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로 의료공백 피해가 현실화한 가운데 의료계가 파업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은 2차 총파업에 이어 다음달 7일부턴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전공의협)도 무기한 진료거부를 이어간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내놓은 의협·전공의협 주장 ‘팩트체크’ 내용과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국면에 퍼진 허위사실을 정리했다.

1. 의사 수, 부족하고 줄고 있다

의협은 한국의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주요 근거로는 최근 10년 간 한국의 의사 증가율이 OECD 평균치의 3.1배에 달하고, 한국은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OECD 회원국 중 1위(16.6회, OECD 평균 6.8회)로 의료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실상 한국 의사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데다 증가 속도도 느리다. 한국 의사수는 1000당 2.3명이다. OECD 평균치인 3.5명의 70%에 못 미친다. 현재 국내 총 의사 수는 총 11만 7400여명인데, 인구 5000만명으로 볼 때 5만명가량을 늘려야 격차를 메울 수 있다.

증가율도 OECD 가입국 평균치보다 낮다. 의협은 10년 간 해마다 나온 증가율 숫자를 합한 뒤 5로 나눠 3.1배를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증가율이 줄어 현재는 OECD 수준이라는 점은 간과했다. 2007~2011년 연평균 의사 증가율은 4.0%지만 2013~2017년 의사 증가율은 2.0%다. 의사 수가 부족한데 격차는 점점 벌어진단 얘기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미래 의사 수 예측자료와 의협이 발표한 OECD (2004~2017년) 연평균 인구 당 의사 증가율 추이.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미래 의사수 예측자료와 의협이 발표한 OECD (2004~2017년) 연평균 인구 당 의사 증가율 추이.

2. 접근성 기준? 가계의료비 부담·지역 의료소외 심각

외래진료 횟수가 많다고 의료접근성이 좋다고 보기도 힘들다. OECD는 2000년과 2017년 통계를 발표하며 한국과 일본의 1인당 외래진료 건수가 많은 이유로 행위별수가제(진찰, 검사, 처방, 처치에 걸쳐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진료비를 매기는 제도) 아래 과잉진료가 양산된다고 설명했다.

의료 접근성은 의료비 부담‧지역 소외 측면에서 살펴야 하는데, 한국은 이들 지표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가계지출 가운데 의료비 부담이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2018년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를 보면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환자의 비율(치료가능 사망률)도 서울과 비서울에 따라 판이하다. 경북 영양이 107.8명, 서울 강남구가 29.7명(10만명 당 기준)으로 3.6배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밝힌 지역 간 치료가능 사망률 격차. 인의협 제공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밝힌 지역 간 치료가능 사망률 격차. 인의협 제공

3. 배치의 문제라며, 공공의료 아닌 수가 얘기?

의협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과목과 지역마다 인력이 불균형 배치돼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특정 지역에 10년 의무복무할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입장인데, 의협은 의사들이 복무 뒤 다시 수도권과 성형외과·피부과 등 과로 몰려 경쟁만 치열해진다고 반박한다.

인력 배치 불균형과 의료소외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뭘까. 인의협은 의사 증원과 더불어 공공병원을 짓고 공공의사 양성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안처럼 민간병원과 사립의대에 기대지 말고 공공의료기관과 공공의대를 세우고 공공의사의 의무복무 기간도 늘려 의료 취약지·기피지역에 의료공급을 보장하자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밝힌 2017년 인구 천 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밝힌 2017년 인구 천 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반면 의협은 공공의료 강화를 요구안으로 내걸지 않았다. 의협은 정부에 정책 전면 철회를 요구하면서 기피 지역과 전공에 더 높은 의료수가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이미 2009년부터 외과·흉부외과에 해마다 600억원 재정을 투입해 수가가산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지역 의사 연봉도 서울보다 크게 높지만 수도권 쏠림은 심각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의사 월급은 서울이 1112만원으로 최저였다. 전남이 1683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인의협은 “정부 정책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의료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증원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고 공공의대 신설조차도 거부하고 있다”며 “정당성 없고 비윤리적으로 진행되는 진료거부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민감 국면에 SNS상 허위사실 유포도, 오해 키운 복지부

의사 집단 진료거부 사태와 풀리지 않는 갈등 국면에 사실과 다른 정보가 SNS를 통해 퍼지기도 했다.

서대문경찰서가 서울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대표 회의를 급습했다는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내용이 26일 SNS를 통해 퍼졌다. 대화 내용에는 “지금 세브란스에서 과별 전공의대표끼리 회의 중이었는데 서대문경찰서에서 급습했다고 한다”며 “다들 도망치고 있다” “우린 범죄자가 아니다. 널리 퍼트려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과 서대문서 모두 당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병원과 경찰은 진입 요청을 주고 받은 사실도 없다고 했다. 경찰은 허위사실 유포 과정을 밝히기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 병원 측 관계자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공의 학생이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주위에 친구들도 몇명이 있었다”며 “이렇게 되면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와전됐다”고 했다.

▲26일 SNS에 퍼진 경찰의 세브란스병원 급습 카카오톡 대화내용(왼쪽), 복지부가 공공의대생 선발 관련해 오해 유도를 사과하며 재배포한 카드뉴스.
▲26일 SNS에 퍼진 경찰의 세브란스병원 급습 카카오톡 대화내용(왼쪽), 복지부가 공공의대생 선발 관련해 오해 유도를 사과하며 재배포한 카드뉴스.

의협이 2차 집단행동을 앞둔 24일 공공의대 입학생을 시‧도지사나 시민사회단체 추천으로 뽑는다는 허위사실도 퍼졌다. 복지부가 2018년 내놓은 ‘공공의료강화 종합대책’에서 공중보건장학제도와 관련해 ““시·도지사 추천에 의해 해당 지역 출신자를 선발하고, 해당 지역에 근무하도록 함”이라고 밝힌 내용인데, 이를 공공의대 입학생 선발 과정으로 오독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복지부가 해명에 나서는 과정에서 또다른 오해를 낳았다. 복지부는 24일 ‘팩트체크’ 카드뉴스에서 “(공공 의대) 후보 학생 추천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도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시민단체가 추천권을 갖느냐’는 반발이 일었다. 복지부는 다시 입장을 내고 “사실이 아니다. 오인되게 한 점에 송구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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