼트 채널로 거듭나기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한 커피숍에서 연분홍TV 제작진 넝쿨을 만났다.

▲유튜브 연분홍TV 퀴서비스 티저영상 갈무리
▲유튜브 연분홍TV 퀴서비스 티저영상 갈무리

연분홍TV는 연분홍치마가 출범 15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플랫폼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고민 끝 결단이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그간 ‘마마상’ ‘종로의 기적’ ‘두개의 문’ ‘공동정범’ 등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인권운동,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투쟁, 박근혜 퇴진 운동 등 여러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으로 연대해왔다. “하고픈 이야기를 장편 다큐로 만들 때와 다른 박자와 방식으로 소통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연분홍치마 활동가 가운데선 주로 김일란, 빼갈, 넝쿨이 연출팀에 참여하고, 에디가 출연진으로 합류했다.

매번 새 형식으로 올라오는 꼭지에서 ‘원대한 꿈’이 엿보인다. 대표 코너인 퀴어 고민해결 서비스는 시청자들의 고민을 “다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들어준다.” 넝쿨은 “일상의 차별과 맞닥뜨릴 때 ‘이게 내가 퀴어여서인가?’ 고민할 때가 많다. 그저 억울한 일이라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 차별의 구조 안에서 맞물리는 이야기들”이라며 “차별에 대한 감각을 시청자와 같이 익히고자 했다”고 했다. 입대를 앞둔 성소수자의 사연을 다룬 지 얼마 뒤엔 트렌스젠더 여성 군인 변희수 하사가 음성편지를 보냈다.

▲연분홍TV 퀴서비스 이반지하 편.
▲연분홍TV 퀴서비스 이반지하 편.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일 때마다 새 기획으로 정면 돌파한다. 4‧15 총선거 즈음엔 미래를 배경으로 가상 토론회를 열었다. 각 정당 후보가 성소수자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영 레토릭을 패러디한다. 핑크당(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남웅)는 ‘공기업 퀴어 할당제 폐지’를 논하며 “진짜 성소수자를 어떻게 입증하느냐”고 묻고, 무소속 후보(에디)는 “퀴어들이 모이는 지역이 어딘지 시험 보게 하자”고 받아친다.

넝쿨은 “연분홍TV 채널을 열 때부터 구상해온 기획”이라며 “선거 국면에서 성소수자 의제는 쏙 빠지거나, 토론회에서 찬반 논란으로 회귀하기 일쑤다. 성소수자가 시민이고, 당신의 정책과 태도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에 목소리를 들으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숙대 트랜스젠더 입학 반발 등 트랜스젠더 혐오 사건이 잇달아 불거진 올초엔 황지수 전 숙명여대 총학생회장과 박한희 변호사를 초대해 ‘트랜스 티타임’을 열었다. 넝쿨은 해당 영상에 달린 독자 반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 네티즌이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에 동의해왔다며 그간 자신이 받아들였던 정보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얼마나 좁은 생각인지 느꼈다며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이 댓글을 보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확실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실감했어요.”

▲퀴서비스 트랜스티타임 편, 퀴어 정당토론회 편, 레즈비언특집 편 썸네일·영상 갈무리.
▲퀴서비스 트랜스티타임 편, 퀴어 정당토론회 편, 레즈비언특집 편 썸네일·영상 갈무리.

독자가 결말을 결정하는 퀴어 웹드라마는 시즌2에 전면화해 진행하게 됐다. 넝쿨은 “제도권 미디어에서 퀴어는 주인공의 친밀하고 코믹한 친구로 그려진다. 한국에서 그런 설정이 나온다는 것도 격세지감이지만, 그런 그림이 전형으로 굳어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재 퀴서비스는 시즌 2 출범을 채비하는 한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버스 등 라이브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넝쿨은 “제도권 언론이 시청자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데 그쳐야 할지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다. 그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다루며 찬성과 반대로 다룬다. 취재요청도 ‘반대하시는 분들의 의견에 반박 논리를 말해달라’고 주문이 온다”며 “수년째 같은 질문과 프레임에서 벗어나, 성소수자는 자기 정체성을 통해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적 관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했다.

▲퀴서비스 웹드라마 애기레즈의 고백법 영상 갈무리.
▲퀴서비스 웹드라마 ‘애기레즈의 고백법’ 영상 갈무리.
▲연분홍치마 활동가 넝쿨. 사진=넝쿨 제공
▲연분홍치마 활동가 넝쿨. 넝쿨 제공

유튜브 플랫폼이 주류 방송미디어가 하지 않는 소통을 가능케도 하지만, 유튜브 정책에 대한 불만은 없을까. 넝쿨은 K레즈비언 특집 편에서 레즈비언 성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이유로 영상이 청소년 유해물로 나이 제한이 걸렸다고 했다. 헤터로섹슈얼 섹스나 성소수자 혐오 컨텐츠에는 좀처럼 붙지 않는 제한이다.

한편 넝쿨은 연분홍TV가 추구하는 고퀄리티와 원대한 꿈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연분홍TV에게 고퀄리티는 흔히 인권감수성이라고 불리는 민감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퀴어들의 현실을 말하면서 인권감수성과 민감성을 놓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친근하고 쉽게 다가가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컨텐츠 자체부터 제작과정과 확산되는 과정까지, 그 안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 연분홍TV는 그것을 ‘고퀄리티’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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