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하는 ‘소외계층 보도 지원사업’ 대상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2차 지원사업에서 공지한 목적과 심사 기준에 비춰 선정 결과에 의문이 일지만 재단 측은 이렇다 할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언론재단 측은 심사위원 명단과 녹취록 등 근거 자료를 국회에 공개하길 거부해 사업이 외부 감시 없이 자의적으로 흐를 가능성에도 우려가 인다.

인터넷 장애인 언론사인 비마이너의 강혜민 편집장은 지난달 24일 언론재단 홈페이지를 찾은 뒤 황망해졌다. ‘2020 2차 소외계층 보도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확인하고서다. 비마이너는 공모에 ‘장애해방 운동가들의 생애사 구술작업’ 기획안을 제출한 뒤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강 편집장은 선정된 매체를 보고 놀랐다. 명단에 오른 일부 언론사는 재단이 공모 당시 우대한다고 공지한 ‘사회적 약자 권익신장을 주 목적으로 하는 매체’와 거리가 멀었다.

언론재단은 언론사 취재지원 사업 가운데 하나로 해마다 2차례씩 소외계층 보도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공고문을 보면 목적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문제 발굴 및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심층보도 지원을 통한 소외계층의 권익신장 및 저널리즘 다양성 보장”이다.

재단 측은 사업 취지와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전국종합일간지를 제외한 일간지와 주간지, 인터넷언론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이 중에서도 “장애인·이주민·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계층의 권익신장과 정보주권 확보 등을 주된 목적으로 발행하는 매체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선정된 기획취재에는 비용의 90% 이내, 액수로는 올해 기준 1000만~1500만원 이내에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연 9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이 사업에 책정된다.

▲언론재단 전경. 사진=비마이너 강혜민 기자
▲언론재단 전경. 사진=비마이너 강혜민 기자

‘취약계층 권익신장 매체’ 우대 명시했지만 

비마이너 측은 언론재단에 탈락 사유를 물었지만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했다. 지원 사업 담당자는 ‘재단 직원은 심사에 개입하지 않고 외부 위원이 5개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데, 우리가 볼 땐 비마이너의 기획안이 탈락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재단은 공고에 심사 기준으로 △주제 공익성 △취재·보도계획 적정성 △취재 분야 전문성 △활용계획 및 기대효과 △예산편성의 적정성 등을 밝히고 있다. 재단 측은 “심사위원들이 이들 기준마다 무슨 자료를 참고할지 제시하지만, 세부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소속 지원사업 담당자는 “앞서 비마이너가 1차 사업 때 지원 매체로 선정된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하지만 재단 측은 사업을 공고하며 ‘1차 사업의 선정 결과는 2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마이너는 이를 수차례 물은 뒤 확답을 받고서 지원을 결정했다.

재단 측이 심사 근거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재단 측은 당락을 가른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부기관이나 감시기관인 국회 상임위원회에도 제출을 거부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위원이 이달 초 언론재단에 올해 취약계층 보도지원 사업과 관련해 심사위원 명단과 심사 녹취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재단 쪽은 거부했다.

재단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심사위원 명단은 개인정보라 재단의 상급기관인 문체부나 국회의원실에도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재단 측은 “해당 팀에서 제출한 100명 안팎의 전문가 명단에서 기획예산팀이 무작위로 필요 인원의 3배수를 뽑아 팀에 넘기고, 섭외 순으로 심사위원이 선정된다. 자격은 해당 사업의 자문, 연구 등을 하신 전문가로, 학자, 기자, 기관 관계자, 교사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2020년 2차 소외계층 보도 지원사업 공모 페이지.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
▲2020년 2차 소외계층 보도 지원사업 공고 게시글.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

일부 선정 기획안, 주류·시혜 관점으로 채워져

일부 선정작 면면을 보면 시혜적인 관점으로 채워져 심사 기준에 의문이 커진다. 강 편집장이 재단 쪽에 열람해 확인한 2차 사업 지원 매체의 기획안을 보면, A매체는 노인의 디지털 소외를 주제로 ○○저축은행 등을 비롯한 국내외 금융권 기업을 모범사례로 인터뷰 취재를 계획했다. 인터뷰는 다섯 개 기사 가운데 하나로, ‘금융사가 태블릿PC를 들고 고객대면 영업을 해 소외계층에 손길을 뻗는다’는 내용이다.

강 편집장은 미디어오늘에 “언론재단 담당자 설명을 종합하면 ‘비마이너는 아무 이유 없이 2차 공모에서 탈락했으며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1차 때 선정됐기 때문’이다. 2차 선정 결과의 적절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강 편집장은 “심사위원과 심사평을 왜 비밀에 부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비마이너가 탈락한 이유는 물론, 사업 의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스런 매체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원 결과에 이의가 제기되면 재단은 물론 심사위원도 심사 결과에 설명 책임을 진다. 어떤 기준으로 뽑았고 특정 매체가 다른 곳에 비해 어떤 점수를 왜 얻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언론사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언론재단이 외부 심사위원을 위촉하는 취지가 사업 공정성과 투명성인 만큼 사후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게다가 공적 재산을 지출하는 사업이라면 최소한 국회에는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2차 소외계층 보도 지원 심사자료집.
▲2020년 2차 소외계층 보도 지원 심사자료집.

‘소외계층’ 범주화, 자의·시혜성 흐를 우려도

심사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소외계층’을 범주화하는 지원사업 틀의 적절성에도 지적이 나온다. 매체 성격과 보도 내용을 ‘소외계층’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나눌 때 자칫 주류 시선에 기댄 시혜성 사업으로 흐르기 쉽다는 지적이다. 강 편집장은 “주류언론의 시선을 가진 전문가가 소수언론이나 독립언론을 심사하는 건 한계가 있다. 언론진흥재단이 언론 독립성을 고민한다면, 그만큼 자본과 기업에서 독립해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를 지원하고, 이런 고민과 시선을 가진 사람에게 심사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대구경북지역 인터넷 언론인 뉴스민의 천용길 발행인은 “소외계층이란 범주 자체가 모호한 데다 이를 단일 기준으로 할 때는 소외계층을 대상화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획안만 갖고 심사하면 자칫 심사가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광고로 높은 수익을 올려 자금 필요성이 떨어지는 매체가 지원 받을 수도 있는데 매체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본래 소외계층 매체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는데, 10년 이상 진행하다보니 받았던 매체만 계속 받거나 질이 낮은 보도에도 지원이 가게 돼 사업대상은 ‘보도’로 바꿨다. A매체의 경우 취약계층 보도를 하겠다고 하니, 순수하게 기획안을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재단 기준 결격사유가 없었다”며 “심사 절차에서 의도적으로 특정 매체를 배제하거나 선정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A매체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에 “편집국에서 기자 대상으로 기획안을 추리고 추려 제출한 기획안이다. 될 거란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 선정돼 취재를 준비 중”이라며 “기업 쪽 인터뷰 기획은 금융 출입기자가 현장 취재한다는 취지이지 (취재 외) 다른 큰 뜻은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