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년 간 출판문화계와 만든 도서정가제 개정 잠정합의안과 다른 안을 통보해 반발을 사는 가운데 그 배경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개정하도록 해, 오는 11월 일몰을 앞두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어디서든 출판사가 내놓은 정가대로 책을 팔도록 한 제도다. 그간 도서 가격경쟁이 심해져 출판·유통업계가 과점 형태로 변해가자 지난 2014년 개정을 통해 출판 생태계 보호를 위해 도서 정가의 10% 할인, 5% 적립까지 허용하도록 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7월 출판과 서점, 웹툰·웹소설계와 소비자단체로 민관협의체 ‘도서정가제 보완 및 개선 협의회’를 꾸려 총 16차례 회의를 열고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민관협의체의 잠정합의안은 도서정가제의 기본 방향을 현행 유지하는 한편 제도의 ‘구멍’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했다. 국가나 지자체, 공공도서관은 가격 할인을 10%까지만 허용하도록 하고, 미판매된 새 책을 중고 간행물로 편법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또 적발 시 위반 규모와 상관 없이 300만원 과태료를 물렸던 것을 위반 횟수에 따라 달리 부과하도록 했다. 한편 간행물 정가를 변경할 기점을 발행 뒤 18개월에서 12개월로 풀어주고, 웹툰‧웹소설 도서 등 전자출판물에 각사가 전자화폐를 쓰는 정가 표시 방식을 완화하는 등 ‘양보안’도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청와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대위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청와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대위

그런데 문체부가 지난 7월부터 합의안에 대해 거리를 두다, ‘추가 검토사항’으로 다른 내용의 개정안을 제시한 뒤 일방 확정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체부가 통보한 안은 △도서전과 장기 재고도서에 도서정가제 적용을 제외하고 △전자출판물 할인율을 20~30%로 확대하는 한편 △연재 중인 웹기반 콘텐츠는 완결되기 전까지는 도서정가제 적용을 하지 않도록 했다. 도서정가제의 공백을 줄여가자는 기존 합의안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관협의체에 참가하는 주요 당사자들은 “도서정가제 개악이자 사실상 폐지안”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서울국제도서전이나 대한민국독서대전 등 도서전에서 대규모 할인행사를 하면 지역서점의 할인 압박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장기 재고도서 추가 할인을 허용해도 대형·온라인 서점만 이를 실시할 여유가 돼 중소·지역서점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전자책 등 전자출판물 할인율을 확대하면 출판사와 작가가 그 부담을 짊어질 공산이 크다.

문체부가 이 같은 입장을 내는 과정에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이란 단체가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올려 20만명에 이르렀다는 점과,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12일 해당 국민청원 답변에서 “지난 12월 초,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며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비롯하여 변화하는 출판산업에 맞춰 정부의 진흥 정책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따끔한 질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점. 사진=pixabay
▲서점. 사진=pixabay

문체부는 여론조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출판‧유통업계가 여론조사 결과를 밝히길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문체부는 미디어오늘에 “여론조사 결과는 내부자료로 밝힐 수 없다”며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이 바뀐 데에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국민들도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제출했고, 전화로 민원이나 의견을 준 분들도 있다”고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에서 지난 22일 문체부에 여론조사 결과 제출을 요구했지만 25일 현재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관계자에 따르면 문체부 미디어정책국 관계자는 지난 18일 출판‧서점업계와의 면담에서 기존 잠정합의안을 추진하거나 문체부가 통보한 개정안을 재검토할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조진석 동네책방네트워크 겸 책방이음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조진석 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겸 책방이음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조진석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겸 책방이음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관련 민간단체도 모두 합의한 이 안을 흔들어 놓는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인가”라며 “청와대와 문체부는 도서정가제의 근간을 흔들려는 밀실행정을 중단하라. 청와대와 문체부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범출판계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조진석 책방넷 사무국장 겸 책방이음 대표는 “동네책방은 온라인서점처럼 하자니 적자만 쌓이고 할인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딜레마 상황이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져 동네책방이 2017년 301곳, 2019년 551곳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동네 책방, 1인 출판사, 독자가 소수인 책, 첫 책을 내는 저자를 보호하는 도서 생태를 위해서라면 도서정가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이대로 개악한다면 전국의 동네책방은 모두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문체부 미디어정책국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독서문화와 국민관심도가 높은 만큼, 여러 입장을 종합 검토하겠다고 선택지를 뒀다가 개선 방향이 확정된 것이다. 업계과 소통하고 협의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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