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맞붙는 여야가 ‘공정경제 3법’으로 협치를 이룰지 관심인데 재계 반대가 만만치 않다. 경제단체들이 공동 성명을 내고 여야 지도부를 만나며 ‘재계 입장을 잘 들어달라’ 촉구하고 있다. 경제 매체들은 ‘공정경제 3법’이 아닌 ‘기업규제 3법’이라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공정경제 3법은 지난달 3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법 일부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다. 상법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에게 모회사 주주(발행주식총수 100분의1 이상)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 이사들 중에서 감사를 뽑는 대신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해 대주주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 도입이 골자다.

공정거래법은 가격·공급담합 등 중대·명백한 공동행위에 대해 검사가 직접 공소할 수 있도록 전속고발제(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 있어야 형사처벌)를 폐지하고,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곳에서 20% 이상까지 확대하도록 했다. 금융그룹감독법의 경우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금융그룹’을 법적으로 지정하고, 내부통제·위험관리기구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며 금융위원회의 경영개선계획 제출 명령에 따르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민중의소리

여야 지도부는 공정경제 3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경제민주화’를 일생일대 과제로 삼아 온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법안에 찬성이다. 국민의힘 내부의 반대 여론에 대해 김 위원장은 “내용 중 일부 논의 과정에서 고쳐질지 모르지만 3법 자체를 거부해선 안 된다”며 “의원 수가 많으니 반대 의견 제시 자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당선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국민의힘과 공통과제 입법화’를 강조해왔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중 공정경제 3법 처리’를 공식화한 다음날(22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로 찾아가 여야 대표를 차례로 만났다. 이낙연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박 회장은 “기업은 생사가 갈리는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데 기업을 옥죄는 법안은 자꾸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늘어나는 게 사실”이라며 “여야가 합의하면 일사천리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이 된다. 토론의 장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인단체들도 16일 공동성명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의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옥죄는 내용”이라며 “정기국회에서 경제계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매체들은 ‘공정경제 3법’을 ‘기업규제 3법’으로 부르고 있다. 이 대표가 ‘공동 과제 추진’을 강조한 1일부터 22일까지 양대 경제전문지의 지면 발행 기사만 한국경제 32건, 매일경제 29건에 이른다. 특히 한국경제는 △국내선 단타, 해외선 장투…무엇이 韓 증시 매력 꺾고 있나(1일)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2일) △“공정3법은 기업에 살인적 바이러스”라는 절박한 호소(12일) △‘상법·공정법 改惡’ 가세한 김종인, 기업 위기는 안 보이나(16일) △국민의힘 의원 104명도 ‘反기업 3법’에 동의하는가(19일) △반대 거센 ‘기업규제 3법’, 김종인 위원장 독단 안 된다(22일) 등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내용의 사설을 연일 게재했다.

경제 단체 및 매체가 주장하는 부작용은 3법이 기업의 경영을 부당하게 규제하고 위축시킨다는 논리다. 지난 8일 매일경제(기업할 자유는 꺾고…투기 자본에 날개 달아주는 국회)는 △개정안이 법인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자회사 주주의 주주권을 침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등 투기자본에 악용될 소지 △보유지분에 따른 다수결로 경영진을 선출하는 원칙이 주식회사 체제 근간임에도 최대주주 재산권 행사를 규제 △검찰의 중복·별건 수사로 기업경영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크고 경쟁사업자와 시민단체 등이 전문적 검토 없이 기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고소·고발이 남발될 가능성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 유튜브 '박용진TV' 갈무리.
▲ 유튜브 채널 '박용진TV' 영상 갈무리.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꾸준히 주장해 온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런 우려들을 “보수언론과 재벌기득권 대변자들의 궤변”으로 규정했다. 박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서 “이 법은 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고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기업이익을 저해하고 시장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일부 기업 총수들의 ‘무제한 권력남용’을 막으려는 것이다. 오히려 이 공정경제 3법이 친기업적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친시장질서 법”이라 밝혔다. 그는 “아무리 일부 보수언론이 사주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라고 하더라도 ‘일부 사주의 고삐 풀린 권력 남용을 제한’하려는 이 법안들의 취지를 왜곡해 기업 옥죈다고 하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주식시장 등에 상장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운영되는 기업은 망하면 투자자들 뿐 아니라 연관된 수많은 기업들에게 피해가 확산된다”며 “2292개 기업이 소속된 재벌집단 총수일가의 내부지분율은 평균 3.6%다. 한국경제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겨우 3.6% 지분율을 가진 총수일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다시 말해 96.4%의 다른 투자자들의 이해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니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이라 주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혐의를 사례로 들며 “삼성물산 주식이 하나도 없는 이재용의 지시에 따라 이재용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앞장서는 황당한 일 역시 재벌총수에 의한 부당한 기업지배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상법 개정안 핵심 내용은 2012년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입법예고까지 했던 법들인데 재벌들 로비와 압력에 유야무야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년 전 국민의힘 측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법안 개정을 이제라도 하겠다는 것인데 반대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안타까운 것은 이번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상법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도 약속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당론법안에도 담겨져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있었던 ‘집중투표제’가 정부 입법안에서는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관료들은 한 발 뺐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거대여당으로서 개혁입법을 완수할 책임감을 가지고 누락된 ‘집중투표제’를 보완해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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