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7년 6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대선때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간 중앙집권과 수도권 과밀현상이 오히려 심화했고 국토균형발전이나 지방자치는 더 어려워졌다. 만성적인 경기침체와 인구유출, 고령화에 코로나 경제위기까지 겹치자 지자체 단위에서 행정통합으로 이를 돌파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대구와 경북 통합을 논의할 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21일 출범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일일 경북도지사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일일 대구시장으로 이미 다섯 차례나 교환근무를 진행하는 등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시대적 과제”라며 제안한 광주·전남 행정통합을 준비하기 위해 광주시는 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 이에 비해 초보 단계지만 부산·울산·경남도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가 있고, 허태정 대전시장은 대전·세종 통합을 제안했다. 

반대로 경기도는 남북도로 나누자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법안심사 1소위원회에서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을 심의했다. 경기북도 설치는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주로 주장하는데 경기남부에 비해 소외됐다고 판단해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주장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광주·전남 행정통합’에 대해 찬성 의사를 밝히며 경기남북도 분도 논의에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행정통합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진행된다. 수도권 중심 발전에 대항하기 위한 비수도권의 움직임이고, 인구유출·경기침체 등 낙후된 지역들끼리 모여 행정 비효율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 정책과 비전이 실현되지 않자 지자체들이 각자도생에 나선 격이다. 정부가 나서 민의를 모으고 각 지역의 상황을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면서 주민들은 의사표출의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많다. 

▲ 수도권 집중 현상을 대비해야 한다며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pixabay
▲ 수도권 집중 현상을 대비해야 한다며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pixabay

 

행정통합, 민주적으로 진행하나

행정통합 관련 지역신문의 보도는 크게 두 흐름이다. 정치권에서 시작한 최근 행정통합 논의가 다소 급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찬성입장의 보도에서도 ‘원론적으론 찬성하지만 대체로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이에 비하면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행정통합은 대체로 생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관점의 보도가 우세했다. 지역신문 역시 해당 지역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발 행정통합 논의에서 주민들 의견수렴에 소홀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22일 광주매일신문은 정치부 기자의 기자수첩 “광주·전남 행정통합 ‘공론화’가 우선이다”에서 과거 두 차례 행정통합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을 소개하며 “과거 단체장 의지로 밀어붙여 정치적으로 이용돼 논란만 일으켰던 시도 통합에 추진동력을 실어줄 최우선 과제는 지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시는 통합실무단을 꾸렸지만 광주전남 통합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1일 광남일보 데스크 칼럼을 보면 “행정통합 논의도 중요하지만 수년째 제자리인 ‘광주 자치구간 경계조정’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남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구신문은 지난 18일 사설에서 “통합날짜를 정해놓고 조직이 밀어붙이는 양상은 당황스럽다”며 “행정통합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하는 지역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경상매일신문 이사는 기자수첩 “구미시장님 불쾌합니다”에서 장세용 구미시장이 칠곡군민들 의견수렴없이 구미칠곡 통합설을 제기한 것을 비판했다. 공론화 없이 언론을 통해 불쑥 통합설을 흘렸다는 이유에서다. 

통합을 반대하는 다양한 논리가 있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도 급격한 논의 진전을 우려했다. 영남일보 지난 9일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전제조건들”에서 한쪽이 흡수하는 형식이 아니라 대등한 통합을 해야 하고, 서둘러선 안 되며, 지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에서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지역언론에서 최근 통합 논의를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하지만 한편에선 해당 지역의 이익을 앞세운 보도들도 있다. 

▲ 지난 7월 여당의 행정수도추진단 모습. 정부여당은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 중 행정수도 이전 외에는 다른 정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7월 여당의 행정수도추진단 모습. 정부여당은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 중 행정수도 이전 외에는 다른 정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지역신문에 나타난 지역소멸 위기의식  

기초자치단체 차원으로 오면 행정통합은 더 시급한 문제가 된다. 수도권에 맞서는 거대 행정단위를 만드는 차원에 더해 지역자체가 소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남도일보 사설 “목포 신안 통합 논의를 주목한다”, 전남일보 사설 “목포시-신안군 행정통합 논의 기대크다”, 광주일보 사설 “서남권 도약 위해 우선 목포신안 통합해야” 등 무주까지 포함하는 통합이 어려운 가운데 목포와 신안만이라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경북도민일보 지난 3일자 사설 “포항경주 행정통합론 가볍게 듣고 흘릴 일 아니다”, 지난 중도일보 1일자 칼럼 “경제적 측면에서 본 대전 세종 통합 필요성”, 지난 7월2일자 매일신문 사설에서 주장한 대구 수성구와 경산시 통합 논의 등은 인구고령화와 젊은인력 유출 등을 걱정하며 경제와 교육, 교통과 문화 등 생활권을 공유하며 행정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구구절절 전했다. 

또한 전북일보 지난 20일 “불씨 살려야할 통합”에선 광역시가 없는 전북에서 전주와 완주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렇다할 대기업 하나 없는 전북의 경우 광주·전남에 비해서도 소외됐다는 도민들 인식이 칼럼에 짙게 드러난다. 

경기남북 분도 문제도 대체로 남부에선 반대하거나 큰 관심이 없고 상대적으로 낙후했다고 판단한 북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경기남부에 위치한 용인시 지역신문인 용인시민신문 관계자는 21일 미디어오늘에 “분도가 수도권 집중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행정비효율 등의 이유로 분도에 반대했다. 역시 남부에 위치한 평택시 지역신문인 평택시민신문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오늘에 “최근 논의에 큰 관심이 없고 분도를 하든 안하든 평택에 큰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북부의 분위기는 다르다. 경기북부 의원들은 여야 할것없이 경기북부 설치 법안을 발의했고, 한편에선 인구 100만이 넘는 고양시를 중심으로 고양·파주 통합, 고양·파주·의정부 통합 얘기도 나온다고 고양신문 관계자는 전했다.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북부지역에선 발전된 남부지역을 같은 생활권으로 느끼기 어렵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근본적인 지방분권 대책 내놔야 

논의가 다층적이고, 결국 자신의 지역 입장에서 행정통합을 주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조율하고 국가 전체차원의 청사진을 내놓을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평택시민신문 관계자는 “수도권 비대화에 대항해 지방에서 행정통합 문제가 나오는데 또 이를 위해 영호남에서는 충청권까지 범수도권으로 보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이원화하는데 이런 흐름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지방자치단체가 재정과 권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어렵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istockphoto
▲ 지방자치단체가 재정과 권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어렵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istockphoto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해 편가르기보단 근본적인 문제, 즉 국토균형발전과 지방자치 차원에서 행정통합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관계자는 “지방자치제도를 25년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산·사무 등 권한의 대부분을 중앙에서 쥐고 있어 지방자치가 안 돼 있다”며 “과거에는 번영을 위해 분리하자고 했다가 이제는 생존을 위해 통합하고, 이를 위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는 식은 불행하고 퇴행적인 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 기초자치단체가 자생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기초단체가 좀 더 커져서 행정비효율을 없애고 인프라를 확충해 정주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광역-중앙의 3단계로 고정된 수직구조를 깨고 기초와 광역의 중간 수준의 자치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광역단체장이 행정가보다는 정치가, 대권주자로 주목받으며 행정의 탄력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기초단체의 자치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비슷한 주장은 정치권에서 나온 적이 있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지난 201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해 ‘중앙-광역자치’ 2단계 구조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행정구역과 행정단계는 1800년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던 농경시대 산물이라며 100만명 내외의 50개 광역자치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고,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나누겠다고 했다.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방향이다. 

고양신문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지방자치·지방분권을 재설계한다면 광역단체를 없애 2단계로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지방정부가 권한을 직접 가져야 자치가 가능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려면 중간에 광역단체는 장애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