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들이 정체를 모르는 붉은 가루를 시식한 다음 추리한다. 한 의학 전문가는 “몸 속의 만성 염증을 완화해줄 이것은 과일계의 레드 다이아몬드”라는 힌트를 말한다. ‘레드 다이아몬드’라는 설명을 들은 패널들의 놀란 표정이 화면에 잡힌다. 이어 가루의 성분이 ‘타트 체리’임을 공개하자 한 패널이 인터넷에서 봤다며 운동 후 체력 회복과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다른 전문가가 “타트체리는 항산화 물질과 멜라토닌을 함유한 과일”이라고 효능을 설명했다. 타트체리가 등장하는 순간 ‘협찬을 받아 제작됐다’는 고지가 나온다. 지난 7월14일 채널A ‘나는 몸신이다’의 한 장면이다.

▲ 채널A '나는 몸신이다' 타트체리 협찬이 들어간 회차 갈무리.
▲ 채널A '나는 몸신이다' 타트체리 협찬이 들어간 회차 갈무리.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 받은 TV조선·채널A 협찬고지 전수 데이터를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지난 4월22일부터 7월31일까지 건강 프로그램 협찬 건수가 TV조선 460건, 채널A 189건으로 나타났다. 한 프로그램 회차당 통상적으로 1개 제품·성분에 대한 협찬을 했으며 2~3건씩 협찬한 경우도 있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건강 프로그램에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4월 TV조선·채널A 재승인 과정에서 관련 조건이 부과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방통위는 두 종편에 ‘효과나 효능을 다루는 협찬의 경우 협찬 사실을 시작, 종료 시점을 포함해 최소 3회 이상 고지할 것’을 강제했다. 

시청자들은 교양 프로그램에 특정 제품이나 성분의 효능이 강조된 직후 인접한 홈쇼핑 채널에서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협찬일 수 있다고 의심해왔는데 제도가 개선되면서 방송사가 이를 공개하게 된 것이다.

TV조선 매일 협찬, 채널A 1년 전 프로 재방송

재승인 이후 종편이 방통위에 제출한 협찬고지 내역을 프로그램별로 보면 TV조선에서 가장 많은 협찬을 한 프로그램은 ‘굿모닝 정보세상’으로 114건에 달했다. 이어 ‘건강 다큐’와 ‘알맹이’가 각각 34건, ‘백세 누리쇼’와 ‘위대한 유산’이 각각 33건, ‘알콩달콩’ 32건, ‘내몸 사용 설명서’ 31건, ‘내몸 플러스’ 30건, ‘스위치’ 29건, ‘기적의 습관’ 28건, ‘건강 면세점’ 19건, ‘기적의 인생’ 14건, ‘퍼펙트 라이프’ 11건, ‘내사랑 투유’ 10건, ‘별별 체크’ 8건 순이다. 

채널A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72건으로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특별 기획을 통해 협찬을 내보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어 ‘나는 몸신이다’ 57건, ‘닥터 지바고’ 45건, ‘행복한 아침’ 15건 순으로 나타났다. 

제품별로 보면 TV조선은 유산균 108건, 시서스 33건, 침향 26건, 크릴오일 19건, 그린프로폴리스 17건, 단백질 16건, 폴리코사놀 14건, 석류 14건 순으로 협찬이 많았다. 채널A는 콜라겐 21건, 프리바이오틱스 14건, 장어 13건, 여주와 새싹보리 각각 12건, 모유유산균과 폴리코사놀이 각각 11건, 크릴 10건 순이다.

▲ 달라진 종편의 협찬고지.
▲ 달라진 종편의 협찬고지.

협찬 가운데는 ‘재방송’이 적지 않았다. TV조선의 경우 460건 가운데 199건, 채널A는 189건 가운데 142건이 재방송이었다. 이 가운데 다수는 변칙적인 편성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재방송은 직전 회차를 방영하지만 종편의 경우 본방 후 3~4개월 동안 재방송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019년 7월23일 방영된 ‘나는 몸신이다’  237회에는 폴리코사놀 협찬이 들어갔는데 1년이 지난 7월5일에 돌연 재방송이 나왔다. 

재방송 횟수도 제각각이었다. 채널A ‘나는 몸신이다’에서 여주 협찬이 들어간 262회는 지난 1월14일 방영됐는데 3달 동안 10회에 걸쳐 재방송됐다. ‘장어’ 협찬을 다룬 276회는 같은 기간 7회에 걸쳐 재방송됐다. 반면 노니 협찬이 들어간 267회는 재방송을 2회 편성하는 데 그쳤다. 

방송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건강 프로그램의 협찬 단가는 제품에 따라 1000만~3000만원 사이인데, 재방송 편성까지 동시에 계약하거나 추후 재계약을 통해 재방송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공개된 MBN미디어렙 영업일지에는 협찬 품목을 홈쇼핑에서 다시 판매할 경우 홈쇼핑에 맞춰 ‘재방송’을 내보내고 협찬금을 추가로 받은 사례가 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협찬은 제작비를 조달받는 취지인데, 재방송을 내보낼 때 추가로 제작비가 들지 않아 재방송에 협찬 비용을 받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과 관련한 협찬이 이뤄지면 홈쇼핑과 연계 편성해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통위가 지난해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연계편성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결과 TV조선은 80회 채널A는 25회 협찬 편성을 했다. 이 결과를 협찬 전수 데이터와 비교하면 TV조선은 약 6회 중 1회, 채널A는 약 7회 중 1회 꼴로 홈쇼핑 연계편성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고지하면 끝? 여전히 연계편성 못 잡아

이번 재승인 조건은 음성적인 협찬을 양성화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재승인 조건은 아직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받지 않은 다른 지상파, 종편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앞서 방통위 연계편성 실태조사 결과 3개월 동안 가장 많은 연계편성을 한 채널은 종편이 아닌 SBS로 127회에 달했다. 같은 기간 MBC는 49회로 채널A(25회), JTBC(37회)보다 연계편성이 잦았다. 이들 방송사에는 연말 재허가·재승인을 통해 같은 조건을 부과할 전망이다.

방송 프로그램별로 협찬 고지 방식이 다른 문제도 있다. TV조선 ‘백세 누리쇼’는 ‘본 방송은 협찬주의 협찬을 받아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라며 협찬 사실만 언급한 반면 같은 채널의 ‘굿모닝 정보세상’은 ‘본 방송은 녹용 관련 협찬주에게 협찬을 받아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협찬주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통일된 문구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협찬 양성화’와 별개로 연계편성에 제대로 대응 못하는 한계도 있다. 종편의 과도한 협찬과 연계편성 문제는 2015년 MBN 영업일지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BN의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자회사인 MBN미디어렙이 광고 영업을 한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건강 프로그램에 비일비재하게 협찬이 이뤄지고 있고, 일부가 홈쇼핑과 연계해 편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나 방통위가 제재했다.

▲ MBN 영업일지에 등장한 '홈쇼핑 연계편성' 화면.
▲ MBN 영업일지에 등장한 '홈쇼핑 연계편성' 화면.

정연우 교수는 “방송법상 방송 편성에 개입하면 안 되는데 MBN영업일지에는 미디어렙사가 편성에 개입한 물증이 나와서 제재했던 사안”이라며 “물증이 나오지 않는 한 연계편성을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연우 교수는 “제품군에 따라 소비자의 태도와 구매를 결정하는 요인이 다른데, 옷이나 액세서리는 전달하는 사람의 호감도, 매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 제품의 경우 방송 매체에 등장하는가, 전문가가 설명하는가 등 공신력이 제품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며 제품 구매로 연결되는 건강 프로그램 연계편성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연계편성 및 협찬 문제와 관련 방송사 관계자는 “협찬 고지를 분명히 하는 제도 개선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며 “방송시장 전반이 침체기에 빠진 상황에서 연계편성을 막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장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협찬은 현 제도 내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뒷광고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방통위 방송광고정책과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국회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협찬 제도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에 직접적으로 연계편성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연계편성은 재방송에 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파악되는데 재방송에 협찬을 하지 않게 하는 조항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방통위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홈쇼핑 연계편성.
▲ 방통위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홈쇼핑 연계편성.

20대 국회에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홈쇼핑 사업자가 납품업자에게 방송편성을 조건으로 다른 방송사에 협찬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행위에 추가해 연계편성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줄이기 위해 협찬 사실을 고지하도록 재승인 조건을 부과한 것은 의미 있지만 아직도 홈쇼핑 연계편성이 지나치게 많다”면서 “협찬제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방송은 상품광고판이 되고, 방통위는 광고진흥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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