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부터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사회 구석구석 많은 파장을 미쳤다. 특히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일반적이었던 모든 행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밀집할수록 쉽게 퍼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특성은 ‘모이는 활동’ 자체를 위험한 행동으로 만들었다.

식당, 관광업, 영화관, 미술관, 스포츠 시설 등 밀집이 필수적인 시설이 전례 없는 불황에 시달리는 가운데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공연이다. 영화관이나 미술관 같은 시설은 시설 종사자나 관객 사이에 바이러스가 퍼질 수는 있어도, 최소한 ‘영화’나 ‘미술품’ 그 자체는 바이러스와 상관없는 무생물 존재이다. 그러나 공연은 다르다.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찾고, 공연의 중심에 서는 배우나 가수는 공연이 시작할 때부터 끝이 날 때까지 계속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오페라 등 장르에 상관없이 상당수 공연은 공연하는 사람과 이를 관람하는 사람이 서로 교감하기에 성립이 가능한 장르였다.

코로나19 유행은 이 ‘교감’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래를 부르거나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 입을 여는 모든 행동은 바이러스가 담겼을지 모르는 ‘비말’(飛沫, 침방울) 확산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행동이 됐다.

실제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코로나19가 확신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각 공연장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좌석 간 간격을 띄우거나 공연장 정원에 상관없이 관객수를 제한하는 방법 등으로 최대한 비말 확산을 막는 대책들을 세우고 있지만 공연장에 대한 공포는 쉽게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8월 중순부터 다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며 물리적 거리두기 강도가 증가하고, 어렵게 열었던 공연장이 다시 문을 닫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 공연업계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공연자와 관객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생생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바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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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VR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에도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VR 기술 핵심은 사용자에게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현실처럼 느낄 수 있게 구현하는 기술들에 있다. 시각과 청각은 물론 사람 움직임까지 최대한 반영할 수 있어야 했다. VR 개념 자체가 본격적으로 구축된 건 무려 1960년대였지만, 기술이 대중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3D 그래픽과 LED, 움직임 인식 장치 등 기술 발전과 가격 하락은 한동안 꿈에 불과했던 VR을 조금씩 현실로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2015년 삼성전자와 미국 오큘러스가 협업해 발매한 ‘삼성 기어 VR’을 시작으로 오큘러스, HTC, 소니 등 업체가 연달아 대중용 VR 기기를 발매하면서 조금씩 VR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왔다.

특히 VR 기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건 통신사들이었다. 가상 현실을 구현한다는 특성상 VR은 아무리 저용량으로 만들어도 일반 영상 콘텐츠나 3D 콘텐츠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용량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VR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결국 대용량 데이터를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마침 통신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LTE에 이은 새 통신 규약인 5G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VR 대두는 5G의 빠른 통신 속도를 홍보하기에 제격이었다.

LTE를 출범할 때처럼 통신 3사는 5G에서 새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일찌감치 VR 콘텐츠를 강조하며 필사적 경쟁에 나섰다. 특히 ‘공연 콘텐츠’를 중점적 홍보하기에 여념 없었다. 대다수 공연의 표가 비싼 것은 물론, 인기 가수나 배우가 등장하는 공연은 그만큼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오죽하면 ‘티켓팅 연습 시뮬레이션’처럼 최대한 남보다 빠르게 예매에 나서기 위해 일찌감치 연습하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공연을 VR 콘텐츠로 만든다면 이론적으로는 실제 공연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관람이 가능하다. 공연장은 VIP석 같이 소위 ‘목 좋은 자리’가 아니면 먼 발치에서 배우나 가수 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하거나 심하면 시야가 제한되는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하지만 VR 콘텐츠는 배우나 가수가 최대한 잘 보이는 자리에서 공연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 모습을 중점적으로 시청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공연을 VR 콘텐츠로 만드는 건 생각만큼 빠르게 전개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각 통신사들이 5G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미는 것과 별개로 VR 기기가 아직 폭넓게 대중화하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VR 기기 가격은 점차 하락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각 통신사들이 적극적으로 자사 5G 서비스와 VR 기기를 세트로 판매하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별도로 VR 기기를 구입하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구입한다고 해도 집이 아니면 VR 기기를 사용하기가 어려우니 스마트폰처럼 대중화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VR 콘텐츠는 기존 촬영 장비와는 완전히 다른 장비를 구입하거나 임대해 찍을 수 밖에 없다. 기존 영상 콘텐츠보다 훨씬 많은 공력과 시간,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공연 시장이 활성화한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VR 공연 콘텐츠가 활성화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보다 시장이 훨씬 협소한 한국에서 VR 콘텐츠가 수월하게 생산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모두 VR로 촬영해 공개, 판매한 콘텐츠는 지난해 기준 걸그룹 ‘마마무’ 정도 밖에 없다. 그나마 마마무의 콘서트 VR 콘텐츠는 고해상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지니고, 해당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이 가능한 일부 장비에 한정돼 있어 대중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은 통신사조차 활발하게 나서지 않았던 공연의 VR 콘텐츠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차적 요인은 결국 ‘수익 창출’이다. 공연장 개관 자체가 제한되거나 설사 개관해도 이전처럼 공연장의 모든 객석을 꽉꽉 채울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누구도 코로나19 유행이 언제 종식될지 쉽사리 말하기도 어렵다. 공연으로 수익을 버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대다수 공연업계는 ‘실황 영상’을 최대한 강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의 부가 콘텐츠 시장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근래 ‘네이버 V라이브’ 같이 아이돌이나 인기 배우를 중심으로 한 유·무료 실황 콘텐츠는 조금씩 인기를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실황 콘텐츠로는 대중은 물론, 공연 감상을 갈구하는 팬들에게도 어필하기 쉽지 않다. 실황 콘텐츠가 아무리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공연을 촬영한들 결국 이 영상은 ‘평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연장 분위기는 물론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도 재현하기 쉽지 않다. 한계가 많은 실황 콘텐츠로는 팬들을 쉽게 만족시키기 어려운 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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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사운드 기술을 적용한 제26회 드림 콘서트. 

이런 욕망을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빠르게 포착했다. 지난 7월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CONNECT:D’라는 부제를 달고 개최된 ‘제26회 드림콘서트’는 사상 최초로 무관중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실시간으로 VR로 송출되진 않았지만 대신 드림콘서트 주최 측은 3D 사운드 기술을 적용해 화면 자체는 평면이어도, 소리로는 실제 공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아직 서비스되진 않았지만 드림콘서트는 공연 영상을 VR 영상으로 재편집해 유튜브에 유료 콘텐츠로 업로드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통신사도 이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 않다. LG유플러스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상당수가 무관중으로 열리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공연 주최와 협력해 VR 콘텐츠를 속속 제작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경기아트센터와 협업해 경기팝스앙상블의 클래식 콘서트와 경기도립무용단의 춤 공연을 VR 영상으로 생중계했다. 특히 경기팝스앙상블 콘서트 VR 영상은 VR 카메라를 무대 사이사이에 설치해 기존의 클래식 공연은 물론 종래 공연 실황 영상에서도 볼 수 없는 각도를 구현했다. 지난 7월에는 유명 비보이 그룹 ‘진조크루’와 협력해 공연을 VR 기법으로 촬영한 영상을 서비스하는 등 VR 콘텐츠 제작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수혜는 ‘일부 공연’에 한정된다는 문제가 있다. VR 콘텐츠는 또 다른 비용을 소모케 하고 VR 전용 기기가 아니면 감상이 제한되는 등 VR 기기가 아직 대중성을 지니지 못한 상황에선 오히려 새로운 ‘문턱’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드림콘서트의 경우 아이돌 영상에 대한 소구력을 믿고, 경기아트센터나 진조크루의 경우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로서 VR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국립국악원이나 광명문화재단 등 몇몇 국공립 문화예술 지원기관이 위기의 공연업계를 보조하기 위해 VR 콘텐츠를 제작·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확실하게 예상 수입을 가늠할 수 있거나’ 또는 ‘VR 콘텐츠로 제작해서라도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일부의 움직임에 국한되는 면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가 시작된 상반기는 물론 불황이 고착화하고 있는 하반기에도 상당수 문화예술 창작자들은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6월22일 정부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 위협을 VR을 비롯한 다양한 최신 기술을 도입해 극복하자고 명시돼 있지만, 이런 기술 도입은 소위 ‘한류’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미 인기 있는 콘텐츠’를 다시 정부 차원에서 독려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VR 기술은 5G의 부속 콘텐츠에서 새 일상을 위한 산물로 입지가 뒤바뀌고 있지만, 정부나 업계의 움직임은 VR 기술을 문화예술 창작 전반에 보편화하기보다 생태계의 양극화만 부추기고 있다. 기술 수혜를 최대한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생태계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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