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규씨는 25년 경력의 베테랑 노동자였다. 하청 건설업체 J건설에 속해 각종 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했다. 그는 지난해 10월30일 부산의 중견기업 경동건설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졌다. 경추 2곳과 오른팔이 골절되고 머리에선 뇌가 보일 정도의 구멍 2개가 발견됐다. 정씨는 그 즈음 가족에게 “내가 얼마나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지 아느냐”고 말하던 터였다.

노동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유족 눈엔 이상한 점 투성이였다. 119 신고 녹취록을 보면 그와 함께 일하던 신고자는 정씨가 1~2m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경찰 검시 결과는 정씨가 4m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추정했다. 머리 부상이 커 유족은 정씨가 헬멧을 안 썼다고 생각했지만 현장 검증에서 그의 피 묻은 헬멧이 나왔다. 추락 지점인 4m 높이 아파트 옹벽 위에선 정씨가 절단 작업을 하다 만 철근 흔적이 발견됐다. 목격자는 없었다.

“정말 다 한 패 같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말해요.” 지난달 23일 만난 정석채씨가 말한 ‘한 패’는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고용노동부, 언론을 가리킨다. 석채씨는 1년째 생업을 접고 아버지 정씨가 숨진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경동건설 아파트신축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 사진=김예리 기자
▲경동건설 아파트신축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 사진=김예리 기자

원하청 측은 며칠 새 현장을 180도 바꿔 놓았다. 사고 5일 뒤 유족이 찾은 추락 현장은 완벽했다. 아버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사고 1시간 전 현장 사진과 경찰이 찍은 사진 속 모습과 판이했다. 정씨가 추락한 철근 구조물인 비계는 옹벽에 바짝 붙어 섰다. 기존에는 45cm 너비 틈이 벌어져 있었다. 비계 안전망이 씌워졌고, 안전 난간대가 생겼다. 철근을 고정하는 부품(클램프)마저 새것으로 바뀌었다. 추락주의 경고판도 새로 붙었다. 사측은 사고 직후 유족의 현장 출입을 막아왔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사진을 보고 최소 8가지 안전규정 위반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기댄 고용노동부가 등을 돌렸다. 노동청은 정씨가 “높이 2.15m 외부 비계 2단 작업발판 위에서 발판과 난간대 사이로 나와 비계외측 단부에 설치된 수직사다리로 내려오는 도중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조작 전 안전관리 위반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2m 지점에서 떨어졌다는 경동건설과 하청 J건설 측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지난해 2019년 10월30일 정순규씨 추락 당시(왼쪽)과 5일 뒤 현장 사진 비교. 정석채씨 제공
▲지난해 2019년 10월30일 정순규씨 추락 당시(왼쪽)와 5일 뒤 현장 사진 비교. 정석채씨 제공

유족이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은 공소장에 따르면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원하청 안전관리자 2명과 현장소장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정씨가 숨진 아파트 옹벽 현장의 안전규정 위반은 △미끄러짐 방지 장치 △안전고리 연결구 △경고판 미설치 등 3가지만 명시됐다.

석채씨는 “유족도, 전문가들도 왜 3가지만 위반 건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건설현장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와 직후 현장 사진, 관련 자료를 종합해 “비계를 옹벽과 띄워 설치하고 틈 안쪽에 난간대를 설치하지 않아 추락할 공간이 생겼다”고 진단한다. 

▲정순규씨의 추락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1일, 부산 문현동 사고 현장에 붙은 작업중지 명령서. 사진=정석채씨 제공
▲정순규씨의 추락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1일, 부산 문현동 사고 현장에 붙은 작업중지 명령서. 사진=정석채씨 제공

유족은 정씨 죽음 원인을 밝히려 나섰지만, 정부 기관의 공개 거부에 부딪혔다. 유족은 노동부에 ‘유족 공개’가 원칙인 ‘산업재해조사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사업주의 의견을 먼저 받아봐야 줄 수 있다”며 거부하다 KBS가 이를 보도한 뒤에야 자료를 내놨다. 유족이 현재까지 정부 기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자료는 44건에 이르지만, 공개된 자료는 4건뿐이다. 석채씨는 “노동부가 오히려 노동자에게 적대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산재 피해자에게 정보공개도 안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석채씨는 언론사들을 찾았다. 이마저 분투였다. 그는 “특히 부산 지역 언론에서는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석채씨는 부산의 한 지상파 방송사 취재진이 사건을 세 꼭지로 나눠 보도하기로 했지만, 방송 직전에 보도가 취소됐다고도 했다. KBS는 지난 7월9일 ‘노동자 죽었는데도 유족들은 원인도 몰라’ 리포트에서 정순규씨 사건을 다뤘지만 부산지역엔 방영되지 않았다. 서울, 경북, 전북, 충청 등지에선 해당 리포트를 보도했지만 부산KBS는 다른 곳보다 일찍 지역뉴스로 전환하면서 내보내지 않았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지난 7월9일 KBS 뉴스9 에 방영된 ‘노동자 죽었는데도 유족들은 원인도 몰라’ 리포트 갈무리.
▲지난 7월9일 KBS 뉴스9 에 방영된 ‘노동자 죽었는데도 유족들은 원인도 몰라’ 리포트 갈무리.

석채씨는 “세상에만 알려준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거의 모든 언론사에 제보했다. 그 중 연락해오는 기자도 극소수지만, 이들의 90%는 서울에 있다. 부산 지역 뉴스에서는 단순 사고발생 소식 이후 이 사건을 다룬 적이 없다”며 “건설사 힘이 얼마나 권력이 큰지, 얼마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재훈 KBS부산총국 보도국장은 “지역뉴스 양이 많을 경우 전국뉴스 끝 부분의 한 두개 리포트를 자르고 그것보다 앞에 배치할 때가 있다. 경동건설 관련 뉴스를 내지 않기 위해 전국뉴스를 자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뉴스 양이 부족해 방송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혹 정씨의 사망 관련 사고 소식이 보도될 때도 있다. 그러나 보도 직후 경동건설 관련 미담 기사가 쏟아진다. “매일 경동건설을 검색해요. 간혹 언론사가 접촉해와 아버지 기사가 하나씩 올라오면, 경동건설의 기부, 봉사 관련 기사들로 뉴스란이 도배됩니다. 아버지 사건 기사는 계속 뒤로 밀려나고요.” 이른바 ‘밀어내기’라 불리는 언론 관행이다. 석채씨는 “경동건설이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모르겠다. 참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경동건설 관련 뉴스포털 검색 결과.
▲지난달 28일 경동건설 관련 뉴스포털 검색 결과.

정순규씨 사건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은 강현철 부산노동청장의 환경노동위원회 국감 출석을 요구했다. 석채씨도 참고인으로 국감장에 선다. “지금이라도 산재 사고가 벌어지는 악순환이 고발되고, 원하청 기업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언론사 1곳이 지난달 28일 정씨 산재가 국감에서 다뤄진다는 소식을 기사로 전했다. 이로부터 1시간 뒤부터 언론사 12곳이 경동건설이 후원한 지역아동센터 준공 소식을 다룬 기사를 쏟아냈다.

경동건설 관계자는 기사 밀어내기 의혹과 관련 “언론사에 기부나 봉사 관련 소식을 보도해달라고 한 적이 일체 없다. 지원 받은 쪽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했을지 모르겠지만 경동건설 쪽에서 출입기자에게 접촉을 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해 경동건설이 안전 조치를 충분히 했다는 의견을 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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