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 디지털교도소가 다시 사이트 전체에 대해 접속차단 심의를 받게 된다.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방통심의위 통신소위·위원장 박상수 위원)는 지난 14일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전체차단을 하는 대신 89건 정보 중 명예훼손 정보 7건과 성범죄자 신상 정보 10건 등 총 17건의 개별 정보에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명예훼손 정보 7건은 자신의 신상이 게시된 당사자가 직접 방통심의위에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성범죄자 신상 정보 7건은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경찰청이 심의 민원을 넣었다. 아청법은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자 신상 정보를 해당 사이트에서만 열어볼 수 있게 하고 다른 곳에 이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2일 캡처한 디지털교도소 페이지화면.
▲22일 캡처한 디지털교도소 페이지화면.

방통심의위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에게 17건 정보에 대해 자율규제, 즉 자진 삭제를 요청했다. 러시아에 서버를 두고 있는 디지털교도소는 페이지별 접속차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은 삭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방통심의위는 추가 명예훼손 민원 7건과 전체 사이트를 차단해달라는 민원 13건 등 총 20건의 심의 민원을 접수했다.

방통심의위는 고민 중이다. 지난 14일 사이트 ‘접속차단’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허위 정보도 2건이 발견됐고, 신상이 사이트에 게시된 고려대 학생이 숨지기도 했는데 왜 차단하지 않느냐’는 외부의 지적이 만만찮다. 사이트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과 ‘차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한 것. 방통심의위가 지난 18일 통신자문특별위원회와 권익보호특별위원회에서 자문받은 결과도 50:50이었다.

▲위쪽부터 지난 5일 보도된 KBS 뉴스, SBS 뉴스 화면 갈무리.
▲위쪽부터 지난 5일 보도된 KBS 뉴스, SBS 뉴스 화면 갈무리.

미디어오늘이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접속차단 필요성을 법조계 인사에게 문의한 결과도 찬반이 팽팽했다. 총 법조계 인사 6명을 인터뷰했다. 찬반이 엇갈린 가운데 6명 모두 공통적으로 아청법을 위반한 게시글이 존재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불법성이 있는 사이트라는 데는 동의했다.

사이트 전체를 접속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디지털교도소가 명백한 불법 사이트라고 지적한다. 디지털교도소가 사실을 올린 콘텐츠라고 할지라도 우리 형법엔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A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이트를 접속차단 해야 한다. 2~3건의 허위 사실이 적시된다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형법 307조 1항을 위반한, 전체적으로 불법에 기반한 사이트”라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역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 변호사는 “사이트가 확정적인 조사나 판결의 결과를 모아둔 것이라면 그나마 조금 이해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의혹 수준의 글이나 언론 기사 등까지 게시한다는 것이다. 그걸 기반으로 사적 린치를 가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일베’와 ‘메갈’ 같은 사이트와 성격이 다르다고도 선을 그었다. 양 변호사는 “사이트 전체 불법성을 판단할 때 여러 경우의 수를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일베에는 다양한 게시글이 올라온다. 일부는 명예훼손성 게시글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일베는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가 아니다. 일부 게시글이 불법성이 있다고 해도 사이트 전체를 차단하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최종선 법학박사(현 방통심의위 지부장)도 “디지털교도소는 신상 정보 공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이고, 일베와 메갈 같은 사이트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디지털교도소 같이 사적 폭로를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의 경우 75%의 게시물이 합법적이라고 해도 나머지 일부가 불법적이라면 불법성에 대한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며 “애초 폭로를 예고하고 만든 사이트라 75% 정도의 게시글을 합법으로 만드는 건 너무 쉽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정보로 인한 폐해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22일 캡처한 디지털교도소 페이지화면.
▲22일 캡처한 디지털교도소 페이지화면.

반면 사이트 전체 차단에 반대하는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은 문제가 있다. 진실을 말해도 공익이 아니면 처벌된다는 조항 자체가 문제”라며 “또 집단이 공익이라고 인정한 진실만 말할 수 있는 건 소수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위헌인지 논의하고 있다. 지난 10일 공개변론을 열고 찬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실제 세계적으로도 명예훼손죄의 형사범죄화 자체를 폐기하는 추세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벨기에, 호주, 슬로바키아, 포르투갈 등 대부분 선진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일부 불법 정보가 있다는 이유로 웹사이트 전체를 함부로 차단하는 관행은 지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언론사가 오보 몇 번 했다고 해서 문 닫지 않는다. 몇 건의 오류로 전체를 차단하는 건 극단적”이라고 말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그동안 대법원 판결은 ‘사이트 전체를 보라’고 한다. 모든 개별 게시글이 불법성을 갖는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유출해 아청법을 위반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접속차단을 통해 사회적 논의를 끊어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 공익성 여부도 판단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적 제재가 이뤄지게 된 점에 국가기관의 잘못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정규 변호사는 “공적 제재가 다른 나라 보다 굉장히 미비해 사적 제재인 디지털교도소 사이트가 출범했다.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사적 제재하려는 이유를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걸 보며 참기만 해야 하는 건가. 허위 사실이 아닌 사실을 알리겠다는, 즉 자력구제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에 국가가 더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손지원 변호사도 “국가의 솜방망이 처벌에 환멸을 느끼고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의 사이트”라며 “일부 잘못된 게시글 외에 다른 게시글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인들은 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진이 게시물을 업로드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2기 운영진이 꼼꼼한 검열을 통해 사법부 판결 등을 기준으로 게시한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는 지난 16일 주간경향 기고글에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이들이 실제로 범죄나 그에 준하는 혐의가 있는지는 사이트 측에서 올린 근거 자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이트가 어떤 형태로 증거를 수집하며 그 진위를 가리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백 변호사는 “(디지털교도소 2기 운영진이) 확정적 조사나 판결 결과를 모아 게시글을 엄격하게 올린다면 공익성을 따져볼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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