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농촌의 ‘산재 사각지대’였다.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 8일과 11일 보도한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업인 재해’” 기획의 주제다. 매일 농업인 1명이 작업 중 재해로 사망한다고 추정되지만 이들은 산재보험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농업인 대부분이 자영농이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망에서 비켜나 있다. 

김 기자의 산재 사각지대 조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5월엔 ‘바다 위 김용균’이란 화제를 꺼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 규율이 헐거운 어선원이 대상이었다. 이들이 근무 중 사망하는 숫자만 매년 140여명. 그러나 안전 보호 법제가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아 제도적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이는 실제 안전관리 부실함으로 나타났다. 보도는 반향을 일으켜 해양수산부가 ‘선내 안전보건기준 마련을 위한 TF’를 만드는 등 후속 대응이 뒤따랐다.

두 기획 모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보도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기사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발생한 산재 사망 사건 1305건을 전수조사·분석했다. 김 기자는 이 재해의견서에 어선원 사망 사건이 보이지 않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게 산압안전보건법 테두리 바깥의 ‘또 다른 김용균’을 찾아 나섰고 ‘바다 위 노동자’ 어선원으로 첫 단추를 뀄다.

▲ 9월8일 보도된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업인 재해’” 기획 기사
▲ 9월8일 보도된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업인 재해’” 기획 기사

농업인 사각지대도 어업 현장 취재 중 자연스레 알게 됐다. 당시 도움을 주던 작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등 취재원들이 농작업 중 산재 실태가 심각하다고 알려줬다. 경향신문 모바일팀인 그는 5~6월 업무 외 시간을 틈틈이 할애해 기초 조사를 시작했다. 7월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 토론회 취재를 시작으로 기획 방향성을 잡으면서 농촌 현장, 재해 당사자, 전문가들을 찾았다. 

농촌에서 사고는 일상이었다. 한 농부는 오작동하는 트랙터를 점검하다 바지가 날 사이에 빨려 들어가 다리가 절단될 뻔했다. 또 다른 농부도 트랙터 전복 사고를 입고 골반이 부서져 장애등급을 받았다. 2016년 6월 장마철, 귀농한 한 30대 청년은 딸기하우스에서 일하다 감전사했다. 김 기자는 “국제노동기구(ILO)는 농업을 광업, 건설업과 함께 3대 위험 산업으로 분류한다”며 “국내 산재 통계에선 농업이 다른 산업보다 재해율이 1.5~2배 높다”고 적었다. 

그러나 전체 재해를 조사한 통계는 없었다. 김 기자는 국회의원실과 농업진흥청 등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며 스스로 찾았다. 그 결과 ‘하루 1명씩 사망한다’는 결론을 냈다. 산재보험과 농업인안전보험·농기계종합보험·농작업근로자안전보험 수치를 종합한 결과다.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농업인 중 산재 사망한 이는 2012~2019년 연평균 10명이다. 그러나 '5인 이상 사업장'이나 '농업법인'에서 일해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이들은 전체 농업인의 3.3%(8만3530명)다. 10만2000명이 가입된 농기계종합보험 자료 분석 결과 연평균 사망자는 6명이었다. 김 기자는 가입률이 65%로 가장 높은 농업인안전보험 사망보험금 지급 내역을 봤다. 2012~2019년 연평균 265명이 농작업 중 사망했다. 수치를 합하면 연평균 278명 사망자가 나왔다. 김 기자는 낮은 가입률을 고려해 “연간 사망자 수는 400명을 웃돌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 기자는 “안전보건은 사전 예방과 사후 보상이라는 두 바퀴로 구성되는데 농업인 재해는 두 바퀴가 모두 고장난 상태로 굴러왔다”고 진단했다. 사전 예방 핵심은 예방 대책을 세우고 집행할 전문인력인데 농업 분야엔 이 인력이 없었다. 산안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보완할 종합적 안전보건 법령도 없었다. 산재보험 외 3가지 정책보험 모두 산재보험보다 보상 수준이 낮았다.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

 

김 기자는 이에 “현장에서 움직이면서 안전 문제를 면밀히 포착하는, 현장에 모세혈관처럼 퍼져있을 안전·보건 전문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농작업 재해 예방을 규율한 농어업인안전보험법에 대해 “법 조항이 아직 총론적이라 실효성이 떨어져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 밖에도 “재해 주원인이 되는 작업 환경이나 농기계를 안전하게 재설계하는 등 국가가 관련 제도나 규칙을 꼼꼼하게 정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보건 법제 정비를 가장 강조했다. 형식적 고용 관계를 떠나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법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수고용노동자나 자영농 등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 기자는 “ILO 농업 분야 안전보건 권고안은 농업 노동을 하는 자가 어떤 법률관계 속에서 노동하는가를 묻지 않고 ‘노동을 하는 인간인가’를 중시한다”는 농촌진흥청 자료의 한 구절을 대신 전했다. 

김 기자는 농촌진흥청 명칭에 ‘안전’ 문구를 새로 넣자고 제안했다. 농촌진흥청은 농어업인안전보험법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으로부터 농작업 재해 예방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기관이다. 그는 “(일반 시민들은) 여기서 농업인 재해 예방 업무를 하는지 잘 모른다”며 “조직 명칭을 적어도 ‘안전'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기계가 만약 자동차, 휴대전화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경쟁하듯 기술을 개발하는 제품이었다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최근 순천의 한 농민이 기사를 읽고 기자에게 보낸 메일 내용이다. 특히 농기계 사고의 42%가량을 차지하는 경운기는 모든 농민들이 입을 모아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상황은 십수년 방치돼 왔다. 김 기자는 “기사로 지적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이라며 “한국 사회가 FTA 등을 거치며 농민에게 희생을 강요한 측면이나 식량자급률, 원주민 농업노동자가 사라지는 문제 등을 생각하면 농업은 각별한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